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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8년간 독수리와 사랑 나눈 어느 교사의 하루


'몽골독수리' 겨울나기 도와주는 김덕성 교사

  
▲ 85번 독수리 올해 처음으로 관찰된 독수리
독수리

"어이, 85번, 앞으로 나와! 야, 임마, 너는 뒤로 빠져. 85번, 빨리 오라니깐. 이리 와서, 이거 받아먹어."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혼잣말도 아니다. 손에는 출석부 대신 장갑을 낀 채, 경남 고성읍 철성고등학교 운동장 뒤쪽 논바닥에서 돼지비계를 들고 먹이를 주는 선생님이 있다. 이곳에 찾아온 몽골 독수리에게 겨울나기 먹이를 주는 김덕성(58, 경남 고성읍 철성고등학교 미술교사) 선생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독수리와 사랑 나누는 선생님  

  
▲ 비상 힘차게 하늘을 난다. 멋진 녀석이다
독수리

지난주, 몽골 독수리가 겨울나기를 하는 고성 땅을 찾았다. 선생님이 베푼 독수리 사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2월, 겨울방학으로 들어가기 전, 자연체험 학습시간을 위해 읍내 한 초등학교로 가게 된다. 그때, 평소 보지 못하던 독수리를 만나게 되고, 먹이를 주면서 사랑과 전쟁은 시작되었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자연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 부회장 일을 맡고 있고,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1년의 반을 독수리를 위해 사랑을 쏟고 있다. 한 번 먹이를 줄때 150~200마리가 날아들기 때문에 먹이 구하기가 쉽지 않다.  

  
▲ 김덕성 선생님 경남 고성 철성고등학교 뒤편 논바닥에서 독수리 먹이를 주고 있는 김덕성 선생님
독수리

모터사이클을 타고 읍내 정육점을 돌아다니면서 소나 돼지의 내장, 비계 등을 수집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하여, 3일에 한 번 밖에 먹이를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오전 10시 30분, 포대에 든 먹이를 꺼내 빈 논바닥에 흩뿌려 놓는다. 그런데, 독수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질퍽거리는 논둑을 가로질러 녀석들을 찾아 나섰다. 

  
▲ 독수리 무리.
독수리

100여 미터쯤 나아가니 논 옆 묘지에 검은 비닐로 덮어 놓은 물체가 눈에 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독수리였다. 순간, 무척이나 놀랐다. 커다란 덩치에, 날카로운 부리에,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해졌다. 먼 들녘에 독수리들이 무리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시간을 훨씬 넘게 죽치고 기다렸다. 오후 1시가 넘자, 하늘을 빙빙 도는 독수리. 10~20마리가 모이더니 순식간에 100마리쯤 무리지어 나타났다. 하늘을 빙빙거리면서도 좀처럼 내려앉지 않던 독수리 떼. 우두머리가 먼저 앉아야 하는 서열 때문일까? 한참을 지나 먹이가 있는 장소에 내려앉기를 시작했다. 

  
▲ 독수리 눈이 매섭다
독수리

  
▲ 먹이경쟁 먹이다툼 경쟁이 치열하다
독수리

먹이다툼 경쟁은 치열했고...  

매서운 눈매가 푸른 광채를 띤다. 눈알도 소 눈알 크기만 하다. 날카로운 발톱에 할퀴는 날이면 끝장 날것만 같았다. 먹이를 낚아채는 것도 순간. 씹지도 않고 한 입에 삼켜 버렸다.어떤 때는 먹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몸싸움이 치열하다. 크고 긴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생기는 바람으로 먼지가 인다. 헬리콥터가 착륙할 때 이는 바람과 같다. 어떤 녀석은 선생님이 손에 쥔 먹이를 낚아채 달아난다. 

무리 중 눈에 띄는 녀석이 있다. 날개에 85라는 번호를 단 녀석과 발목에 녹색 가락지를 낀 녀석이다. 이동경로를 알기 위해 몽골 독수리연구단체에서 붙여놓은 것이라고 한다. 85번 개체는 올해 처음으로 관찰되었으며, 녹색발가락지를 낀 녀석들은 매년 관찰된다고 한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관찰되던 49번은 올해 결석(?)이라면서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 먹이 김덕성 선생님의 손에 있는 먹이를 낚아채고 있다. 좀처럼 이런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고 한다.
독수리

"배고픔으로 인한 탈진이나 부상으로 제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녀석들이 가끔 생기지요. 다행히 회원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해서 보내기도 하지만, 가끔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죠." 

먹이를 주고 나서 두 시간여, 먹이를 먹는데 두 시간여. 선생님은 독수리와 이렇게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 먹이를 준비하는 시간은 별도로 계산해야 함은 물론이다. 고성 땅에 날아오는 독수리는 약 3백여 마리. 이렇게 많은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고 관심을 쏟는 일은 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남의 밭에 앉아 먹이를 먹다 농사일을 망치게 되면 자비로 보상을 해 준다는 선생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고, 자식 많은 집에 걱정거리 없을 수 없다고 말하는 선생님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한다. 자연에서 배우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선생님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 독수리 떼 하늘을 빙빙거리며 돌고 있는 독수리 떼.
독수리

- 몽골지방의 독수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까지 이동하는지, 그리고 월동하는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 날아오는 독수리는 몽골지역에서 봄부터 초가을까지 번식을 합니다. 이후 10월말부터 중국, 북한, DMZ를 거쳐 먹이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남 고성지역에는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초순까지 겨울을 나고 몽골로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 철원지역에서 많은 개체가 겨울을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그리고 먼 거리인 이곳 고성까지 어떤 이유로 날아오게 되는지요?

"DMZ는 한국에서는 가장 생태계가 잘 보존 되어있는 지역으로 월동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철원, 파주, 연천 등은 군, 관, 민이 협력해서 오래 전부터 먹이주기를 체계적으로 해오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독수리의 특성상 먹이서열에서 뒤쳐진 어린 녀석들이 먹이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독수리의 먹이서열은 철저합니다"  

- 세계적으로 독수리의 개체 수는 얼마나 되며, 우리나라에는 몇 마리쯤 날아오는지, 그리고 어느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지요?

"약 1만 5천여 마리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철원지역에 약 3천여 마리가 있고,  주로 DMZ에서 겨울나기를 하죠. 그리고 한강하구 둑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고성지역은 약 3백여 마리가 날아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경북 고령지역에 50~100여 마리가 날아온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 경남에서는 고성지역 외에 다른 지역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곳이 있는지, 그리고 개체 수는 어느 정도 되는지요?

"고성지역 외에 인근 진주시 일반성면과 사천시 일대를 비롯하여 산청군 등에서도 소수의 무리들이 관찰되고 있는데, 먹이부족 현상을 많이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 먹이를 주고 나서 두 시간이 넘게 흘렀는데, 아직까지 하늘을 빙빙 돌며 내려앉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독수리의 먹이 서열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보다 철저합니다. 서열에 처진 녀석들은 감히 먹이 경쟁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앉기 전까지는 먼저 내려앉지 않죠."  

  
▲ 착륙 먹이를 찾아 논바닥으로 착륙하는 독수리
독수리

- 무리 뒤쪽에 있는 녀석들은 앞쪽에 위치한 먹이를 먹지 못하는 것 같은데, 앞쪽으로 나와 먹이를 먹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지? 또한, 배고픔, 탈진, 부상 등으로 낙오되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는 없는지요?

"서열로 인한 먹이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무리 뒤쪽에 있는 약한 녀석들은 힘이 센 녀석들과 먹이경쟁을 하기 힘들지요. 그리고 배고픔, 탈진, 부상 등으로 소수의 무리들이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 무리 중에는 85번 번호를 단 개체와 발목에 녹색가락지를 붙인 개체가 관찰되고 있는데 무슨 목적으로 표시를 해 놓은 것인지요?

"몽골지역의 독수리 연구단체에서 붙인 것으로 보이며, 이동경로의 과학적인 추적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독수리 경남 고성읍 철성고등학교 뒤편 논바닥에 날아온 몽골산 독수리 떼
몽골

- 지난 8년 동안 먹이를 주면서 똑같은 번호를 가진 독수리가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이 지역을 찾은 기록이 있었는지요?

"49번 독수리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성지역에만 3년 동안 연속적으로 관찰되었으며, 85번은 올해 처음으로 관찰되었습니다." 

- 농촌 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축사가 있는 주변에 독수리가 많이 날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독수리가 살아가는 생태습성으로 사체만을 먹기 때문이죠." 

- 하늘을 날 때 날갯짓을 하는 것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먼 거리를 날아 갈수 있는지, 그리고 기러기 떼처럼 우두머리가 선두에서 지휘를 하면서 나는지 궁금합니다.

"워낙 덩치가 커서 날갯짓을 하기 보다는 기류를 이용해 활공을 합니다. 이동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관찰 할 수가 있지요. 기러기 떼처럼 선두가 있기 보다는 우두머리가 지휘를 하면서 무리를 이끄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독수리 떼 경남 고성읍 철성고등학교 뒤편 논바닥에 날아든 몽골산 독수리
독수리

- 지난 8년 동안,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활동을 해 오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독수리에 관한 국내 연구 논문이 적어 아쉽습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에 필요하다는 생각이며, 전문기관에서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환경과 생명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그리고 유치원생이나 초중학생들의 독수리 먹이체험 활동을 한 적이 있는지?

"모든 생명의 귀중함은 교육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까닭에 유치원생, 초중고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먹이주기 운동에 함께하며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곤 합니다." 

- 현재,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의 부회장직을 맡고 계신데, 이 단체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약 500여명의 선생님들이 자기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금의 새만금은 물길이 비록 막혔지만, 여름철이면 아이들과 함께, 각자 회비를 내어 1주일간 체험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벌써 7년이나 되었죠.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전국의 뛰어난 활동가 선생님들의 활동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독수리의 고유번호를 외치며 제자들 가르치듯 출석을 부르고, 호통 치면서, 풍성한 마음으로 먹이를 주는 김덕성 선생님. 독수리가 제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4개월을 추운겨울과 함께 할 것이다. 선생님의 손에는 독수리의 생명을 유지할 풍성한 먹을거리가 늘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다. 선생님의 풍성한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