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거제도

떨어진 두 등대 '옆에 있어도 그립다'



거제도 능포양지암조각공원에서 양지암까지
  
▲ 양지암과 양지암등대 거제도 최동단 끝에 있는 양지암과 양지암 등대
양지암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가 넘어질까 할머니는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업거나 안고 가기에는 힘이 부치는지라 걸음을 걷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 따스한 봄 햇살은 머리 위로 쏟아지고,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에서 부는 해풍은 코끝을 자극한다. 해안가 암벽에는 파도가 부서지며 연신 포말을 만들어내고 있다. 길 양쪽에 핀 수선화는 산들산들 춤추며 해맑은 웃음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거제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양지암으로 가는 길목, 봄 풍경이다. 

  
▲ 돌고래상 능포양지암조각공원에 있는 돌고래 석상
돌고래상

  
▲ 튤립 능포양지암조각공원에 활짝 핀 튤립
튤립

차량으로 거제도로 가는 길은 거제대교나 지난해 말 개통한 거가대교를 건너야 한다. 이어 장승포까지 가야하며, 장승포해안일주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양지암 입구 들머리에 들어서게 된다. 주차장 입구 주변에는 빨강 노랑 튤립이 활짝 피어 있다. 두 마리 돌고래 석상은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높이 날아오를 듯 하는 기세다. 벚꽃나무는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잘 닦여진 산책길을 따라 조금 걷자 조각공원이 나온다. 2007년 조성한 이 조각공원에는 국내 유명작가의 조각 작품 21점이 13,105㎡의 면적에 전시돼 있다. 작가의 열정과 혼은 느껴지지만,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갑자기 십수 년 전, 아들을 데리고 목포 유달산 조각공원을 가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아이한테 제법 아는 척 하며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날 뿐이다.  

발사대 위에 세워진 로켓, 꽁무니에는 갈매기 한 마리가 쫙 달라붙어 있다. 조각공원이 있는 언덕 뒤 바다는 태평양으로 바로 이어진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이 작품은 카운트다운을 외치면 흰 연기를 내뿜으며 바로 날아갈 것만 같은 자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우주를 상징하는 블랙홀과 자연을 상징하는 새를 조형적으로 결합하는 내용으로 작품명은 '미지의 꿈'이라고 한다. 수박 겉을 핥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다른 작품도 감상해 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 미지의 꿈 우주를 상징하는 블랙홀과 자연을 상징하는 새를 조형적으로 결합하는 작품이다.
미지의 꿈

  
▲ 벚꽃 벚꽃나무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다.
벚꽃

산언덕에 잘 가꾸어진, 제법 폭이 넓은 산책길은 양쪽으로 바다가 보인다. 한쪽은 가까이로 붉은 색과 흰 색의 등대가 마주하는 포구가 있는 마을이고, 멀리로는 거제도의 명물 거가대교가 보인다. 또 다른 한쪽은 가까이로 해안절벽에 포말이 부서지고, 멀리로는 부산 다대포와 영도가 보이는 곳이다. 큰 바다에는 대형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이 정박해 있다.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위치한 거제도라는 곳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 삶 바다가 보이는 언덕 밭에서 씨앗을 뿌리는 다정한 부부. 아름다운 삶은 한 폭의 그림이다.

붉은 황토밭을 일구는 땀 흘리는 부부의 모습이 정겹다. 삽으로 땅을 갈다 힘에 부치는지 남편은 한 숨 돌리지만, 아내는 허리 숙여 일에 열중이다. 무슨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려 하는 것일까. 도시 속 농촌 풍경이요, 그 너머로는 어촌 모습이다. 한 폭의 동양화요, 삶 자체가 그림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땀이 배어 옴을 느낀다. 상의를 벗어 어깨에 걸쳤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에 와 닿으니 한결 나은 느낌이다. 

삼십분 정도 지나자 오른쪽 숲 속으로 들어가는 좁은 산길이 나온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밀림 같은 느낌이다. 떨어진 솔잎이 쌓여 푹신하고 걷기에도 편하다. 숲 사이로 비쳐 보이는 바다는 파도를 치며 연신 거품을 내고 있다. 산길을 안전하게 걷도록 중간 중간 통나무 난간도 설치해 놓았다. 가파른 언덕길에 올라서자 망망대해는 푸른색으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연분홍 진달래는 바람에 살랑거리며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 양지암 가는 길 능포양지암조각공원 주차장에서 걸어서 한 시간. 군부대 입구에서 드디어 양지암 가는 길을 찾았다.
양지암

한 시간을 조금 넘게 걸었을까, '양지암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넓적한 평지에서 한 숨을 돌렸다. 조금 지나니 철문이 있는 군부대가 나오고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의문이 인다. 바로 옆 인터폰이 있어 수화기를 들고 물으니, 옆으로 길이 나 있단다. 동행한 여행객 일부는 발길을 돌려 그냥 가자는데 나는 돌아갈 수가 없다. 양지암 등대가 있는 마을에서 산지가 삼십 년이 지났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기에 예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 능포항 호수같이 잔잔한 능포항. 붉은등대와 하얀 등대가 서로 그리워하고 있다.
능포항

  
▲ 거가대교 능포양지암조각공원에서 바라본 거가대교.
거가대교

십 여분 숨을 헐떡거리며 걸을 쯤, 눈앞에 흰 등대가 보인다. 십 미터 이상 될 것만 같은 큰 높이다. 가파른 철 계단으로 올라서자 등대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큰 덩치의 등대를 포옹할 수는 없어 등을 지고 기대어 섰다. 푸른 바다에서 이는 바람이 온 몸을 식혀준다. 발아래로는 양지암이다. 뱃길로는 수도 없이 양지암을 보고 지났건만, 걸어서 오기는 처음이다. 푸른바다는 큰 파도를 일게 하지만, 내 가슴엔 큰 기쁨이 일어나고 있다. 

양지암(陽地岩) 등대, 1985년부터 뱃길 안전을 위해 불을 밝힌 등대로서 거제도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등대가 있는 큰 바위에 올라서면 거가대교와 부산 다대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대마도가 길게 드러누워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큰 바다는 크고 작은 배들이 쉼 없이 오간다.  

양지암 등대가 있는 이 곳은 시원한 푸른 바다와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거제도 최고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이 등대는 2000년까지 등대 입구에 군부대가 있어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돼 왔으나, 2004년부터 주변 오솔길을 통하여 등대에 출입할 수 있고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마산지방해양항만청에서 등대 높이를 2배 정도 더 높이고, 철 사다리와 데크를 설치하여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 양지암 등대 거제도 최동단 끝자락에 있는 양지암 등대는 1985년부터 불을 밝히고 있다. 이 곳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대마도, 거가대교, 그리고 부산 다대포와 영도를 볼 수 있는 거제도 최고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양지암 등대

양지암과 등대를 구경하고 돌아나가는 길은 왔던 길로 갈 필요는 없다. 차량 통행이 가능한 넓은 도로를 따라 편안히 걸으면 된다. 길 좌우로는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높이가 족히 30m 이상 되는 해송으로, 밀림과 비슷할 정도로 우거진 숲이다. 이런 숲속 길에서 여유로움을 가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편안한 기분으로 걷는 십여 분이 지나면, 붉은 등대와 하얀 등대가 여행객을 손짓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련이 남아서일까, 방파제에서 고기 낚는 낚시꾼의 모습을 잠시 보며 발길을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