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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처님] 어진 벗은 초승달과 같다, 명성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어진 벗은 초승달과 같다, 명성스님/오늘의 법문 전남 장흥 보림사 전경. [나의 부처님] 어진 벗은 초승달과 같다, 명성스님/오늘의 법문 어진 벗은 초승달과 같다/ 명성스님 요즘 같은 가을, 하늘을 쳐다봅니다. 여름철 내 구름을 머리에 이고 지내서인지, 청명한 새벽하늘을 보는 것이 신비롭고 황홀합니다. 초승달도 있고, 반짝이는 별도 있고, 아련한 별, 손에 잡힐 듯한 별, 산등성이에 걸린 별 등이 어우러져 조화롭게 빛납니다. 쳐다볼수록 경이롭습니다. 이때 문득 아함경에 "착한 벗은 초승달과 같다"라는 경구가 떠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 '승가라'라는 젊은 바라문이 부처님께 문안드리고 여쭈었다. "고타마시여, 착하지 않은 벗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더보기
[나의 부처님]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법구경, 법정스님 역/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법구경, 법정스님 역/오늘의 법문 2015. 10. 24. 설악산 봉정암 풍경. [나의 부처님]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법구경, 법정스님 역/오늘의 법문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법구경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어리석어 마음이 흐트러져 있다면 지혜롭고, 마음의 고요를 지닌 사람이 단 하루를 사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게으로고 정진하지 않는다면 부지런히 노력하며 사는 그 하루가 훨씬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삶과 죽음의 도리를 모른다면 그 같은 도리를 알고 사는 그 하루가 훨씬 낫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절대 평화에 이르는 길을 모른다면 그 같은 길을 알고 사는 그 하루가 훨씬 낫다. 법구경에서/법정스님 역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 더보기
[나의 부처님]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오늘의 법문 강원도 평창 상원사 고양이 석상 [나의 부처님]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오늘의 법문 초발심자경문/ 주혜스님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몰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 '마음 닦는 종교'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정 짓는 것에서 한 발을 나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깨달음의 종교라면 무엇을 어떻게 깨닫는다는 것인지 한 참 더 파고들어야 한다. 마음 닦는 종교라는 정의를 이해하자면, 마음에 대한 실체적 이해를 먼저 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쉬운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불교는 어려운 종교'라고 말해버린다. 그렇게 말하는 .. 더보기
[나의 부처님] 다만, 침묵으로 바라 보기만 하라/중아함경 [나의 부처님] 다만, 침묵으로 바라 보기만 하라/중아함경 설악산 봉정암 불뇌사리탑. [나의 부처님] 다만, 침묵으로 바라 보기만 하라/중아함경 다만, 침묵으로 바라 보기만 하라/중아함경 언쟁하지 말고 서로 다투지 말라. 옳고 그름을 가려 승부를 내려고 한다면 평생을 싸워도 끝이 없다. 옳고 그르다는 것은 고정되게 정해진 바가 아니어서 고정된 실체가 없다. 자신에게 옳은 것도 상대에게는 그를 수 있고 이 생활에서 옳은 것이 다른 생활에서 그를 수도 있으며 똑 같은 경우라 할지라도 인연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 할진데 내기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고집하면 한평생을 싸워도 끝날 기약이 없다. 언쟁이든 다툼이든 다만, 침묵으로 바라 보기만 하라. 말을 입밖으로 꺼내고 나면 그 어떤 말로든 옳고.. 더보기
[나의 부처님] 성철스님이 수도자에게 주는 글/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성철스님이 수도자에게 주는 글/오늘의 법문 경산 갓바위. [나의 부처님] 성철스님이 수도자에게 주는 글/오늘의 법문 성철스님이 수도자에게 주는 글 만사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무슨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우주의 원칙이다. 콩 심은 데 팥 나는 법 없고, 팥 심은데 콩 나는 법 없나니, 나의 모든 결과는 모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를 맺는다. 가지 씨를 뿌려놓고 인삼을 캐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 인삼을 캐려면 반드시 인삼 씨를 심어야 한다. 불법도 그와 마찬가지로 천만사가 다 인과법을 떠나서는 없다. 세상의 허망한 영화에 끄달리지 않고 오로지 불멸의 길을 닦는 사람만이 영원.. 더보기
[나의 부처님] 내 짐을 내가 지지 않겠다면, 혜덕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내 짐을 내가 지지 않겠다면, 혜덕스님/오늘의 법문 속초 설악산 신흥사 정수. [나의 부처님] 내 짐을 내가 지지 않겠다면, 혜덕스님/오늘의 법문 내 짐을 지지 않겠다면/ 혜덕스님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내가 되받지 않는다면 누가 받을 것인가. 좋은 말이든 나쁜 일이든, 내 짐을 내가 지지 않겠다면, 누가 대신 져 줄 것인가. 대신 밥 먹어 주고 대신 잠자 줄 수 없듯이, 대신 똥 누고 대신 아플 수 없듯이, 내 짐을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은 철칙이다. 한 치의 에누리가 없는 법칙이다. 누가 대신 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찾고, 아무리 다라니를 외어도 자작자수의 법칙엔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대신 짐을 들.. 더보기
[나의 부처님] 사자와 소의 사랑 법, 정목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사자와 소의 사랑 법, 정목스님/오늘의 법문 강원도 평창 상원사 청량수. [나의 부처님] 사자와 소의 사랑 법, 정목스님/오늘의 법문 사자와 소의 사랑법/ 정목스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을 내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데서 옵니다. 세상은 내 생각과 상관없이 자기의 섭리대로 움직입니다. 그 자연도 마찬가지고 대상도, 상대방도 마찬가지예요. 내 의지대로 안 되는 데서 고통은 시작됩니다. 사자와 소가 서로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사자는 소를 너무나 사랑했어요. 그래서 사자는 매일매일 사냥을 해서 신선한 고기를 갖다 주었어요. (토끼도 물어다 주고, 사슴도 물어다 주고, 멧돼지도 물어다 주고.) 오늘도 물어다 줘, 내일도 물어다 줘, 날마다 물어다 주는데, 소는 먹을 수.. 더보기
[나의 부처님] 비워야 채워집니다, 월호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비워야 채워집니다, 월호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비워야 채워집니다, 월호스님/오늘의 법문 비워야 채워집니다/ 월호스님 불법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참회야말로 첫 관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참 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마음, 참 나'를 찾기에 앞서서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본마음, 참 나'는 그만두고 '거짓된 마음, 거짓된 나'라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스스로를 돌아다보는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공부의 진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꽉 찬 그릇에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 아무리 귀한 체험이라도 그릇 밖으로 흘러 넘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사고방식에 대.. 더보기
[나의 부처님] 살아 있는 사람은...법정스님/오늘의 법문/법정스님의 좋은 글 [나의 부처님] 살아 있는 사람은...법정스님 /오늘의 법문/법정스님의 좋은 글 2015. 9. 19. 경산 갓바위 가을 풍경. [나의 부처님] 살아 있는 사람은...법정스님 /오늘의 법문/법정스님의 좋은 글 살아 있는 사람은.../법정스님 나는 이틀이든 사흘이든 집을 비우고 나올 때는 휴지통을 늘 비워 버린다. 거기에는 거창한 비밀이 있어서가 아니고 끄적거리다 남은 종이쪽이거나 휴지조각 같은 것들인데 일단 불에 태워 버리고 나온다. 내가 집을 떠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할 때 남긴 물건들의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서다. 그래서 그때그때 정리해 치운다. 이제 곧 가을이고 조금 있으면 나뭇잎을 다 떨어뜨린다. 계절의 변화를 보고 아 ~ 세상이 덧없구나. 벌써 가을이구나. 어느덧 한해도 두세 달밖에 안 남았네.. 더보기
[나의 부처님] 비난하고 싶은 사람에게, 지월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비난하고 싶은 사람에게, 지월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비난하고 싶은 사람에게, 지월스님/오늘의 법문 비난하고 싶은 사람에게/ 지월스님 불교에서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강이나 바다에 있는 물이 인간에게는 마시거나 요리에 사용하는 물로 보이고, 천인(天人)에게는 보물로 장식된 연못으로 보이고, 아귀의 눈에는 피고름으로 비추어지고, 물고기에게 있어서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는 비유이다. 결국 사물은 사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좋게 보이고 나쁘게도 보인다고 하는 의미이다. 또 같은 한사람에 있어서도 처음에 보았을 때와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인상이 마치 다른 일도 있다. 아이일 때에는 넓은 토지에 높고 큰 집이 서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시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