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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혼을 담은 공연, 영웅 이순신을 기리다


거제 오광대탈놀이, 임란 첫 승첩지 옥포 특설무대에 서다

  
▲ 경기민요 경기민요
경기민요

6월 땡볕이 내리쬐는 옥포대첩기념공원 특설무대. 옥포대첩기념공원은 임진왜란 중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과 경상우수사 원균 장군이 합동작전으로 옥포만에서 첫 승리를 거둔 승첩지로 거제시에서 조성한 기념공원이다. 18일, 옥포대첩 419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가 펼쳐졌고, 시민과 관광객들은 뜨거운 땡볕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무대공연에 빠져 들었다. 그 중 특별한 공연 하나가 눈길을 끈다. 

무인들의 반란으로 졸지에 왕위를 폐위당하고 스스로 목숨도 끊지 못한 채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고려 18대 왕 의종. 1170년, 거제현(지금의 거제시) 폐왕성(둔덕기성)으로 유폐된 왕은 이곳 거제도에서 3년간 머물다, 다시 경주로 거처를 옮긴다. 이후 무신정권의 군대에 비참한 죽임을 당하며 최후를 맞는다. 47세 젊은 나이의 고려 왕 의종. 왕의 한 많은 삶과 죽음을 노래하고 춤춘 무대가 선을 보였다. 

  
▲ 시나위 춤 거제 폐왕성(둔덕기성)에 유폐되었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려 18대 왕 의종을 기리는 시나위 춤.
2011 거제시방문의 해

  
▲ 시나위 춤 시나위 춤
2011 거제시방문의 해

가슴을 찢어 놓을 듯, 고막을 터지게 할 듯한 찐한 태평소 소리가 서막을 알린다. 6명의 춤꾼이 들어서는 순간 무대에는 긴장감이 퍼져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옮기는 발자국은 사랑하는 이를 쉬 보내지 않으려는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이다. 그와는 달리 흐느적거리는 소매 자락은 하늘나라로 쉽게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 슬픔이요, 몸부림이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자식을 잃은 부모가 땅을 치고 통곡하는 모습이다. 억울하게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왕과 가족과 신하. 소리 높여 슬피 우는 울음과 몸부림은 억울하게 죽어갔던 그날의 기억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 시나위 춤 시나위 춤
2011 거제시방문의 해

참고 참았던 슬픔을 더 이상 가누기 힘들었을까. 몸부림은 격렬하다.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나라의 왕을 누가 죽였단 말인가. 손에 쥔 부채가 힘차게 펴지고 분노는 절정에 달한다. 한 동안 슬픔은 끊어지지 않고 슬픔과 진정이 반복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검정 갓에 여러 가지 색깔의 두루마기를 입은 춤꾼은 만장 행렬이다. 장구소리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초상집 곡소리, 장구소리가 멈추자 춤꾼도 숨을 멈춘다. 한 동안 적막이 흐르고 다시 일어선다.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 난타공연 은빛예술단 이름에 어울리는 은빛 반짝이를 단 북채를 들고 공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난타공연

이어 펼쳐진 한 마당은 '삶의 아름다운 여정'이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평균나이 68세, 회원 14명으로 구성된 거제시종합사회복지관 은빛예술봉사단(회장 김정곤, 70세)의 난타공연. 북을 두드리는 6분간, 할아버지 할머니의 두 손은 지칠 줄을 모른다. 백발에 머리띠를 두른 할머니의 진지한 모습에서 칠십 여정 찐한 삶의 내력을 알 수 있다.  

  
▲ 난타공연 평균 나이 68세 노인들이지만 공연은 힘에 넘쳐 난다.
난타공연

  
▲ 난타공연 평균 나이 68세, 14명 회원으로 구성된 거제시종합사회복지관 은빛예술봉사단의 난타공연.
난타공연

봉사단 이름에 걸맞도록 북채에 은빛 반짝이를 붙여 북을 칠 때마다 파도 타듯, 리듬을 타며 기분은 최고에 이른다. 북소리는 사람을 흥분시킨다. 이순신 장군도 왜선을 향해 돌진할 때, 이런 북소리 리듬을 타고 적을 무찔렀을 것이다. 때로는 고함을 치며, 때로는 입을 꽉 다문 채, 역사적인 현장에서 펼쳐진 노인들의 열정적인 난타공연. 박수를 보내며 봉사단 회장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하루 두 시간 연습을 합니다. 빠른 악보에 이르면 제일 힘이 들죠. 특히, 팔목이 많이 아픕니다. 요양원이나 병원 등에서 공연신청이 들어오면 기꺼이 찾아가서 무료봉사를 할 계획입니다." 

공연관람의 대가로 내내 건강하게 활동하시라는 합장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 거제오광대 거제오광대 문둥이 탈춤 공연
거제오광대

이어 열린 문둥이 탈춤은 한 바탕 웃음마당으로 변했다. 양반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몹쓸 문둥병으로 신세를 한탄하는 문둥이 탈춤. 우스꽝스러운 탈을 쓰고 허리가 휜 채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이 배꼽을 잡는다. 출신은 양반이지만 문둥병으로 양반 행세를 하지 못한 한스러움일까, 이제는 함께하려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한마당이다. 춤이 끝나고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객석으로 울려 퍼져 나간다. 

"아이고, 오늘 오신 여러분. 이내 한말 들어보소. 우리가 이 모양 이 문둥이 된 것은, 3대 할아버지 할머니 무슨 죄를 지었다고,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꼬. 오늘 같이 이 좋은 날 옥포대첩행사에 왔으니 신명나게 놀다가 갈라네. 우리가 양반의 자손인들 무엇 하며, 재산인들 어디 쓸데가 있나. 오늘 같이 좋은 날 신나게 놀다가 죽을라네. 모두가 여망 없는 내 신세야." 

  
▲ 거제오광대 거제오광대 문둥이 탈춤 공연
거제오광대

420여 년 전. 임진왜란으로 민심은 흩어지고 조정이 혼란스러울 때,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 이순신 장군. 영웅을 기리기 위해 펼쳐진 거제오광대탈놀이 공연은 6월 땡볕임에도 땀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혼을 다한 정성으로 영웅을 기리기 위한 공연이었기에. 

이날 공연은 선반장구 춤, 선풍류 사물놀이, 은빛예술단 난타공연, 시나위 한량무, 경기민요 그리고 문둥이 탈춤 등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거제오광대(대표 서한주)는 2003년 5월 '탈과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구성하여 지금에 이른다. 28명 회원 대부분이 직장인으로 저녁시간 연습을 통하여 거제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거제오광대 활동 계획에 힘주어 말하는 서한주 대표. 

  
▲ 거제오광대 옥포대첩 419주년을 기념하여 옥포대첩기념공원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마친 거제오광대.
거제오광대

"거제시 전통문화 육성을 위한 공연활동과 전통 민속 문화가 엮어진 창작예술로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또한, 전통 탈 연구와 재현 공연에도 관심을 가지고, 특히 거제 폐왕성 탈 창극예술제 추진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