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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지역

[경남 고성여행] 얻으려는 것 보다, 버리려는 마음이 생기는 고성 문수암 여행

 

[경남 고성여행] 얻으려는 것 보다, 버리려는 마음이 생기는 고성 문수암 여행

 

 

[고성여행] 문수암에 오르면 발 아래로 펼쳐지는 남해 바다 풍경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꼭대기에 보이는 금동좌불상은 약 2km 떨어진 해동제일기도도량인 약사전이다.

 

[경남 고성여행] 얻으려는 것 보다, 버리려는 마음이 생기는 고성 문수암 여행

 

얼마나 오랜만에 찾은 길이었을까? 도로 옆 풍경은 옛 모습 그대로이건만, 굽이도는 비탈진 돌멩이 자갈길은 온데 간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말끔히 포장된 아스팔트는 차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인도해 준다. 지난 3일. 경남 고성 문수암으로 가는 길은 그 예전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다.


주차장에서 500여 미터를 걸으면 닿는 곳이 문수암. 절터 주변은 암석지대로 경사가 심한 편이다. 지형적으로 좋지 않은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암자를 세웠을까 궁금증이 인다. 대신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림보다 더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잠깐 사이에 생기는 어떤 느낌. 올망졸망 섬과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왜 절터를 잡았는지를.

 

[고성 가볼만한 곳] 기와지붕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둘은 얼마나 긴 세월을 품고 지내 왔을까?

 

문수암은 쌍계사의 말사로 고성 상리면 무이산에 위치하며, 688년(신라 신문왕 8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산명이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특히 화랑도 전성시대 때는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머리에 작은 돌멩이를 인 목장승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빼곡하게 쌓여 있는 저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는 여행자의 작은 소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작은 돌멩이 하나를 얹었다. 두 눈을 반쯤 내리 뜬 모습은 해탈의 경지를 넘어서는 표정이다.

 

[고성군여행] 문수암 입구에 서 있는 목장승. 머리에 인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에 불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면 그 곳을 관통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절벽 위에 앉은 법당은 천년세월을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며 수행하는 고승과 같은 존재다. 바위틈에 새어 나오는 물 한 모금을 떠 마셨다. 물은 만물의 근본이요, 생명이다. 그렇기에 물이 곧 나의 육신이자, 정신이라. 언제부터인가, 절을 찾을 때 작은 미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보게 된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수행이요,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절을 찾을 때, 작은 미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나


짙은 녹색을 띤 잎사귀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다.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난 작은 계단 하나하나를 밟고 발길을 옮기며 무상에 빠져 보기로 했다. 걷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일부러 아무 생각이 나지 않도록 머릿속을 비워보려 시도하는 나. 그러나 웬걸, 여름철 잡초처럼 잡념만 머릿속을 뚫고 무성하게 피어날 뿐이다.


대웅전 뒤쪽에는 큰 암벽이 있는데 사람 몇 명이 모여 있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서로 번갈아가며 바위 틈 사이로 뭔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문수보살상이 바위틈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몇 달 전, 어느 방송국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떠오른다. 뒤를 이어 나도 세심하게 보니 빛 사이로 작은 보살상이 희미한 모습으로 보인다. ‘어떻게 저 작은 틈새 사이에 보살상이 있을까’, 신기할 뿐이다.

 

[고성여행] 문수암 뒤쪽 암벽 사이에 문수보살상이 있다. 문수단 앞 땅 바닥에 두 발자국이 그려져 있는데, 이 곳에 정확히 맞춰 서면 문수보살상이 보인다.(바위 틈 중간 하얀 부분)


문수암의 창건 설화에 의하면, 의상조사가 구도행각 중 노승으로부터 현몽을 얻어 걸인을 따라 갔다고 한다. 이때 걸인이 석벽 사이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또 한 걸인이 나타났고,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고 한다. 의상조사는 석벽사이를 살폈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비로소 두 걸인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고성군여행] 절벽 위에 어떻게 이런 절터를 잡았으며 지었을까 궁금하다.


지금도 천연의 문수보살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는데, 이곳을 문수단이라고 하며, 사람들은 줄을 서 가며 이곳에 기도하고 있다. 문수단 앞 땅 바닥에는 두 발자국 표시를 해 놓았는데, 이곳에 정확히 맞춰 서면 문수보살상이 보인다. 백 원짜리 동전에 담은 불심이 암석 벽면에 가득하다.


저 멀리 바다에서 인 바람이 산중으로 타고 든다. 그런데 이 정도 바람이면 절터에서 울어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풍경소리다. 고개를 하늘로 향해 울음소리가 날 만한 곳을 찾아보니 풍경이 없다. 그 자리엔 풍경을 단 고리흔적만 지키고 있다. 절터에서 듣는 풍경소리는 혼탁한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고마운 존재인데 아쉽기 그지없다.

 

[고성문수암] 울어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니 풍경이 온데간데 없다. 어디로 갔을까?


마당 한편에 쌓여 있는 기와불사. 무수한 사람들의 소원과 꿈과 희망을 담은 기왓장이다. 어떤 이는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빌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자식의 밝은 장래를 기도한다. ‘좋은 대학도 가야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도 해야 된다’고 한다. 문득, ‘좋은 것’이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겨우 사람 몇 명이 설 만한 공간에 작은 전각이 있다. 산신각이다. 그런데 문패 같은 현액이 걸려 있지 않다. 비바람에 떨어진 것일까, 세월의 흐름 탓일까. 기와지붕에 떨어진 낙엽은 흙으로 변한지 오래고, 그 위에 핀 잡초는 세월의 나이를 가늠케 해 주고 있다.


법당에 백팔 배 기도하고 절터 한 바퀴를 둘러봐도 한두 시간이면 넉넉할 문수암.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시간 내내 발아래 풍경은 또 다른 곳으로 여행자를 인도하려 한다. 바로 눈앞 산꼭대기에 우뚝 솟은 채로 앉은 금동좌불상이 그곳이다.


문수암, 약사전 그리고 보현암으로 이어지는 사찰여행

 

[고성 문수암] 문수암에서 약 2km 떨어진 해동제일기도도량인 약사전에 있는 금동좌불상.


문수암에서 약 2km 떨어진 금동좌불상이 있는 약사전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단체여행객을 실은 대형버스도 주차해 있다. 그만큼 소문이 난 모양이다. 해동제일기도도량이라는 일주문이 웅장하다. 약사전은 약사여래불상을 봉안한 사찰의 불전이다.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목숨을 연장시켜 주며, 일체의 재앙을 소멸하고 의식을 구족하게 해 주는 부처님을 모신 곳을 일컫는다. 대개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나 그 가족을 위해 많이 찾고 있는 기도도량이다.

 

[고성 해동제일기도도량 약사전] 해동제일기도도량 약사전에서 본 문수암.


합장기도하고 계단을 올라 금동좌불상 앞에 이르니 불상의 규모가 나를 압도한다. 높이가 얼마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큰 크기에 비해,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는 중생의 온갖 고통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곳 약사전에서 보이는 문수암은, 몇 시간 전에 본 그 문수암이 아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전이 있는 이곳도 높은 곳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풍경은 시야를 떠나지 않는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암자 하나가 눈에 또 들어온다. 보현암이다.

 

[고성 보현암] 보현암 법당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암벽에 모셔 놓은 부처님께 기도를 올릴 수 있다.


이곳 보현암도 앉은 터가 큰 바위를 품고 있다. 바위 밑에 앉은 부처님은, 언제나 그렇듯 평온하다. 사람이 화가 나도 웃는 얼굴에는 화난 얼굴을 보일 수 없지 않을까. 온화한 미소를 짓는 부처님을 보니, 이런 생각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만 같다.


작은 연못에는 하얀 수련이 봉우리를 맺었다. 어떤 것은 백옥 같이 흰 꽃잎을 벗겨내며,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물속에는 큰 비단잉어가 노닌다. 평화와 자유를 만끽하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고성 보현암] 보현암 작은 연못에 핀 수련. 백옥같은 하얀 속살을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여행자에게 내 보여 주고 있다.


문수암과 약사전 그리고 보현암에 이르는 경남 고성의 사찰 답사 여행길.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나라도 더 가지려 욕심 부리는 것이 보편적이라면, 아마도 욕심 없는 사람은 없을 게다. 사찰여행은 참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하나를 얻으려는 것 보다, 욕심 하나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경남 고성여행] 얻으려는 것 보다, 버리려는 마음이 생기는 고성 문수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