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3차 발사 성공,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나로호 3차 발사 성공,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어제(1월 30일 오후 4시), 나로호 전남 고흥에서 나로호 3차 발사가 있었습니다.

생중계되는 TV 앞에서 동료 직원과 함께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까'하는 기대감은 카운트다운에 들어서자 긴장감은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중계하는 아나운서도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나로호 3차 발사가 있기까지 그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나로'는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KSLV(Korea Space Launch Vehicle)-1'의 명칭공모에서 선정된 것으로, 한국 우주개발의 산실인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전남 고흥 외나로도의 이름을 따서 한국 국민의 꿈과 희망을 담아 우주로 뻗어나가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총중량은 140톤, 추진체 중량은 130톤, 총길이는 약 33m, 지름 2.9m이다. 1단 액체엔진의 추진력은 170톤급, 2단 고체 킥모터의 추진력은 8톤급이다. 개발비는 당초 3594억 원이었으나, 계획 변경에 따라 규모가 늘어나서 총 5098억 원이 소요되었다.

 

나로호는 2005년 9월경 발사할 예정이었으나, 몇 차례 연기 뒤 2009년 8월 19일 첫 발사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발사 7분 56초를 남기고 고압탱크 압력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의 결함으로 자동으로 발사가 중지되었다.

 

 

 

 

 

 

▶ 1차 발사 실패(2009년 8월 25일 오후 5시) : 6일 후인 2009년 8월 25일 오후 5시, 1차로 발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륙 54초 만에 음속을 돌파하였다. 이어 2단 로켓은 고도 306km 지점에서 과학기술위성 2호와 분리되어야 했으나, 5시 9분이 돼서야 고도 340km 지점에서 분리됨으로서 목표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였다.(1차 발사 실패)

 

▶ 2차 발사 실패(2010년 6월 10일 오후 5시) : 1차 발사 실패 후 2010년 6월 9일 2차 발사를 시도하였으나, 오후 1시 58분 소화용액이 잘못 분출되어 발사가 중지되었다. 다음 날인 2010년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2차 발사가 이루어졌으며, 발사 후 55초 만에 고도 7.2km에서 음속을 돌파하였다. 그러나 발사 후 137.19초에 비행 중 폭발하여 재 실패했다. 나로호의 잔해는 제주도 남단 공해 상에 낙하하였다.(2차 발사 실패)

 

3차 발사 성공(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 오후 3시 59분부터 카운트 다운에 들어서고, 정각 오후 4시 나로호는 힘차게 솟아올라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1번째로 우주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위키피디아의 '국가별 궤도발사 순서(List of first orbital launches by country)'에 따르면, 구.소련(1957년), 미국(1958년), 프랑스(1965년), 일본(1970년), 중국(1970년), 영국(1971년), 인도(1980년), 이스라엘(1988년), 이란(2009년), 북한(2012년) 그리고 대한민국이 11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2번의 발사 연기와 2번의 발사 실패를 겪고, 드디어 3차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할 만한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나로호 3차 발사 성공,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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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einess.tistory.com BlogIcon 세인이 2013.01.31 0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우리나라로썬 좋은결과입니다 ㅎㅎ ㅋㅋ..
    저도 나로호에 대해서 포스팅하고 생방송보는데 성공햇네요 ! 블로그멋지십니다~

    시간되시면 제블로그도 들려주시길바레요 ㅎㅎ

    • Favicon of https://bamnwind.tistory.com BlogIcon 죽풍 2013.02.01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나로호 발사 성공을 자축해 봅니다.
      님의 블로그도 자주 방문하여 구경토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과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2. 김영호 2019.05.07 0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공대한민국나로호1

 

[거제여행] 비를 맞으며 전쟁의 아픔을 느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탐방길

 

[거제여행]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입구.

 

[거제여행] 비를 맞으며 전쟁의 아픔을 느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탐방길

 

벌써 반년을 넘긴 2012년도가 반환점을 돌아 다시 시작 길에 올랐습니다. 7월 첫날, 비를 맞으며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탐방하였습니다. 그간 몇 차례 들른 곳이지만, 이날 서울에서 온 손님을 모시고 같이 탐방길에 나섰습니다.

 

특히,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 지국장, 동경신문 서울지국장, 마이니치신문사 서울지국 특파원과 동행한 길이라, 거제를 알리고, 나아가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알릴 기회가 되었습니다.

 

 

[거제도여행]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디오라마관 포로들의 모습.

 

비가 내리는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여행객의 발길이 뜸한 탓인지 한적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한국전쟁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로의 여행..

이제 우리는 그들을 만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만 여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거제여행]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외부 탐방로에 설치된 기념물.

 

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전쟁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6.25 한국전쟁과 거제도포로수용소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거제여행추천]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포로폭동체험관(상)과 한국전쟁 당시 실제로 쓰였던 경비대막사.

 

1953년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기회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서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거제도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지금은 일부 잔존 건물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되었다.

 

 

 

 

[거제도 가볼만한 곳]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외부 모습.

 

[거제 가볼만한 곳]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입장료. 어른(개인 4,500원, 단체 3,000원, 거제시민 1,000원, 관광지통합이용권 3,600원), 청소년/군인(개인 3,000원, 단체 2,000원, 거제시민 1,000원, 관광지통합이용권 2,400원), 어린이(개인 1,500원, 단체 1,000원, 거제시민 500원, 관광지통합이용권 1,200원), 경로 1,000원(신분증제시).

 

[거제여행] 비를 맞으며 전쟁의 아픔을 느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탐방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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