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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찾기프로젝트

[隨想] 소나무와 귀촌의 삶/죽풍원의 행복찾기프로젝트

 

지리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전원주택단지.(용유담 위 산 중턱에 자리함)

 

[隨想] 소나무와 귀촌의 삶

 

언젠가 산림청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관심을 끌었다. “어떤 종류의 나무를 가장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에서 약 46%의 응답자가 소나무를 꼽았다고 한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소나무를 선택했다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닐 것만 같다. 어린 시절 소나무 가지를 꺾어 땔감으로 써야만 했던 추억 때문이었을까. 초중고 시절 산으로 강제 동원돼 소나무를 심어야만 했고, 송충이도 잡아야만 했던, 소나무에 얽힌 기억 때문이었을까.

 

진실 여부를 떠나 아주 오래 전, 소나무를 분재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얘기 한 토막이다. “소나무는 분에 심고 3년이 지나야만 살았다고 할 수 있지”. 풀이하자면, 애초 뿌리를 내렸던 땅에서 다른 곳으로 이식하게 되면, 환경 변화로 그만큼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리라. 경험한바 역시 소나무를 분에 심고 3년이 지나서도 죽은 경우가 있었으니, 과히 틀린 말도 아닐 터. 식물은 자라는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인데 어디 식물만 그럴까.

 

집 안에서도 푸른 바다를 마음대로 실컷 볼 수 있는, 쪽빛바다가 있는 거제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큰 섬인 거제도는, 내가 나고 자란 곳으로 꼭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때까지 살았던 정든 곳이기도 하다. 고향 땅을 떠나면 죽기라도 할 것을 두려워해서였을까. 분에 심겨진 소나무처럼 원래의 땅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도 되지 않는 복(?)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소나무 같은 삶이 되고 말았으니, 잘 되었는지 잘 못 되었는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함양에 터를 잡은 지 딱 2년차다. 그 동안 주변 사람들이 안부처럼 묻는 말이 있다. “살기 좋은 거제도를 왜 떠났느냐”, “함양에 연고가 있는지”, “함양으로 온 이유는 무엇인지등등이다. 묻는 사람마다 질문이 같은 이유가 나로서는 더 궁금한 것은 왜일까. 소나무는 화분에 옮겨 심고 3년이 지나야만 제 목숨을 부지한다 했건만, 나는 이제 2년이 지났을 뿐이다. 통계에 의하면 귀농·귀촌인 중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비율이 10% 내외라고 한다. 내가 그 열에 하나가 돼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지,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푸른 소나무로 자랄지는, 1년이 지나고 나서 지켜 볼 일이다.

 

지난 주말 함양문화원의 김종직 선생 숨결 따라, 나의 생생유람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김종직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로 꼽힌다. 15세기 중후반 함양군수를 부임한 김종직은 차세(茶稅)에 대해 군민들이 나지도 않는 차를 공납하느라 온갖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다. 문제를 해결코자 엄천사 북쪽에 관영 차밭을 조성하여 군민들의 고충을 덜어주었고, 이를 기뻐하며 시를 지어 남기기도 하였다.

 

김종직은 세조의 총애를 받아 천역을 벗어난 유자광과의 대립관계에서도 함양에 발자취를 남겼다. 학사루에 걸린 유자광의 시를 내리게 한 김종직은 훗날 무오사화의 원인이 돼 부관참시를 당하는 수모를 후손들은 겪어야만 했다. 또 경상도 관찰사 유자광은 자신보다 아래 직급인 함양부사인 김종직을 만나러 왔으나, 유자광을 경멸하던 김종직은 이은대(吏隱臺)로 피해 숨어버렸다. 이처럼 김종직 선생의 발자취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전해오는 역사의 장으로 함양 땅에 남아 있다.

 

나는 왜 함양으로 귀촌했을까. 군수가, 군 소속 공무원이, 마을 주민이, 나를 함양 땅으로 와서 살아보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그냥 어찌하다 보니 함양으로 오게 돼 2년을 살았다. 그러고는 함양이 2의 고향이니, ‘2의 삶이니, 뭐니 하면서 내 블로그엔 온갖 함양 자랑 글로 도배질이다. 지난 시간 그 어느 누구도 나를 환영해 주지 않았고, 관심 가져 주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면서 잘만 살았다. 그러면서 함양 자랑은 계속되고 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살기 좋은 함양 땅이라고. 그래도 나는 행복할 따름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휠지라도 잘 쓰러지지는 않는다. 분에 강제로 이식된 소나무는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발근제를 줘야만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욕심을 내어 성분이 독한 비료를 쓴다면 어떻게 될지는 추측이 가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함양 살이 3년차에 초등학교 교과목인 함양의 지리와 역사문화 공부를 마쳤다. 함양문화원이 추진하는 문화사업인 생생문화제를 통해서 함양군민 입학식도 치룬 셈이다. 지난 2년 발근제 도움 없이 살아온 소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겨냈다. 함양문화원이 뿌려주는 김종직 선생 숨결 따라 외 깊은 산골, 꼬신내, 마을문화제 과목 등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영양제가 틀림없다.

 

바람이 있다. 내년에는 보다 많은 귀촌한 사람들이 발근제와 영양제의 도움으로 함양 땅에 튼튼한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그날 아낌없이 도움을 주신 함양문화원 관계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손바닥이 짜릿한 박수를 보낸다.

 

함양문화원에서 주관한 '김종직 선생 숨결 따라, 나의 생생유람기' 참가자 기념촬영.(용유담 상부 용유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