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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오늘의 법문

 

강원도 평창 상원사 고양이 석상

 

[나의 부처님]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오늘의 법문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몰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

<초발심경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 '마음 닦는 종교'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정 짓는 것에서 한 발을 나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깨달음의 종교라면 무엇을 어떻게 깨닫는다는 것인지 한 참 더 파고들어야 한다.

마음 닦는 종교라는 정의를 이해하자면, 마음에 대한 실체적 이해를 먼저 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쉬운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불교는 어려운 종교'라고 말해버린다.

그렇게 말하는 이상 불교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종교다.

 

나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말보다는 실천하는 종교, 마음 닦는 종교라는 정의보다는 마음 편하게 하는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불교적'이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이라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무엇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명쾌한 길도 찾을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불교적 깨달음의 근본줄기는 이미 250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 파악하셨고 45년이나 쉬지 않고 설명해 주셨다.

 

이를테면, 우주의 모든 것이 연기적 관계 속에서 생멸한다는 것(아함부),

일체는 공하다는 것(반야부),

실상이 곧 불성 그 자체라는 것(법화경),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열반경),

내 안의 불성을 일깨워 내가 부처로 당당하게 일어서자는 것(선종의 모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것(조사들의 외침) 등등.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깨달음이 모자라서 실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지간한 불자라면 4성제 8정도는 알고, 연기법과 윤회의 도리를 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알고, <금강경> 사구게들도 줄줄 외고 다닌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고갱이들을 머리 속에 정확하게 카피해 두고 있는 것이다.

 

아는 대로 실천하지 않는 병, 그 결정적인 병을 극복하지 못해 이 세상은 오늘도 어제 이상으로 어지럽다.

아는 만큼 실천만 한다면 <초발심자경문> 한 권이면 수 천 명의 부처가 탄생할 것이다.

사흘 동안 닦는 마음이 천년을 두고 보배가 되는 이치, 백년을 탐한 물건이 하루아침 이슬보다 못하다는 이치, 이 조차도 머리로만 알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한다.

매순간 깨어 있어서 매순간 마음 편하고자 한다면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삶이어야 한다.

 

초발심자경문/주혜스님

 

[나의 부처님]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오늘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