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름에서 정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름은 불러만 봐도 목이 메이는 것만 같고, 어떤 이름은 들어만 봐도 눈물이 왈칵 쏟아 질 것만 같은 정겨운 이름이 있습니다. ‘하동(河東)’이라는 이름이 그런 느낌을 줍니다. 자신이 태어난 고장이 아름답고 자랑스럽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다마는 내게 있어서 경남 하동은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하고 사랑스런 고장입니다. 군 근무시절 첫 휴가 나와 힘차게 거수경례를 하며 어머니를 보았을 때, 가슴 찡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도 억지로 참았던 기억과도 같은 그런 느낌이기도 합니다.

▲ 어머니 젖줄 같고,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한 섬진강.
그저 하동이 좋아 일년에도 몇 번을 갑니다. 하동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하동에 살고 있는 사람보다 하동을 더 많이 안다고 자랑을 하다 '구살머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자랑스럽고 좋다는 말입니다. 남해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읍내로 가는 길목 삼거리 공한지에는 하동을 대표하는 관광안내 표지판이 몇 개가 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 눈을 사로잡고야 맙니다.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라는 표지판입니다. 차량이 신호등에 의해 정지된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운전자들이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
전국에는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가 많이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하동포구에서 섬진강을 따라 구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9번 국도, 천혜의 자연절경과 쪽빛바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도는 칠백리 해안선을 자랑하는, 거제도 장승포에서 해금강까지 이어지는 14번 국도, 북한강 푸른 강줄기를 옆에 두고 46번 국도를 따라가다 의암댐에서 다시 403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강변도로가 제일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 군데 드라이브코스 중 어느 곳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여, 이 기사를 접하고 필자가 언급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구례까지 43㎞가 남았습니다.
삼거리를 지나니 구례까지 43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길옆으로는 하동의 자랑인 배 밭이 보입니다. 배꽃이 흰눈처럼 쌓여 있습니다. 바람이 부니 배꽃 잎이 날려 갑니다. 올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줄 것만 같습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국도 주변으로 식재된 벚꽃나무 터널입니다.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기 때문입니다. 4월초, 잎보다 먼저 활짝 폈던 벚꽃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푸른 녹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시원한 모습이다. 강과 도로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구례 쪽으로 가고 있다.
하동은 영화, 드라마, CF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영화로는 피아골(1995), 역마(1967), 청춘(2000), 취화선(2002) 등이 있고, 드라마는 허준(1999∼2000), 토지(2003∼2005), 태양은 가득히(2000) 등이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잠시 머물게 합니다.

▲ 섬진강 둑에 지천으로 피어 난 제비꽃. 너무나도 아름답다.
악양면 평사리는 들판 가득 녹색 보리밭의 푸른 물결이 출렁거립니다. 동학혁명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이 곳을 무대로 한 한민족의 대서사시, 박경리 원작의 ‘토지’의 주무대입니다. 차에서 내려 소설속의 무대로 잠시 빨려 들어 가 봅니다.

“길상아, 난 다 버릴 것이다. 양반으로서의 체면도 여자로서 굴레도, 그리고 반드시 돌아와 저 땅을 다시 찾고 말 것이다.” 한 여인의 한 맺힌 집념과 한을 엿 볼 수 있는 드라마 ‘토지’ 대사의 일부분입니다.

겨우내 추위로 땅에 짝 달라붙어 있던 보리는 어느새 작은아이의 키만큼 훌쩍 자라 버렸습니다. 오월이 되면 그 싱그러운 푸르름은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넓은 들판 뒤로는 ‘최 참판댁’이 보입니다.

▲ 악양면 평사리 들판. 좌측으로 보이는 마을이 드라마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 자락의 수많은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은 어머니 품으로 모여듭니다. 명절마다 형제들이 큰집으로 모이는 것과 같다는 느낌입니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강물은 은색으로 빛이 반짝거립니다. 강가에서 두 남자가 낚시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오버랩 됩니다.

무릎까지 찬 강물에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자세로 플라이 낚싯줄을 던지는 모습과 햇살을 받은 낚싯줄이 춤을 추듯 날아가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숨 가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잠시 동안이나마 자연을 벗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풍요로운 생활인지 일깨워 주는 영화라서 그런지 더욱 그런 생각이 사무칩니다. 참으로 서정적인 모습입니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낚시장면과 서정적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다.
자동차는 경상도를 넘어 전라도 땅에 접어듭니다. 구례읍으로 가다 토지면 구례동중학교 입구 도로 이정표에 표시된 사성암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간전교를 지나 섬진강을 건넜습니다. 다시 우회전하여 충실하게도 도로표지판의 지시에 따라 갔는데 안내표지판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찾아갔건만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4월의 섬진강은 푸르름을 더해만 가고 있다. 이쪽은 경상도요, 저쪽은 전라도라.
아쉬운 마음으로 광양방향으로 차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섬진강 반대편 전라도 땅입니다. 섬진강 좌우의 도로에는 ‘전망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이 여러 군데 서 있습니다. 작은 주차장도 있어 잠시 차에서 내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강물 속에 빠져버린 자신의 모습도 감상할 수 있어 좋습니다. 여름철이었다면 강물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벚꽃나무 가로수 길. 4월초에 핀 벚꽃은 사라져 버렸다.
광양 매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작지만 한국의 미가 흠뻑 넘치는 정자에 올라 푸른 강줄기를 내려다봅니다. 모래사장에는 주인을 어디로 보냈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선 몇 척이 있습니다. 조금 외로워 보입니다.

▲ 休息(휴식).
섬진강 다리를 건너 다시 하동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재첩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전면 선소리 신방촌마을 식당이 즐비한 주변 공터에는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과 가리맛조개를 파는 할머니들의 부산함이 즐거워 보입니다. 2만원을 주고 재첩과 조개를 샀습니다.

한 대야가 훌쩍 넘는 엄청 많은 양입니다. 중국산 아니냐고 슬쩍 농담조로 물으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저녁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재첩국은 끓이고 조개는 숯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4월의 셋째 주 일요일(4월 16일)은 섬진강 물줄기와 며칠만에 보는 어머니와 시원한 국물 맛에 흠뻑 취하고 빠졌습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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