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삶, 돈 몇 천 원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냐

한 동안 산에 미쳐 주말과 휴일에는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깊은 산골짜기 어르신과 막걸리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아주 다정다감하게 대한 적이 별로 없는 기억이다. 그런데 농촌의 다른 어르신에게는 부모 생각한다며 유난을 떤 적이 있다. 모순이다. 그래서 삶이 헷갈린다. 

오래전, 지리산 삼신봉에 올랐다 하산 길에 청학동 도인촌에 들른 적이 있다. 길가에서 한 할머니가 옥수수를 팔고 있었는데, 필자와 연배로 보이는 남자와 흥정을 벌이는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 옥수수 얼마예요?"
"응, 이거... 내가 손수 농사지은 건데, 요거 세 개해서 이천오백 원이야. 하나 줄까?"
"식구랑 부산에서 등산 왔다 가는 길인데, 오백 원만 깎아 주세요."
"아이고, 젊은이 뭐 이런 것을 다 깎으려고 그래. 할머니 보태주는 셈치고 하나 사."
"..." 

둘의 대화를 듣자니 불편했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손수 지은 옥수수를 하루에 몇 봉지 판다고, 한 봉지 얼마 남는다고, 단돈 오백 원을 깎겠다고 벼르다니. 내가 끼어들었다.  

"할머니 그거 한 봉지 주세요. 여기 삼천 원인데, 거스름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연배의 그 남자는 갑작스런 일격(?)에 얼굴표정이 달라지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릴 적, 어머니는 생선이랑 채소를 담은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물건을 팔러 다녔다. 시장 통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과 생선 값을 놓고 흥정과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요량으로. 그래야만, 많은 식구와 자식 공부를 시킬 수 있었기에. 그런 삶과의 투쟁으로 일곱 자식을 별 탈 없이 키워낸 훌륭한 어머니다.  

그리고 지금, 그때 그 시절, 어머니 생각으로 시장 통에서 고기 파는 할머니에게는 값을 깎는 일이 없다. 여행할 때, 도로변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사 주기도 한다. 재래시장에서 약초 몇 가지를 놓고서, 하루 종일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 손자 녀석 용돈 주려고 그러는지, 살기 위해서 그러는지, 그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는 못 한다. 

지난 추석 때, 형제들에게 이런 경험 이야기를 풀었다. 이야기를 듣던 한 형제가 날더러 순진하다고 했다. 왜냐고 했더니, 경험담을 털어 놓는다. 시장 통에서 할머니가 파는 채소를 산 적이 있단다. 이게 마지막 떨이라고 싸게 줄 테니, 사라고 하더라는 것. 그래서 하나 사서 시장을 돌아 그 자리에 다시오니, 통 안에 남아있는 채소를 꺼내 또 다른 사람에게 떨이라고 흥정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부터는 속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는 것. 

이야기를 듣자니, 헷갈린다. 헷갈리게 하는 모습이자, 헷갈리는 삶이다. 하지만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상이다. 그 까짓것 속아주면 어때서. 그래서 이야기를 푼 형제에게 맞받아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다 먹어봐야 몇 천 원인데, 돈 몇 천 원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냐고? 다만, 그 할머니는 채소를 팔기 위한 호소 짙은 판매 전략이었던 것 뿐. 

여행의 계절이다. 들녘은 노랗게 물들어 있다. 온 산도 덩달아 붉은 물이 들어가고 있다. 노랑빨강 잎사귀는 도로변에 나뒹군다. 그 옆으로 밤, 사과, 헛개나무, 토종 영지버섯, 그리고 올해 유달리 비싸다는, 속이 알찬 배추를 파는 할머니가 보인다.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마음으로 배추 한 포기와 영지버섯을 사지 않을 수 없다. 감상하는 그림 값으로.

출처 : 그 까짓것 속아주면 어때서... - 오마이뉴스(2010. 11. 22)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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