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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수행은 마음을 열어주는 최상의 방법(2), 재덕스님/오늘의 법문에서

 

[나의 부처님] 수행은 마음을 열어주는 최상의 방법(2), 재덕스님

/오늘의 법문에서

 

2014년 10월 26일 양산 통도사 가을 풍경.

 

[나의 부처님] 수행은 마음을 열어주는 최상의 방법(2), 재덕스님

/오늘의 법문에서

 

수행은 마음을 열어주는 최상의 방법(2)/ 재덕스님

 

선업과 악업의 기준이 되는 것이 계(戒)입니다.

계는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처지에 맞는 계를 줍니다.

스님에게는 스님에 맞는 계가 주어지고, 재가불자에게는 재가불자에 맞는 계가 주어집니다.

신라시대 화랑에게는 불교의 5계를 바꾸어 세속 5계를 내렸습니다.

세속 5계의 내용에는 불살생과는 맞지 않은 살생유택(살생하되 가림이 있으라)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에 개차(開遮, 계율에서 어떤 때는 허락하고 어떤 때는 금지하는 일)의 도리가 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이 개차의 도리를 <계초심학인문>의 첫 구절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무릇, 처음 마음을 일으켜 수행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나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벗을 가까이 하라.

오계 십계를 받아

지키고 범하는데 열고 닫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

친근현선(親近賢善)

수오계십계등(受五戒十戒等)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

 

언뜻 생각해보아도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계를 범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일진대 개차라고여지를 남기는 것은 모순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죄 역시 연기법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죄는 본래 실체가 없이 연기하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잘못된 마음도 사라집니다.

이렇게 죄를 지은 마음과 죄가 사라지면 그것이 진정한 참회입니다.

수백 겁에 쌓인 죄업이라도 한 생각에 없어져서 마른 풀을 불에 태우듯 흔적조차 없어지는 것입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

 

죄는 본래 자성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고

허망한 마음이 사라지면 죄업 또한 없어지나니

죄와 허망한 마음 둘 다 비워지면

이를 일러 진실한 참회라 하느리라

 

안타깝게도 우리 불교가 기복적인 모습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불자들은 절에 오면 부처님 앞에서 나, 내 가족에게 좋은 일만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쁜 일은 부처님이 다 가져가라고 합니다.

복을 바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에 앞서 복을 지었는지 되돌아보세요.

복을 지으면 복이 돌아오기 마련이거든요.

절에 가서 인과법을 공부했으면 절을 나서서도 인과의 도리를 믿고 작복 해야지요.

 

기복과 작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복을 빌기만 하면 기복이고 복을 지으면 작복입니다.

작복불교는 기복을 한 차원 높인 신앙 이예요.

복 짓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져야 합니다.

선한 씨앗에서 선한 열매가 열리듯 복을 지음으로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나의 부처님] 수행은 마음을 열어주는 최상의 방법(2), 재덕스님

/오늘의 법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