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날개를 달아 금강산에서 활짝펴다
  
▲ 설악산 소공원 기개 높은 소나무와 단풍이 조화롭다
가을여행

 

사람들은 그 어떤 무엇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조촐한 이벤트를 벌이며, 각별히 마음속에 새기기도 한다. 한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잊혀 진 계절’이라는 노래다.

 

직장 동료 육십 명이 북한의 금강산을 가려고 속초를 찾았고, 시월의 마지막 날을 단풍이 깊게 물든 설악에서 보내는 의미가 남다르다. 17년 전인 1990년 오늘, 시월의 마지막 날을 설악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요일도 똑같은 수요일이다. 당시 산에 미쳐 전국의 이름 난 산을 많이 다니던 때였고, 설악산 정상을 처음으로 올랐기에 그 경험은 가슴 속 깊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 통일대불 청동좌상 통일의 염원을 빌까, 가족의 안녕을 빌까?
 통일대불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산뿐이 아니다. 사람들의 옷도 붉게 물든 단풍보다 화려하다.  그래서 가을은 단풍의 계절일까. 신흥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크고 웅장하지만, 자비롭고 온화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통일대불(統一大佛) 청동좌상. 반세기 동안 겨레를 갈라놓은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는 민족의 비원인 국토통일을 이루고자 설악산보다 더 크고, 동해보다도 더 오랜 대불의 광명에 통일염원을 이루고자 만들어진 청동좌상. 이 석가모니불은 1987년 8월에 착공하였고, 14.6m의 높이에 108t의 청동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한 아주머니가 신발을 곱게 벗어놓고 정성이 가득 담긴 모습으로 절을 하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일까? 뒤 이어 절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되지만 불상은 표정도 말도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한 표정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미운 모습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고운자식 떡 하나 더 주고, 미운자식 매 하나 더 들지 않는, 그저 모든 중생들에게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이 맞이하며 내 보낸다. 사람들은 그런 속 깊은 부처의 자비를 알까?

 

  
▲ 신흥사 극락보전 고즈넉한 산사에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흥사

 

신흥사(神興寺), 653년(신라 진덕여왕 7년) 자장이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 사리탑을 세워 향성사라고 불렀으며, 화재로 소실된 후 선정사라는 절을 다시 짓고, 그 후 수만 년이 가도 삼재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로 신흥사를 창건하게 되었으며, 당시 지은 법당, 대웅전, 명부전, 보제루, 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어느 불자가 극락보전 앞 중앙계단으로 법당에 오르는 것을 보고, 또 다른 불자가 급히 달려가 옆 계단으로 동행하며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크지 않은 고찰이지만 포근함만큼은 그 어느 사찰과 다를 바 없이 아늑하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밀려 올 때면, 조용한 절집 마당은 늙으신 어머니의 넓은 가슴과 같이 아늑하기만 하다.

 

  
▲ 권금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신흥사 절 마당에서 기와지붕 사이로 바라다 본 케이블카
신흥사
  
▲ 단풍 절집 지붕이 화려한 단풍을 머리에 이고 있다
 단풍

 

가을 산을 즐기려는 사람을 실은 케이블카는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권금성으로 쉼 없이 오르내린다. 절집 기와지붕에도 노란 단풍이 머리를 이고 있다. 붉게 물든 담쟁이넝쿨은 토담 위 기왓장을 감고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고 있다.

 

  
▲ 울산바위 신흥사 입구에서 바라다 본 울산바위
울산바위

 

저 멀리 울산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산행 시간도 넉넉하지 않을 뿐더러, 예전에 가 본적이 있기에 울산바위 산행을 포기하고 조금 더 가까운 비선대로 향했다. 비선대로 가는 약 2km의 거리는 걷기가 아주 편한 길이다.

 

  
▲ 단풍나무 숲속 길 낙옆이 떨어진 숲속 길은 푹신한 양탄자 길을 걷는 기분이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파고들며 화려한 색깔로 나뭇잎을 채색하고, 세찬 바람은 눈에 시릴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진 단풍잎을 매몰차게 내팽개쳐 버린다.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 하나가 얼굴에 떨어진다. 한꺼번에 떨어진 나뭇잎은 그대로 쌓여 푹신한 길을 만들고 편하게 걷도록 해 준다. 같이 온 일행은 삼삼오오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서 묵묵히 산길을 걸으며 인생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절개 수십 년이 될 듯한 푸른 소나무가 흙도 없는 바위에서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절개

 

몇 년을 자랐는지 크기로 봐서 수십 년은 된 듯, 큰 소나무 한 그루가 흙도 없는 바위 틈에서 강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비바람과 추위와 싸워 이겨내고 푸름을 유지하는 소나무야말로 절개의 상징이라고 부르는 이유일까. 모든 사물은 제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읽지 못할 뿐. 그래서 여행은 가끔 혼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다.

 

  
▲ 장군봉과 적벽 비선대에서 바라 본 장군봉과 적벽
 비선대

 

한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옛날 마고선인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비선대에 도착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찌를 듯 두 세 개의 암벽이 절경을 이루고, 용틀임하듯 하늘을 날아가지 못해 아쉬움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의 장군봉 중간 허리에는 금강굴이 있다. 굴 안의 넓이는 약 일곱 평 정도로 그 안에는 자비스러운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어, 믿음이 돈독한 불자들에게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기도의 장이기도 하다. 천불동 계곡의 맑은 물은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흐르는 물소리는 노래가 되어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 천불동 계곡의 맑은 물 맑은 물은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맑은 소리는 노래가 되어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천불동계곡

 

가을은 꼭 산에서만 느껴야 할까? 저녁식사 후 가을 바다를 느끼고 싶어 해안가를 찾았다. 겨울바다의 이미지는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어쩐지 가을바다의 느낌은 겨울바다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인식이 되지 않는 듯하다.

 

동해의 밤바다는 남해바다와 다른 것만 같다. 파도치는 모양과 크기도 다르고 파도소리도 다르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그 느낌은 나 자신만의 생각이리라.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은 너무나도 깔끔하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서 푹신한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은 붉은 양탄자를 걷는 느낌이다.

 

바닷가 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하며 다음 일정인 북한 금강산으로의 여행에 대한 상념에 잠겨 본다. 설악에서 날개를 달고 금강에서 날개를 펴고 싶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금강산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까 궁금하다. 17년 전, 똑 같은 날짜와 똑 같은 요일에 다시 찾은 설악산은 내게 있어 잊혀 진 계절이었던가?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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