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법정스님

[나의 부처님]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 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 법정스님/오늘의 법문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경주 감포읍)에 있는 무문관. 대구 대관음사 회주스님인 무일 우학스님은 이곳에서 1000일간 문밖으로 나오지 않고 기도 정진했다.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 법정스님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른다. 강물은 항상 그곳에서 그렇게 흐른다.같은 물이면서도 늘 새롭다. 오늘 흐르는 강물은 같은 강물이지만어제의 강물이 아니다.강물은 이렇듯 늘 새롭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거죽은 비슷하지만실재는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다.살아 있는 것은 이와 같이 늘 새롭다.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른다/ 법정스님 더보기
[나의 부처님] 신수봉행(信受奉行)/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신수봉행(信受奉行)/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신수봉행(信受奉行)/ 법정스님 사십이장경이란 경전이 있다.인도로부터 최초로 중국에 들어왔다고전해지는 경전 중 하나다.이 사십이장경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많이 듣는 것으로써 도를 사랑한다면도는 끝내 얻기 어렵다.뜻을 굳게 지켜 진리를 받들어 행함으로써그 도는 크게 이루어진다." 불교의 모든 경전에 보면 신수봉행(信受奉行)이란 말이 있다.믿고 받아서 받들어 행한다는 뜻이다.모든 경전 끝에 가서 신수봉행하라,이런 부처님의 설법을 잘 듣고 일상생활에서그대로 행하라고 말한다.그렇게 살라고 한다.그렇지 않으면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한다. 나 자신도 많이 반성하지만,신앙인들은 많이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그렇게 되면 자기 안이 시끄러워질 뿐이다.자기.. 더보기
[나의 부처님]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울산 백양사.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법정스님 모든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시들고 쭈그러든다.내 글만 읽고 나를 현품 대조하러 온 사람들이가끔 깜짝 놀란다. 법정 스님하면 잘 생기고 싱싱한 줄 알았는데이렇게 별 볼 것 없고 바짝 마르고 쭈글쭈글하니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그때 마다 나는 속으로 미안해한다. 거죽은 언젠가 늙고 허물어진다.늘 새 차일 수가 없다.끌고 다니다보면 고장도 나고쥐어박아서 찌그러들기도 한다. 육신을 오십 년, 육십 년 끌고 다니다 보면폐차 직전까지 도달한다.거죽은 언젠가는 허물어진다.생로병사하고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그러나 보라.중심은 늘 새롭다.영혼에 나이가 있는가.영혼에는 나이가 없다.영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 더보기
[나의 부처님] 제대로 사는 삶/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제대로 사는 삶/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3동에 소재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제대로 사는 삶/ 법정스님 사람들은 삶을 제대로 살 줄 알아야 한다.소유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우리들의자유로운 날개를 쇠사슬로 묶어 버린다.그것은 또한 자기실현을 방해한다. 무엇을 갖고 싶다는 것은비이성적인 열정이다.비이성적인 열정에 들뜰 때그것은 벌써 정신적으로 병든 것이다.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하게소유하는 것이 아니라풍성하게 존재하는 데 있다.삶의 부피보다는 질을 문제 삼아야 한다. 사람은 무엇보다도삶을 살 줄 알 때 사람일 수가 있다.채우려고 하지 말고 텅 비울 수 있어야 한다.텅 빈곳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려 나온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에 있다.자유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의 청.. 더보기
[나의 부처님] 날마다 출가하라/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날마다 출가하라/법정스님/오늘의 법문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옥상에 자라는 연꽃. 날마다 출가하라/법정스님 나는 줄곧 혼자 살고 있다.그러니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면어떻게 수행이 가능하겠는가. 홀로 살면서도나는 아침저녁에 예불을 빼놓지 않는다.하루를 거르면 한 달을 거르게 되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삶 자체가 흐트러진다. 저마다 자기의 일상생활이 있다.자기의 세계가 있다.그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거듭 떨쳐 버리고출가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머리를 깎고 산이나 절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정신이필요하다. 홀로 있으려면최소한의 인내가 필요하다.홀로 있으면 외롭다고 해서뭔가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자기 영혼의 투명성이고이다가 .. 더보기
[나의 부처님] 업(業)/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업(業)/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집 마당에 핀 수련. 업(業)/ 법정스님 우리가 몸으로 움직이는 동작과입으로 하는 말과마음으로 하는 생각모두가 업이 된다. 업이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다.좋은 업을 쌓으면,곧 좋은 행동과 좋은 말씨와 좋은 생각을 가지면좋은 결과가 얻어진다. 좋지 않은 행동이나 말이나 생각을 지니면어두운 업을 짓게 된다. 이것이 자주 되풀이되다 보면거기에 힘이 생긴다.그것을 업력(業力)이라고 한다.또는 업장(業障)이 되는 것이다. 업력이 커지면 이성의 힘으로써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그런 관성 법칙 같은 것이 생겨난다. 내 힘으로 억제할 수 없는,자제할 수 없는 그런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업력이라는 것,업장이라는 것이 그렇다. 업(業)/ 법정스님 더보기
[나의 부처님] 입 다물고 귀를 기울여라/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입 다물고 귀를 기울여라/법정스님/오늘의 법문 함양 용추사. 자신이 쏟아 놓는 말을누군가가 가까이서 듣고 있는 줄을 안다면그렇게 도나캐나 마구 쏟아 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명심하라!누군가 반드시 듣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건뜻을 담은 말이건 간에듣는 귀가 곁에 있다. 그것을 신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고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곧 그 사람의 속마음을 열어 보임이다. 그의 말을 통해 겹겹으로 닫힌그의 내면 세계를 훤히 알 수 있다. 입 다물고 귀 기울이는 습관을 익히라.말이 많으면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말이 끊어진 데서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그가 경탄할 만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그의 내부는 텅~.. 더보기
[나의 부처님] 업을 맑히는 일/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업을 맑히는 일/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마음에 항상 불을 밝혀라. 업을 맑히는 일/ 법정스님 우리가 수도하고 또는 수행하는 것은 무엇인가.업을 맑히는 일이다.흔히 번뇌를 끊는다거나 욕망을 끊는다고 말한다.그것은 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욕망을 끊는다.번뇌를 끊는다.말로는 끊을 수 있을 것 같지만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지 질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다.말하자면 에너지의 전환이다.업의 전환이다. 탐욕으로 흐르는 일을베푸는 일로 전환하는 것이다.또 남을 미워하고 화내는 에너지는연민의 정과 자비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 내 마음이 지극히 맑고 청순하고평온할 때 중심이 잡힌다.내 중심이 잡히는 것이다.다시 말해 온전한 내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중심이 잡히지 않을 때는 늘 .. 더보기
[나의 부처님]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법정스님/오늘의 법문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법정스님 개울가에 무심히 앉아 귀 기울이고 있으면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좋은 일이든 궃은 일이든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 때일 뿐,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세월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지나가는 한 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런 일도지내 놓고 보면그 때 그 곳에 그 나름의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그 .. 더보기
[나의 부처님] 이 육체라는 것은/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이 육체라는 것은/ 법정스님/ 오늘의 법문 대구벌 관등놀이 불꽃축제. 2017. 4. 22(토). 이 육체라는 것은/ 법정스님 이 육체라는 것은 마치 콩이 들어찬 콩깍지와 같다.수만 가지로 겉모습은 바뀌지만생명 그 자체는 소멸되지 않는다. 모습은 여러 가지로 바뀌나생명 그 자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은우주의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죽음이란존재하지 않는다.다만 변화하는 세가가 있을 뿐.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다.따라서 원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불멸의 영혼을 어떻게 죽이겠는가.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이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순간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