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해방을 동시에 품고 있는 섬으로 떠난 여행

▲ 형제바위
섬[島], 제주도나 거제도처럼 너무 커서 섬의 내륙에 들어서면 바다가 보이지 않을 만큼이나,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이 안가는 아주 큰 섬이 있는가 하면, 몇몇 주민들이 밭뙈기 몇 평에 채소 가꾸고, 비탈진 산 속에서 염소 몇 마리 키우며, 작은 어선 한 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런 작은 섬이 있는 반면, 해외여행의 대명사처럼 야자수 잎이 출렁거리고 에메랄드빛 바다 속이 훤히 다 보이는 맑은 바닷물이 있는 파라다이스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섬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섬, 백령도. 삼 년 전 계획을 잡았다가 개인 사정으로 포기해야만 했던, 내게 있어서는 미지의 섬. 창원에서 네 시간 반을 달려 인천에 도착했다. 멀고 먼 길이고 지루한 시간이다. 국토의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의 여행이라 차편도 배편도 내게 편하게, 그리고 맘대로 짜여져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배편에 시간을 맞추어야만 하는 것이 백령도 배편이다. 어차피 떠난 여행이라면 즐거움을 더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 첫날, 인천항 유람선을 타고 영종대교의 야경을 감상하면서, 쇼 관람과 선상 불꽃놀이를 즐겼다. 많은 여행객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려온다. 아마도 다음날 백령도를 찾아갈 사람들인 모양이다.

▲ 인천대교 건설현장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해병대가 아닐까? 해병대 하면 귀신 잡는 무적의 용사. 해병이 잡는다는 그 귀신을 잡으러 백령도로 향했다. 기적을 울리며 인천항을 떠난 쾌속선은 빠른 속도로 나아가면서 하얀 포말을 내뿜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다 위에 말뚝 같은 것이 여러 개 서 있다. 알고 보니 인천대교 건설현장이다.

한국도로공사의 홍보자료에 따르면, 하늘과 바다와 땅을 연결하는 세계의 관문으로, 세계 5대 장대 해상 사장교로서, 동측으로 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와 서측으로 동북아의 허브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세계적인 교량이라고 한다.

그 규모로는 국내 최장대 교량(18.2㎞, 세계 6위 규모), 사장교 주경간장 국내 최대(800m, 세계 5위 규모), 주탑 높이는 230.5m 63빌딩 규모로서, 2009년 10월 준공 예정으로, 본 공사가 완료되면 인천국제공항과 수도권 남부의 제2, 제3경인고속도로를 연결하여 기존 인천공항고속도로에 비해 주행시간을 40분 단축하고, 송도 국제 업무시설단지와 영종 물류관광단지의 건설 촉진 및 가치를 극대화하여 외국자본 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 한다.

육지의 고속도로라면 휴게소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련만, 휴게소 없는 해상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지루한 시간이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을 치는 사람, 잠자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선 내외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가져와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섬 내에 있는 넓은 평야지대
네 시간을 달려 소청도에 도착했고, 삼십 분을 더 달려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인천항에서 백령도까지 뱃길로 228㎞의 먼 거리다. 출발할 때 화창한 날씨라 너무나도 좋아했는데, 섬에 도착하니 반겨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였다.

우의도 준비하지 않은 탓에 비를 맞으며 걸었다. 설마 뼛속에 물이 들어갈까 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곳에서의 여행수단은 섬 내에 있는 관광버스를 이용하든지, 택시나 렌트카를 이용해야만 한다. 시내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관광명소를 다 경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 백령도에서 제일 큰 다리로 유명한 백령대교
섬이라고 하지만,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넓은 평야가 보인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 강화도, 남해도, 안면도, 완도,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 큰 섬인 백령도. 십수 년 전, 바다를 매립하여 수십만 평의 농토를 만들었다고 한다. 매립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스물다섯 번째 크기의 섬이었지만, 매립 후에는 여덟 번째 크기의 섬이 됐다.

구수한 토박이 말씨가 정겨운 관광버스 기사님이 쉼 없이 섬 자랑을 늘어놓는다. 백령도에도 서해대교나 영종대교처럼 크지는 않지만, 40t의 하중을 견디는 길이 30m의 백령대교(?)가 있다고 한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여행객 모두 의아한 모습으로 기사님을 쳐다봤지만, 기사님은 살며시 미소 지을 뿐이다. 백령대교는 다름 아닌 제방을 쌓으면서 만들어진 조그만 다리다. 입구에는 진짜 대교에서나 있을 법한 백령대교라는 명패가 보인다.

▲ 콩돌해변의 형형색색의 콩돌

▲ 콩돌해변
섬 내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콩돌해변(천연기념물 제392호)에 도착했다. 오금포 해안을 따라 1㎞ 정도 형성되어 있는 콩돌해변은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 콩알만한 크기의 형형색색 그 모양이 너무나 아름답고, 파리 한 마리 앉지 못할 정도로 반들반들하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보니 그 촉감이 너무 좋고 지압 효과도 있어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룬 이렇게 멋진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어찌 보면 사람 발길 닿기 힘든 백령도에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 모른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와서 콩돌을 주워가기 때문에 감시초소까지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 대형버스가 지나가도 웬만한 바퀴자국이 남지 않는 사곶해수욕장
백령도 동남쪽 진촌리 사곶마을 해변에 위치한 사곶해수욕장(천연기념물 제391호)은 길이 3㎞, 폭 300m의 천연비행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전 세계에서 이곳과 이탈리아 나폴리 두 곳밖에 없다고 한다. 모랫바닥이 얼마나 단단한지 대형버스가 지나가도 바퀴자국만 남을 뿐, 자동차 운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런 특수성으로 6.25전쟁 때는 천연비행장과 유엔군 작전 전초기지로 활용했다고 한다. 물이 빠진 모래밭에는 조개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입을 벌리고 숨을 쉬고 있는 조개 한 개가 역동적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 두무진
백령도 여행 둘째 날은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다음날, 유람선을 타고 긴장의 바다로 나아갔다. 유람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어선을 개조한 중간 크기의 배다. 두무진(頭武津, 명승지8호), 선대바위, 형제바위,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마치 투구를 쓴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령도의 북서쪽지역에 있는 최고의 비경으로 서해의 '해금강'이라고 부를 정도로 장관이며, 4㎞의 해안선을 따라 수천 년 풍상에 다듬어진 기암절벽이 늘어선 해안은 그야말로 예술 그 자체다.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니 말이다.

▲ 코끼리바위
유람선에 몸을 맡겼다. 나가는 뱃길은 파도에 밀려 배의 요동을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돌아오는 뱃길은 장난이 아니다.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과 롤링(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곧 바다로 가라앉을 것만 같다. 배 앞 선두가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 친다. 여행객들 모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몇몇 파도를 즐기는 이도 있다. 물범 서식지라고 알려진 백령도 앞바다에서 물범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곳 물범은 5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서식하다 중국쪽으로 이동한다는 선장의 설명이다.

귀신은 어디에 있을까? 다음날, 해병부대를 방문했다. 군 관계자로부터 홍보 영상물을 통하여 해병대의 힘든 훈련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해옴을 느낀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멘트가 더욱 가슴을 울리게 한다. 국가 방호시설을 견학하면서 국가안보의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 소중한 시간이었고, 경험이었다.

지금, 북녘의 바다는 너무나도 평온한데 왜 이런 긴장상태가 계속되어야만 할까?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벌어진 서해교전이 기억에 떠올랐다. 젊은 장병들의 목숨을 버린 숭고한 정신을 기리지 않을 수 없어 잠시 묵념을 올렸다.

북한의 용연군 월래도와 직선거리는 11㎞. 통일이 되면 작은 통통배로서도 몇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지금으로서는 갈 수 없는 땅. 안갯속 희미하게 보이는 북녘의 땅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겨 본다. 귀신 잡는 해병, 그 '귀신'은 아마도 북녘 땅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많은 인민들의 꿈을 좌절시키는 그 세력들이 아닐까? 통일이 되는 날, 귀신은 잡히리라.

▲ 멀어지는 섬, 백령도
2박 3일의 백령도 여행. 쉽지 않은 마음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땅이다. 섬이란 고독과 해방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홀로 외롭게 서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함께 받기도 하는 곳. 수많은 사람과 관계하고, 편한 물질문명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외로움의 세계에 발을 한번 들여 놓기를 권한다. 외롭고 두려운 만큼이나, 매력이 있는 공간, 바로 그것이 섬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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