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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없어서는 안 될 친구였던 '바다', 이젠 미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친구였던 '바다', 이젠 미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친구였던 '바다', 이젠 미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푸른 바다는 어릴 적부터 나의 친구로 함께 해 왔습니다. 뜨거운 여름 날, 바다는 땀이 밴 몸을 식혀주는 친한 친구였습니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없던 시절, 후덥지근한 여름을 시원하게 해 주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였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바다는 배를 채워주는 보물 창고이기도 했습니다. 고둥과 조개를 잡아 반찬을 만들었고, 볼락을 낚아 돈을 만들어 학비를 만들었습니다. 자맥질하면서 켜는 질피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간식거리였습니다.

 

어른이 되고나서도 바다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친구로 자리했습니다. 마음이 상할 때, 바닷가를 찾아 쪽빛바다를 보노라면 우울했던 마음도 금세 사라져버렸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쯤이면, 용기와 희망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바다'는,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없어서는 안 될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거제도에서 일본 쓰시마(대마도)까지, 요트를 타고 왕복으로 운항한 적도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그 때 그 바다는, '도전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에서도, 바람이 귓전을 때리고, 파도로 바닷물이 갑판을 넘나드는 위험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무장한 정신력과 용기로 험한 바다와 맞섰습니다. 바다는 끊임없이 나에게 굴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의 생명이 달렸고, 나의 굳은 의지를 지켜내야 하는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다가 요즘 무척이나 싫어졌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던 바다, 나를 위로해 주었던 친구였던 바다, 나의 도전 정신을 실험하게 해 주었던 그런 바다였는데, 이제는 미움으로 가득한 바다가 돼 버렸습니다. 아직, 향기 나는 아름다움 한 번도 뽐내지 못하고, 소망했던 꿈도 한번 펼쳐보지 못한, 어린싹을 삼켜버린 무시무시한 바다가 이제는 싫어졌습니다. 어쩌다, 바다가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괴물이 돼 버렸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인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똑 같이 반복되는 재난을 통하여 반성할 줄 모르고 기회를 살릴 줄도 모르는 것만 같습니다. 1953년 1월 여객선 창경호가 강풍으로 침몰해 229명이 사망했고, 17년 후인 1970년 12월 남영호 침몰로 32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3년이 지난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로 292명이 희생됐습니다. 그 이후 21년이 지난, 4월 16일 소풍가던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거의 20년 주기로 300여 명 내외의 목숨을 잃는 대형 '해난사고'는 언제쯤 멈출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혼자만 살겠다고,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망각한 어른이 이토록 미운 적이 없었습니다. 어른이라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저 모두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애타는 심정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시각, 미치도록 미운 이 바다는 한때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성난 저 바다도 언젠가 다시 평온을 찾을 것입니다. 바다를 탓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에서는 오는 어리석음을 나무라야 하지 않을까요?

 

여객선 '세월호' 침몰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애도합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한 모든 분들에게 빨리 쾌유하기를 기원하며, 사고를 당한 모두에게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매일 아침 이 정자에서 태양을 보며 삼배를 올리고 있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친구였던 '바다', 이젠 미움으로 변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