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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당신을 존경합니다. 영면하소서"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조문을 다녀와서

"이 사람들이 해도 해도 너무했지 않나 싶어."

"그래, 부인과 아들, 사위까지. 그리고 딸 재산까지도."

"다음에 어쩌려고 그러는지 몰라."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차를 타기 위해 걸어 나오면서 같은 방향의 사람들로부터 들은 대화 내용이다. 60대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함께 걸으며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보다 더 심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굳이 말을 안 해도 알 것만 같았다. 말하는 이들에게 진한 원망이 배어 있음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지난 주말(23일), 편안하게 티브이를 보는 내 눈을 의심했다. KBS 방송 화면 밑으로 큰 자막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자막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노 전 대통령, 뇌출혈 병원 후송' 이렇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직감이 온 몸을 덮쳤고 힘도 빠졌다. 다른 방송으로 채널을 돌렸지만, 그곳에는 웃고 떠들고 일상적인 주말 티브이 모습이다.  

다시 채널을 돌려 보니 자막과 함께 아나운서가 직접 나와 긴급소식을 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뉴스는 미확인 소문에서 진실로 향해 가고 있다. 설마, 설마 하는 나의 직감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드디어 나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평온한 주말 아침, 원치 않은 이런 급보를 알아야만 했다. 

하루가 지난 일요일(24일), 방송뉴스는 사실보도 위주였지만, 인터넷은 추모 글과 가슴 아픈 사연으로 도배를 했다. 눈물이 나서 읽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평온히 웃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니 서거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후 1시 반, 무작정 차를 몰고 봉하마을로 향했다. 

운전하는 내내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부터 대통령 당선에 이르는 전 과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고졸 대통령,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했던 노 전 대통령.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감동시킨 것은 필요 경호원만 대동하고 자갈치 시장에서 곰장어를 먹으러 오겠다고 한 후보 시절의 연설이었다. 

만감이 교차함을 느끼며 김해에 도착했으나 밀려든 인파로 차량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방송에서는 혼잡한 인파로 2㎞를 걸어가야 한다고 했지만, 차량 네비게이션은 4㎞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방송 헬기가 조문 인파와 차량이 밀린 도로상태를 찍기 위해 굉음을 내며 빙빙 돌고 있다. 오늘 만큼은 이 굉음소리가 짜증스럽다. 차를 버리고 한 시간을 넘게 걸었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렸는지 2차선 도로 폭이 사람으로 거의 찰 정도다. 걷는 내내 상념에 잠겼다. 

분향소가 차려진 회관입구에 다다르자 몹시 혼잡하다. 하지만, 질서정연하다. 수많은 조문객들의 슬픔의 눈물인지 봉하마을에는 한동안 비가 내렸다. 흐린 시야 사이로, 티브이 화면에서 본 부엉이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을까? 얼마나 깊은 고통을 느꼈을까? 

대열에 끼어 조문을 시작했다. 한꺼번에 20~30여명 같이 했지만, 많은 사람이 몰린 탓에 한 시간여를 기다려야만 했다. 밝은 모습의 영정사진 앞으로 국화 한 송이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짧은 묵념 시간, 잠시, 눈물이 볼기를 타고 흘렀다. 채 1~2분도 걸리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마음에 담아 온 노 전 대통령을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계속된 조문행렬은 끝이 없다. 50대 여성들로 보이는 단체 조문객 전부는 바닥에 엎드려 큰 소리로 통곡하는 바람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안내요원들의 설득으로 가까스로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었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분향소 맞은 편 이층 건물 옥상에서 7~8명의 남자들로부터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근혜가 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엄숙한 분위기 탓인지 이내 조용해졌다. 이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문상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뉴스로 들었을 뿐이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역시도 혼잡하다. 한참을 걸었을까? 30~40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있다. 그 중엔 눈에 낯익은 이도 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두 사람을 마주하고 논쟁하는 이는 아마도 노사모 회원인 모양이다. 조중동 기자들은 절대로 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취재는 할 수 있게 해 줘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것. 얼마나, 어떻게 하였기에 저토록 일부 언론을 향한 감정의 골이 깊을까? 설전을 뒤로 하며 발길을 옮기면서 드는 생각이다. 

"전직 대통령을 지낸 사람을 불러다 놓고 뭐한다고 열 몇 시간을 보내지?"

"그러게 말이야. 신문에서도 봤는데, 의혹이 생기고 나서부터 조사하는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하더군."

"그것도 그렇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처리할지도 결정이 안 났다고 하잖아."

"자존심 강한 전 대통령께서 아마, 그런데서 심한 압박감을 느꼈을 거야." 

길을 걸으며 또 다른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언론을 통하여 정보를 취득하고 나름대로 분석하는 의미 있는 대화였기에 관심 있게 들을 수 있었다. 삼삼오오 같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조문객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후 1시 반에 출발하여 다시 집에 도착하니 9시 반이 넘은 시간이다. 8시간을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울적한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된 하루였다. 

빈소 방명록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