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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찾기프로젝트

[행복찾기] 50년 전, 5일장에 나갔던 아버지가 사 오신 검정고무신 한 켤레 /검정고무신에 대한 추억/어릴 적 검정고무신은 나의 동무요, 동반자였다/죽풍원의 행복찾기프로젝트


[행복찾기] 50년 전, 5일장에 나갔던 아버지가 사 오신 검정고무신 한 켤레

/검정고무신에 대한 추억/어릴 적 검정고무신은 나의 동무요, 동반자였다/죽풍원의 행복찾기프로젝트



검정고무신.

1960~7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검정고무신에 대한 추억이 많으리라.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신발까지도 헐벗고 살아야 했던 그 시절.

50년 전, 어릴 적 그 때로 돌아가 본다.


5일장에 나간 아버지는 7남매 중 셋째가 신을 고무신 한 켤레를 사 들고 오셨다.

운동화가 없던 시절, 발을 편하게 해 주는 유일한 친구는 고무신뿐이었다.

닮고 달아 더 이상 신고 다닐 수 없던 상황이라, 아버지께서 큰 맘 먹고 사 준 신발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의 새 고무신을 누가 훔쳐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배게 아래 끼워 놓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새 고무신을 신고 학교로 가는 날.

동무들은 다 떨어진 신발 대신, 새 고무신을 신은 나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한 동무는 “야! 한 번 벗어봐라. 나도 신어보자”라며 재촉하기까지 했다.

나는 선선히 응했다.

그런데 동무는 장난친다고 저 멀리 도망을 치고 가 버렸다.


그땐, 신발을 종종 바꿔 신고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서 머리를 쓴 것이 쇳조각을 불에 달궈 신발에 이름을 새겼던 것.

이름을 새기고 나서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떤 동무는 고무신을 잃어버려 집에 갈 수도 없었던 적도 있었다.

검정고무신은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재산이었던 것.


고무신으로 딱지치기 놀이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신발은 서서히 닳고 달아 헌신으로 변해갔다.

여름철 양말을 신지 않을 때는 발에 땀이 나 미끄러워 고무신이 벗겨지기가 예사였다.

그로인해,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소를 몰고 갈 때(사실은 끌려감) 신발이 벗겨지면 소는 저 멀리 줄행랑을 쳤다.

고무신을 다시 신고 소를 따라 잡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던 것은 덤으로 작용했다.


대통령‧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때면 표를 얻기 위해 검정고무신이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빽이 없었던지, 그냥 표를 찍어 줄 것이라 믿었던지, 고무신을 볼 수가 없었다.

그게 불법이었음에도, 어릴 때 그 당시로는, 엄청나게 부러웠다.


신발 바닥은 얇아지고, 드디어 작은 구멍이 뚫렸다.

닳고 달아 제 역할을 마치고 이제 생명을 다하는 검정고무신.

내 몸 일부를 보호해 준 고마운 동무요, 동반자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 준 고마운 검정고무신이 아니던가.


이제 나이 들어 불편한 구두보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으면 좋겠다.

거창 5일장이 열리는 날, 장에 나가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사서 돌아 올까나.

50년 전, 아버지가 시장에서 검정고무신 한 켤레 사들고 집에 오듯이.

참, 요새는 흰 고무신도 나오고, 예쁜 문양도 새겨져 나온다나.


[행복찾기] 50년 전, 5일장에 나갔던 아버지가 사 오신 검정고무신 한 켤레

/검정고무신에 대한 추억

/어릴 적 검정고무신은 나의 동무요,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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