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이 동남동녀 3천명을 데리고 떠났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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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제봉에서 본 해금강 우제봉에는 칡넝쿨이 산을 덮고 있을 정도로 무성히 나 있다.
우제봉

불사불로(不死不老) 꿈을 이루고자 했던 진시황제(秦始皇帝). 기원전 221년,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고 스스로를 첫 황제라 칭하게 했던 최초의 황제. 그는 불로초를 구하러 방사로 일했던 서복(徐福)으로 하여금 진황도를 떠나게 한다. 서복은 배 60척, 일행 5천명, 그리고 동남동녀 3천명을 이끌고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에 도달한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나오는 기록으로 기원전 210년의 일이다. 중국에서 이주는 대만을 가리키고, 단주는 일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 학자들은 정방폭포의 서복과지(徐福過之)라는 글자를 근거로 단주를 제주도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언이 있어 거제도에 있는 서복 연구 단체가 깊은 관심을 가지며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경남 거제도 해금강 암벽에 '서불과차(徐巿過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 필자는 서복연구회(회장 이무홍) 현지답사에 동참하고 길을 떠났다. 참고로 서불은 서복의 다른 이름이다. 

  
▲ 우제봉 해금강호텔 들머리에서 20여 분이면 우제봉에 오를 수 있다.
우제봉

"어릴 적부터 동네 어른들에게 해금강에 불로초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죠. 실제로 불로초가 있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바닷가 암벽에는 한자가 아닌 문양 형태가 파여져 있었다고 하는데, 어른들은 '서불과차'라고 부르더군요.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파도에 암벽에 새겨진 글씨가 떨어져 나가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해금강(海金剛)이 있는 갈곶(渴串)마을. 99년 7월부터 이장 직을 맡고 있는 김옥덕(55)씨의 증언을 들으며 연구회 팀은 본격 탐사에 나섰다. 

  
▲ 우제봉 절벽 서불과차가 새겨졌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우제봉 절벽
우제봉

우선, 서복이 불로초를 캐기 위해 제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우제봉(雨祭峯)을 탐사하기로 했다. 들머리인 해금강호텔이 있는 곳으로부터 뒷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우제봉까지 0.9㎞. 한 여름 뙤약볕이지만 한적한 오솔길이다. 가족이나 친구끼리 이야기하며 다정스레 걷는 데는 정말이지 안성맞춤이다. 뜨거운 태양은 나무 잎사귀와 가지 사이로 비좁게 파고 들 뿐. 아마 친한 친구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시샘하는 듯이 말이다. 정말 편한한 길이다. 

십분 여를 걸었을까. 하늘을 가린 숲은 이내 밝은 태양아래 숨어 버린다. 탁 트인 바다와 하늘을 이고 있는 우제봉. 그 아래 길목에서 잠시 숨을 멈추었다. 하늘위에 떠 있는 우제봉은 그림 같은 모습이다. 당시 서복 일행도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 우제봉 정상 우제봉에서 선 필자(좌)와 윤종환 거제서복연구회원(비젼타워 대표)
우제봉

발길을 옮겨 우제봉 정상에 도달했다. 앞으로는 해금강 절경이고, 작은 사자바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쉼 없이 바다를 가르며 하얀 물결을 일게 하는 유람선은 바쁘기만 하다. 일행은 해발 130여 미터 정상에 서서 불로초를 캐는 심정으로 기도를 올렸다. 갈섬이란 이름에 걸맞듯 칡넝쿨이 지천으로 널브러져 있다. 우제봉 정상 아래로는 절벽이다. 절벽 아래로 바다를 보는 심장은 간이 콩알만 해 진다. 어째, 이런 곳에서 불로초를 캤을까? 불로초는 아무에게나 쉽게 드러내 놓지 않는 수줍은 처녀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그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없게 험난한 곳에서만 자라는 신비의 식물이었을까? 

  
▲ 갈곶마을 우제봉에서 바라 본 갈곶마을
우제봉

암벽에 새겨졌다는 글자를 찾기는 힘들었다. 장비도 부족하고 넓은 면적에서 글자 모양을 발견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다. 다시 발길을 옮겨 배를 타기로 했다. 바다에서 암벽을 탐사코자 했던 것. 우제봉 아래로 펼쳐지는 암벽 면적은 글자를 새겨도 수 십자를 새겨도 남을 만한 크기의 편편한 바닥이다. 망원렌즈와 망원경으로 혹시나 모를 문자를 찾으려고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파편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버린 암벽 일 부분. 떨어져 나간 부분도 족히 30㎡도 넘을 것만 같다. 

  
▲ 우제봉 2200여년 전, 서복이 불로초를 캐러 왔다는 우제봉아래로 유람선이 지나고 있다.
우제봉

"분명한 것은 저 앞에 떨어져 나간 부분과 기존 부분의 암벽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약 10~20㎝로 두께로 편 층으로 갈라지듯이 떨어져 나간 부분을 육안으로 확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마을 어른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은 이야기라 동네 사람들은 실제로 믿고 있는 실정입니다." 

바다에서 바라 본 우제봉 암벽은 편편하여 문양이나 글자를 새기기에 충분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음만 먹으면 줄을 타고 암벽에 글씨를 새기기는 별 어려움이 없는 상황. 2200년 전, 과연 이들은 자신들이 지난 흔적을 이곳 암벽에 남겼을까? 너무 오랜 세월이라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 탐사를 통하여 한 가지 궁금한 의문이 존재한다. 구전을 통하여 오는 이야기지만, '서불과차'라는 말이 왜 이 지역사람들에게 회자될까 하는 점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가 이 지역의 아버지 세대들로부터 왜 구전돼 오는 것일까? 

서복이 불로초를 캐러 해금강에 왔다는 사실을 연구하는 거제 지역의 한 원로 시인을 만났다. 거제문인협회장을 역임한바 있고, 현재는 거제면에서 난 전문 공원을 운영하는 능곡 이성보씨(63·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그는 2008년 10월 일본 사가현에서 서복연구회 심포지움에서 거제도와 서복이 관련 있다는 역사적 근거를 발표한바 있다.  

  
▲ 서불관련 자료 이성보 거제서복연구회원이 2008년 10월 일본 국제심포지움에서 발표한 해금강과 서불과 관련한 발표자료
서복

그의 발표 자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불과차라는 글씨가 새겨진 우제봉(雨祭峯)을 마을 사람들은 서가람산(徐伽藍山)이라고 부르는데, 가람은 절터라는 다른 말로, 서불이 은둔한 곳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주장이다. 우제봉은 불로초를 캐기 위해 산신과 바다 신께 기우제를 올린 장소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해금강 본 섬 북단에는 사자바위가 있는데, 이 사자암을 옛적엔 '굴레섬'이라 했다고 한다. 굴레는 그네의 사투리로 서복이 해금강의 천년송 바위와 사자암에 그네를 타고 노닐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 서불과차란 글자가 새겨졌다는 우제봉 암벽 서불과차가 새겨졌다고 전하는 암벽의 편층이 1959년 사라호 태풍때 떨어져 나간 모습. 암벽의 색깔이나 옆 부분과 비교할 때 암벽 편층이 떨어져 나간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제봉

  
▲ 우제봉 바다에서 본 우제봉. 이곳에 서불과차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한다.
우제봉

거제 해금강의 원래 이름은 칡 섬이라고 하는 갈도(葛島)였다. 풍광이 빼어나 바다의 금강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 서불과차라는 글자도 이곳에 많은 칡넝쿨을 이용하여 새겼을 것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다. 현장을 답사하는 이 날 우제봉 근처로는 칡넝쿨이 암벽을 뒤 덮고 있을 정도로 무성했다. 

과연, 그러면 서복이 이곳을 찾았다면 그 많은 사람을 데리고 어디서 유숙했을까? 서불과차라는 글자가 새겨진 해금강과 직선거리로 9㎞ 떨어진 일운면 와현(臥峴)마을. 옛 지명은 누우래. 이곳에서는 해금강이 눈앞으로 바로 보이는 지역이다. 누우래는 '눕다'에서 파생된 말로 유숙을 의미하는데, 마을 사람들 다수에 따르면, 서복이 누우래서 유숙하면서 생겨났고, 지금까지 구전돼 오고 있다는 것. 거제서복연구회 이무홍 회장의 증언도 일치한다. 이회장은 2006년 4월부터 일본 야메시 서복연구회와 교류를 통하여 서복이 와현 마을에서 유숙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이끌어낸다.  

  
▲ 해상탐사 배를 타고 우제봉 암벽에 새겨졌다는 서불과차의 흔적을 찾으러 가고 있다. 갈곶마을 김옥덕 이장(좌)이 설명하고 있다.
우제봉

일본 후쿠오카현 야메시에서 서복을 연구하는 서복연구회 아카사키(59·고고학 박사, 야메시청 문화재관리과 계장)씨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는 해금강 암벽에 새겨졌다는 글자를 찾아 여덟 번이나 거제도를 방문한 바 있다. 그리고 2007년 4월, 이 마을 매미공원에 '서불유숙지(徐巿留宿地)'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한일간 교류활동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태풍으로 떨어져 나가버린, 암벽에 새겨져 있었다던, '서불과차'의 흔적을 지금에서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연구단체는 역사적인 고증으로 서복이 불로초를 캐러 해금강을 여행했던 길을 꾸준히 찾겠다는 의지다. 오는 9월 26일부터 이틀간 중국 절강성 자개시에서 열리는 '2009 중국 서복문화국제세미나'에는 한·중·일 세 나라가 참여한다. 이 세미나에서 서복과 거제도 해금강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으로 있다고 한다. 

이날 탐사에는 거제도 서복연구회 이무홍 회장을 비롯하여, 윤종환(비젼타워 대표), 김형석(거제문화예술관장), 서화목(연구회 사무국장, Best 입시학원장) 그리고 필자가 동참했다. 그렇다면, 서복이 해금강에 불로초를 캐러 왔다는 신비의 식물은 무엇일까? 불로초라 불리는 그 신비의 식물은 다음 회에 실을 예정이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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