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신문 2000년 12월 3일(제505호)


따뜻한 마음을 열자


얼마 전 퇴근길 버스 안이었다. 승객들은 좌석을 다 채웠고 몇 사람 정도만 서서 가던 중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버스 입구 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작은 소란이 일어났고 승객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다름 아닌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삼십대 후반쯤으로 다소 왜소하고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젊은 남자가 그 장면의 주인공이었고, 아마도 그는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으며 당장 밥 사먹을 돈이 없고 살아가기 힘들다며 이 만 원만 보태달라고 자신의 인생역정을 이야기 하면서부터 소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애처로우면서 가련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외면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나 역시 좁은 버스 안에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양복 안주머니로 몇 번 손이 갔으나 원위치가 반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아무도 그의 편이 돼 동정의 눈길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쉽게 포기하고 버스를 내릴 것 같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이만 원을 달라고 하더니 뜻대로 되지 않자 만원 만 줄 것을 사정했고, 그것도 안 먹혀들자 천원만이라도 보태달라며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 눈을 감는 사람, 잡지를 보는 사람 그리고 아예 못 본척하는 사람들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승객들의 모습이 역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안의 어색한 분위기는 계속됐고 그는 입구에서 내가 서있던 뒷자리까지 한 걸음씩 발을 옮겨 놓더니만 작심한 듯 차가운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애원에 가까운 모습으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결국 내가 찍히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고, 순간 타의에 밀려 억지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내가 먼저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 손은 재빨리 움직였고 지갑은 순식간에 열렸으며 만원은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왜 젊은 사람이 이런 걸 하느냐?”


노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되지 않느냐고 하자 어깨를 다쳐 일을 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고작 돈 만원 주면서 별말을 했나 싶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서야 그는 버스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뒤로 한 채 어둠이 깔린 도심 저편으로 사라졌고 퇴근길 승객들의 피곤함까지 실은 육중한 버스는 굉음을 내면서 안식처를 향한 힘찬 걸음을 재촉했다.


주인공 없는 무대공연 ! 주인공이 사라진 좁은 공간에서 관객만이 텅 빈 무대를 바라보며 불과 4~5분전 평상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버스로 출퇴근하는 나로서는 여러 가지의 일들을 상세하게 목격하고 체험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서민들의 삶이요, 애환이 아닐까 싶다.


겨울 외투를 입을 정도로 이 며칠 추운 날씨가 이어졌고,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는 12월이 열렸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세밑이다. 매서운 날씨가 우리들의 육체를 얼게 할지라도 마음까지 얼리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이 겨울날 따뜻한 마음으로 나 보다 못한 우리의 이웃을 돌아봤으면 어떨는지...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