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고향함양/함양가볼만한곳

겨울 함양여행, '선비의 고장'을 공부하는 방

죽풍 2026. 1. 20. 14:25

함양 상림공원

 

교양을 살찌우는 여행... 상림공원과 남계서원

 

봄 같았던 지난 주 날씨는 하루아침에 한 겨울로 변신하면서 기온도 뚝 떨어졌다. 주말까지 강추위가 이어진다는 뉴스는 외출을 막는 방해꾼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집에 머물수록 몸은 움츠려들고, 의기소침해 지는 것만 같아 마냥 자리만 지키고 있을 수가 없다. 무작정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평소 가보고 싶었던, 한국 제일의 명산인 지리산이 자리한 함양으로 정했다. 겨울풍경 함양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함양을 대표하는 여행지 상림공원(천연기념물 제154호). 이파리 하나 없는 나목은 앙상한 가지만 하늘로 향해 쭉쭉 뻗은 모습으로 을씨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생각과는 달리 잘 조성된 푹신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포근함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마치 세찬 바람이 부는 언덕 뒤에 몸을 피했을 때 온기가 전해지는 그 포근함이랄까. 편안한 발걸음은 숲속 깊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다.

 

겨울의 상림공원

함양 상림공원 숲길

 

상림공원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인, 최치원 선생이 함양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인공정원으로,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 불려 졌다고 한다. 주로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 종류가 숲을 이룬다. 밑둥치가 큰 나무는 둘레가 3미터가 넘고, 길고 쭉쭉 뻗은 가지는 족히 20~30미터를 넘어선다. 이처럼 큰 나무가 여름철이면 얼마나 풍성한 모습을 보이겠는가. 겨울의 상림이 따뜻한 잔치국수 맛이라면, 여름의 상림은 시원한 냉면 육수 맛이라 비유하면 과한 것일까.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그 어느 나라보다 자연환경이 좋다. 상림공원도 사계절이 확연히 구분돼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끈다. 봄철 신록은 짙은 녹음의 여름으로 이어지고, 붉은 단풍에서 하얀 설경으로 바뀌는 가을겨울은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특히, 9월 중하순에 피어나는 꽃무릇은 상림의 대표 이미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을 흠모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 자리, 무덤에 홀연히 피어났다는 꽃무릇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꽃과 잎은 따로 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잎은 한겨울에 피어나고, 꽃은 가을에 피어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이라 불리는 이 꽃이야말로 애틋한 사랑의 징표가 아닐까. 이처럼 상림은 연중 어느 때를 찾아도 실망시키지는 않는 공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함양 상림공원내 역사인물공원

 

함양은 ‘선비의 고장’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조선 태조 이후 현에서 군으로, 다시 현으로, 그리고 정조12년(1788년)에는 함양군으로 복군 되는 과정의 역사를 안고 있다.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외관직인 군수(종4품)는 전국에 80여 군데가 있었고, 경상도(현, 경남북포함)에서는 함양 등 14군데가 있었던 것을 보면, 그 당시 함양은 지금으로 치면 행정도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을 게다.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서 들어봄직한, 함양을 거쳐 간 주요인물들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상림공원에는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조선시대 점필재 김종직, 일두 정여창, 연암 박지원 등 수많은 관리들의 비가 들어서 있는 역사인물공원이 있다. 소개 글에 의하면,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리어 온, 대표적인 선비고장으로 오랜 역사를 통하여 훌륭한 인물이 수 없이 배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함양은 아이들과 함께 역사공부도 겸하는 최고의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상림공원을 둘러보고 시간도 넉넉한지라, 8km 떨어진 남계서원으로 향했다. 10여분 조금 넘게 걸리는 이곳까지는 부득이 택시를 타야만 했다. 들녘에서 세차게 부는 찬바람은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시리고 얼얼하다. 너른들 마당 뒤 언덕배기에 조성된 건축물은 동서가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남계서원 홍살문과 홍영루

 

여행에서 배우는 역사공부

 

남계서원 홈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남계서원(사적 제499호)은 1552년(명종 7년) 개암 강익에 의해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유학교육과 일두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1566년(명종 21년)에는 ‘남계(蘫溪)’라는 이름으로 사액(임금이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되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았던 48개 서원 중 하나로, 경남에서 존속서원으로 유일하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적인 장소다.

 

홍살문을 지나 주 출입문인 풍영루로 들어선다. 출입은 사당의 내삼문과 함께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오는 형태다. 좌측으로 묘정비가 서 있다. 남계서원에는 일두 정여창, 동계 정온, 개암 강익 선생 등 세 분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찬양하는 송덕비가 없어 200년이 지난 1779년에 비를 세우고 글을 새겼다고 한다. 경내에는 강학영역, 동재, 강당, 경판고, 사당, 전사청 그리고 제향영역 등에 대한 소개 글이 자세히 새겨져 있어, 역사공부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초등학생과 함께 서원을 찾은 아빠와 함께 소개 글을 읽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겨울함양의 들녘

 

제향영역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잠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언덕 아래로 폭넓게 펼쳐져 보이는 들녘 풍경이 겨울 함양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서쪽으로 나와 100여 미터 떨어진 청계서원(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6호)에도 들렀다. 청계서원은 조선 연산군 때 문민공 김일손을 기리기 위한 서원으로, 김종직의 제자로도 유명하다. 무오사화(연산군 4년)는 조선시대 최초의 사화로, 김종직이 ‘조의제문’이라는 쓴 글이 시초가 돼 유림들이 숙청당한 사화로 잘 알려져 있다.

 

여행이란, 단순히 겉만 보고 맛 집을 찾아다니는 여행보다는, 문화를 즐기고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 있는 길을 찾으면서 교양을 살찌우는 것도 중요하다. 여행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독서는 앉아서 경험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다”라는 말이 있다. 매우 공감되는 말이다. 하루 남짓한 시간의 함양여행은 역사공부와 함께 한 보람찬 여행이었다. 얼굴에 닿았던 찬바람은 눈 녹듯 사라졌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를 집에 돌아 와서야 알 수 있었다. 답은 찬바람 맞으며 떠난 여행에서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