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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거제도/거제 100경

거제향교에서 열린 추계석전대제 현장을 찾아서/공기이오육사년 대성지성문선왕추기석전대제/거제도 볼거리/거제도가볼만한 곳/거제도여행지추천

 

거제향교에서 열린 추계석전대제 현장을 찾아서

/공기이오육사년 대성지성문선왕추기석전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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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향교에서 열린 추계석전대제 현장을 찾아서

/공기이오육사년 대성지성문선왕추기석전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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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8일(토) 오전 10시.

거제시 거제면에 소재한 거제향교에서 추계석전대제가 열렸습니다.

석전대제는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문묘(文廟)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날 처음으로 석전대제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제례를 지내는 순서와 절차 등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이날 초헌관으로는 거제시장, 아헌관으로는 거제경찰서장, 종헌관으로는 거제면농업협동조합장이 참여하였습니다.

 

다음 기회가 되면 대제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석전대제의 전 과정을 옮겨 볼까 합니다.

참고로, 우리 전통문화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에서 석전대제(釋奠大祭)에 관한 정의, 어원, 유래, 내용 그리고 의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차분히 읽어보며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석전대제는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의

문묘, 곧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과 선현(先賢)들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 모든 유교적 제사 의식의 전범(典範)이며, 가장 규모가 큰 제사이다. 이 때문에 석전을 가장 큰 제사라는 의미로 석전대제(釋奠大祭)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석전과 유사한 제례 의식으로는 석채(釋菜)가 있다. 이는 나물 종류만을 차려 올리는 단조로운 차림으로서 음악이 연주되지 않는 조촐한 의식이다. 이에 비해 석전은 희생(犧牲)과 폐백(幣帛) 그리고 합악(合樂)과 헌수(獻酬)가 있는 성대한 제사 의식이다.

 

어원

어원석전의 석(釋)은 놓다[舍] 또는 두다[置]라는 뜻을 지닌 글자로서 베풀다 또는 차려놓다라는 뜻이다. 전(奠)은 상형문자로서 추(酋)는 술병에 술을 담아놓고 덮개를 덮어놓은 형상으로 빚은 지 오래된 술을 의미하며, 대(大)는 물건을 얹어두는 받침대의 모습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는 정성스레 빚어 잘 익은 술을 받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석전은 정제(丁祭), 또는 상정제(上丁祭)라는 별칭으로도 불렀는데, 이는 석전을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두 차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을 택하여 봉행해 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유래

유래우리나라에서 석전이 시작된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최초로 태학이 설립된 것으로 미루어,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제의 경우 국립학교 설립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오경박사(五經博士) 같은 명칭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고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박사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국립학교에 해당하는 기관에서 석전 의식을 봉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신라에서는 진덕여왕 2년(648)에 김춘추가 당나라에 건너가 국학(國學)을 찾아 석전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신문왕 2년(648)에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특히 성덕왕 16년(717)에는 태감(太監) 김수충(金守忠)이 당나라에서 공자와 10대 제자 및 72 제자의 영정을 가져와 국학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석전 의식이 국학에서 봉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역시 국립학교인 국자감에서 석전을 봉행하였으며, 현종 11년(1019) 8월에는 최치원을 선성묘에 종향(從享)하고, 현종 13년에 다시 설총을 종향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성현을 문묘에 배향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성리학이 정착된 조선조에는 석전이 국가에서 주관하는 오례(五禮) 중 길례(吉禮)에 속하는 국가적 대사로서 봉행되어 왔다. 오늘날 석전이 봉행되고 있는 한국의 문묘인 성균관은 고려 충렬왕 30년(1303) 6월에 고려의 수도 개경에 있던 국자감을 개칭한 것이며, 조선조 건국 이후 태조 7년(1398)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당시 성균관의 정전인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4성(聖), 10철(哲)과 송조 6현(賢) 등 21위(位)를 봉안했고,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는 우리나라의 명현(名賢) 18위와 중국의 유학자 94위 등 112위를 봉안하여 매년 춘추에 두 차례 석전을 봉행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37년부터는 양력 4월 15일과 10월 15일로 변경하여 실시하다가 해방 후인 1949년에 전국 유림대회의 결의로 5성위와 송조 2현만 봉안하고 그 외 중국 유현 108위를 매안(埋安)하였다.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 18현을 대성전으로 올려 종향하고 춘추 석전 대신 공자 탄일인 음력 8월 27일에 기념 석전을 봉행하는 변화를 가졌다. 그 3년 뒤인 1953년에 공문 10철과 송조 6현을 복위하고 석전도 봄과 가을 두 차례, 곧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로 환원하여 현재까지 봉행하고 있다. 성균관뿐만 아니라 전국의 232개 향교에서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매년 같은 날 석전을 봉행하고 있다.

 

 

 

 

내용

내용석전대제에는 다섯 명의 헌관(獻官: 위패 앞에 잔을 올리는 제관)과 집례(執禮: 진행을 담당하는 제관), 대축(大祝: 제사의 축문을 읽는 제관)을 포함한 27명의 집사가 참여하며, 이와 더불어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을 연주하는 41명의 악사, 팔일무(八佾舞)를 추는 64명, 모두 137명의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다.

 

석전의 봉행은 초헌관(初獻官)이 분향하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로 시작되며 다음은 초헌관이 첫 잔을 올리고 대축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初獻禮), 아헌관(亞獻官)이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 종헌관(終獻官)이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분헌관(分獻官)이 종향위에 분향을 하고 잔을 올리는 분헌례(分獻禮)와 같은 헌작례(獻酌禮)가 차례로 진행된다.

 

이어 초헌관이 음복위(飮福位)에서 음복 잔을 마시는 음복례(飮福禮)가 끝나면 제기와 희생을 치우고 난 뒤, 초헌관이 폐백과 축문을 불사르고 땅에 묻는 망료례(望燎禮)를 끝으로 석전의 모든 의식 절차가 완료된다. 석전의 모든 절차는 종합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 홀기(笏記)에 의거하여 진행되며, 국조오례의의 규격을 그 원형으로 한다.

의의

의의우리나라의 석전대제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있지 않는 옛 악기와 제기를 보유하여 사용하고 있다. 또한 고전 음악인 문묘제례악과 팔일무, 제관이 입는 전통적인 의상과 고전적 의식 절차가 모두 화려하고 장중하여 예술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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