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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타지역

삼일포에서 놀았다던 네 신선은 어디로 갔을까?


설악산에서 날개 달아 금강산에서 활짝 펴다 - 3
  
▲ 수정봉과 옥류관 햇살을 받은 수정봉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고, 옅은 안개는 붓칠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수정봉

아침의 온정리는 고요하고 침묵이 흐른다. 길고 얕게 드리운 안개는 살아 있는 자연을 배경으로 흰색 붓 칠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수정봉(해발 773m)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도록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금방이라도 올라 가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 매바위 금강산 온천으로 가는 길에 바위 덩어리의 두 봉우리가 형님 동생하고 있는 듯하다
매바위

금강의 맑은 물소리는 먼지 쌓인 귀를 씻어주고, 금강의 바람소리는 세속에 물든 내 마음을 씻겨 주었다. 힘들었던 서너 시간의 구룡연 산행을 마치고 영동 여섯 호수 중 하나인 삼일포로 향했다.

온정리에서 바다 쪽으로 12km가량 떨어진 곳으로 버스를 타고 십 분을 달렸을까,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이동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백 년도 더 된 울창한 송림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소풍 떠나는 기분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호수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백조가 사는 호수가 이렇게 아름다울까, 어머니 품과도 같이 따뜻한 호수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 단풍관과 와우도 삼일포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는 흰 색의 단풍관. 앞으로는 와우도가 있다.
단풍관

금강산이 외로워할까봐 금강산을 빚은 조물주는 또 다른 친구 하나를 만들어 외로움을 달랜다. 바다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해금강이 그다. 그래서 산과 바다는 영겁의 세월을 함께 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해금강은 삼일포를 안고 있다.

삼일포는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라는 신라시대의 네 신선이 관동팔경을 돌아보면서 하루씩 머물기로 했는데, 그 아름다움에 빠져 사흘간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네 신선은 어디로 갔을까? 실제로 보는 삼일포는 사흘이 아니라 평생토록 머물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 무선대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고 놀았다던 무선대
무선대

 

삼일포는 원래 동해에 접한 만이었는데 남강에서 밀려온 흙과 모래에 의해서 만의 입구가 막혀 호수가 되었고, 그 안에 고여 있던 바닷물은 숱한 세월 속에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민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호수는 금강산 자락의 산봉우리들이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절경이다. 또 봉래 양사언 선생이 그 풍경을 보고 찬탄했다는 봉래대와 장군대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삼일포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 삼일포를 도는 허궁다리 허궁다리를 건너는 기분이 아찔하다
허궁다리

하얀 석조건물인 단풍관을 돌아 호숫가 산책로를 편안한 걸음으로 걸었다. 맑은 물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수초 사이로 헤엄쳐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평균 수심 9~13m, 둘레 8km의 호숫가를 전체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봉래대로 가기 위해 비탈진 언덕길로 들어섰고, 길이 56m의 줄다리로 만들어진 '허궁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에는 금강산의 절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만 같다. 한 아주머니가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를 내려 보고 백 미터는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겁이 났는지 높이의 감각이 없는 듯하다. 실제 높이는 이삼십 미터 남짓 될까?

 

  
▲ 삼일포를 돌아가는 전망대 삼일포의 둘레는 8킬로미터로 이 같은 전망대서 잠시 휴식에 취하며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삼일포

봉래대에 올라서니 북한 안내원으로부터 특유한 억양의 말솜씨로 삼일포의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호수 한가운데는 작은 섬 하나가 있는데, 처음에는 소나무가 많다고 하여 송도라고 했으나, 지금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와우도라 부른다고 한다.

 

  
▲ 와우도 처음에는 송도라 불렀으나, 지금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있다고 해서 와우도라 부른다고 한다.
삼일포

그동안 사진으로 많이 보아 왔던 작은 바위(단서암이라고 함) 위의 정자 이름이 궁금했는데, 옛날 네 신선이 놀다 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사선정(四仙亭)이라고 한다. 삼일포는 주변에 크고 작은 36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시사철 외로움을 모른 채 세월을 보내고 있다.

멀지 않은 거리에 동해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바다도 하나의 바다이고, 서 있는 이 땅도 하나의 땅인데, 반세기가 넘는 동안 왜 우리는 둘로 갈라져 있어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솟구친다.

눈물 흘리며 두 손을 꼭 쥐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 떨어지지 않는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통일은 꼭 되어야 하지만, 남북 상호 간 조건이 맞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금강산과 동해바다는 이런 사정도 모른 채 남북의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이하며 바라보고 있다.

 

  
▲ 삼일포 삼일포는 크고 작은 36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호수다.
삼일포

삼일포 코스는 짧은 시간에 걸으면서 힁허케 둘러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개별 여행이라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자연을 즐길 수 있으련만 하는 생각이다.

온정각 주변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산행을 마친 관광객들은 북한의 상품을 파는 동관과 서관을 오가며 기념품을 사고 아이 쇼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교하고 예술성이 있는 기념품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의 술과 고사리를 비롯한 산나물, 그리고 몇 종류의 기념품 외는 북한에서 직접 만들거나 생산한 것은 없고, 양주, 화장품 등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제품으로만 채워져 있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행을 하면서 특색 있는 기념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행 당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생활상을 되새겨 볼 수 있다는 뜻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 동해바다 삼일포 너머 동해바다가 보인다. 땅도 하나, 바다도 하나인데, 왜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둘로 나뉘어져 있어 마음대로 오가고 있지 못할까?
삼일포

밤에는 북한 최고의 공연을 관람했다. 금강산에서 살았던 선녀의 몸짓인가, 아니면 신의 손놀림인가? 금강산을 신이 만들었다면, 평양모란봉 교예공연단의 종합교예 공연은 사람이 만든 최고의 예술이자 아름다움의 극치다.

어둠을 가르고 조명을 받은 하얀 천은 선녀가 입은 옷으로 날갯짓하며 하늘에서 내려온다. 아무리 반복되는 훈련 끝에 이루어낸 하나의 작품이라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몸짓과 영점 일초의 오차도 없어야 가능할 것만 같은 줄타기 공연은 보는 내내 손을 쥐게 하고, 아슬아슬한 장면은 쉬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된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려 가슴 떨림을 억지로라도 중단시켰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 단서암의 사선정 신라시대 때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놀다 간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정자다.
삼일포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실제로 약 십 미터의 높이에서 빠른 속도로 네 번 회전을 하면서 그만 상대의 손을 잡지 못하고 떨어지고 만 것이다. 공연장은 한동안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잠시 침묵으로 공중에 있는 그들만 바라볼 뿐이다. 다시, 힘차게 줄을 젓는다. 이를 악문 모습이 역력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것만 같다. 숨을 죽이고 그들의 몸짓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잠시 후, 똑같은 반복동작으로 세계기예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던 그 실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객석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우레 같은 박수소리는 공연장 천장을 뚫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만약에 또다시 실패했더라면, 그들도, 공연을 보는 관객도 모두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짓누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연 도중 가끔 실수를 하는데, 어떤 이는 공연의 극치감을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연출한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는 일부러 실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금강산의 밤은 낮에 본 금강의 아름다움을 다시 본 것만 같았고, 그 짜릿한 기억은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공연은 끝이 났다. 환한 모습으로 서로가 인사하고 격려하며 박수를 주고받는다. 인체를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하고, 기묘한 모습으로 연출하는, 그 몸짓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