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즈음 깨달음의 종소리를 들으며
▲ 성문
2005년 여름휴가 때,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 동서남북 사각형의 꼭짓점을 찍고 찾은 곳이 우리나라 역사의 숨결이 가장 많이 서려있는 강화도였다.

그런데 여행 정보 부족으로 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전등사를 관람하지 못하고 귀가한 것이 늘 마음에 빗장이 되었던 터라, 지난 5월 10일 강화도 여행은 내게 있어, 그래서 그 의미가 깊었고 남달랐지 않나 싶다.

전등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섯 시가 넘어 땅거미가 내릴 때쯤이다. 길고 긴 하루를 끝마칠 무렵에야 도착하여 피로를 좀 풀까 싶었는데, 또 다시 걸음걸이를 재촉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는 전등사를 관람하고 남도에 있는 부안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 전등사로 들어가는 숲길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찰로 들어가는 일주문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절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고, 반원형 모양의 성문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알고 보니, 전등사는 단군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사적 제130호) 내에 있는 사찰로,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서기 381년)에 진나라에서 온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최고(最古)의 도량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들어 온 것이 서기 372년이라고 하니, 채 십 년도 안돼 전등사를 창건한 것만 보더라도, 불교의 역사와 도량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삼랑성의 남문을 지나니 소나무 숲길이 양옆으로 펼쳐진다. 우거진 숲으로 사방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고, 중요한 사진이라도 몇 장 찍고 싶은 급한 마음에 바쁜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반듯반듯한 길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길 양쪽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여 길게 달아 놓은 등에서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다. 낮과 밤을 오가고, 때로는 비를 맞으며 매달려 있는 저 등은 수 만 가지 유형의 속세 인간의 어떤 모습을 담고 있을까?

며칠 전, 나이 든 어머니는 절에서 보내 온 시주하는 종이 한 장에 아들과 손자의 이름과 나이를 쓰고 절에 갈 채비를 한다. 그런데, 이름을 쓰는 순서가 큰 아들, 큰 손자 둘, 아들, 그리고 손자들의 순서로 써 내려간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장손이 중요한가 보다.

▲ 윤장대
불당을 향하여 얼마나 걸었을까, 왼쪽으로 화려한 색칠을 한 윤장대(輪藏臺 : 불교 경전을 넣은 책장에 회전축을 달아 돌리도록 만든 것으로, 이것을 돌리기만 해도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가 보인다.

"저거 한 번 돌리면 로또 걸린데…."
"야, 그러면 네가 한 번 돌리고 와."

지나가는 몇 명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씁쓸하기만 하다. 물론, 농담이리라 생각하지만, 절에서 만큼은 말과 행동이 물질문명의 편리함과 이기심을 버릴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방문객이 많지 않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돈다. 절 안에도 수많은 등이 걸려 있다. 날은 차츰 어두워져 오는데 한 바퀴 둘러 볼 시간이 촉박하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구석구석 훑어보면서, 전각, 탑, 범종, 건축물의 구조, 그리고 단청 등 사찰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도 해야 하련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관람객들이 전등사의 대표적인 보물인 대웅보전(보물 제178호)에서 고개를 젖히고 위로 향한 채 뭔가 열심히 쳐다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대웅전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해 놓은 나부상이 보인다. 이 나부상은 전설이 하나 전해진다고 한다.

▲ 극락왕생

▲ 소원성취
당시 나라에서 이름난 도편수가 대웅보전을 짓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온 그는 아랫마을 주막의 주모와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고, 불사를 다 지은 후에는 같이 오순도순 살기로 약조를 한다.

하지만, 공사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어느 날 주막을 찾아가 보니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고, 주모를 찾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이웃 여자의 말을 듣고는 상심에 빠진다. 도편수는 배반감과 분노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한다.

▲ 명부전
공사가 끝날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잠시, 도편수는 왜 이 나부상을 조각하였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본다.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한 것일까, 아니면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이 깃든 것일까. 후세의 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보고 잠시나마 생각을 해 보라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불심
사찰의 역사가 곧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 온 역사가 아닐까? 학창 시절, 이름난 사찰로 수학여행을 가 본 적이 있다면, 그냥 겉모습만 보면서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 아니었던가?

이런 기억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사찰에 갈 때는 사찰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역시 이번 여행도 시간 탓으로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온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화도 전등사에서 호국불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지킴이
▲ 범종각
전등사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역사공부를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보물 제393호로 지정돼 있는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범종 안내판에 새겨진 종소리의 의미를 내 가슴에 새겨본다.

깨달음의 종소리

종소리 울리면 번뇌는 사라지고
깨달음 하나 둘 허공을 메운다
욕심을 벗고 고집을 떠나서
부처님 마음에 오가라
너와 나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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