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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거제도

(거제여행) 송두리째 떨어지는 머리...그래서 이 꽃이 좋다


(거제여행) 송두리째 떨어지는 머리... 그래서 이 꽃이 좋다


(거제여행) 동백꽃. 송두리째 떨어지는 동백꽃이 그래서 나는 좋다.

'푸른색은 쪽(식물이름)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할 때 쓰는 고사성어가 '청출어람'이다. 거제바다가 꼭 그렇다. 겨울철이 아닐 때 띠는 푸른색 바다는, 겨울이면 더욱 푸른색을 띤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바다 보다는 겨울바다가 더 푸르게 보인다. 그래서 겨울바다를 쪽빛바다라고 부른다.

11일. 쪽빛 거제바다를 보러 길을 나섰다. 해안선을 따라 도는 국도 14호선은 운전하는 내내 시야에서 바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해금강 방향으로 차를 몰면 고지대에 위치한 도로 특성상 쪽빛 바다를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둥그스레한 항아리를 닮은 지세포항은 고요하다. 호수보다 더 잔잔한 모습이다. 항 앞에 떡하니 버텨 서 있는 지심도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고마운 섬이다.

 

동백꽃. 송두리째 떨어지는 동백꽃이 그래서 나는 좋다.

이맘때가 되면 동백꽃이 섬 전체 가득 피는 지심도는 거제도에서 제일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져 있다. 그 너머로는 희미한 모습으로 기다랗게 뻗어있는 일본땅 대마도가 보인다. 지심도에서 대마도까지 직선거리로는 50km. 비 오는 날이나 안개 낀 흐린 날이 아니면, 국도 14호선 남부구간 어느 곳에서든 대마도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머나 먼 이국땅을 본다는 게 쉽지마는 않는 일이기에, 여행자에게 새로운 감흥을 느낄 수 있으리라.

와현해수욕장. 발자국을 누가 남겼는지 궁금하다.

뭇사람들이 북적대고 소란 떨었던 여름 바다는 온데간데없고, 적막감만 남아있다. 모래가 부드럽기로 소문난 와현해수욕장. 청춘남녀 몇 명만이 겨울바다를 즐기고 있다. 발자국을 남기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갑자기 부는 세찬 바람에 잠시 눈을 감았다. 아이들 물장구치는 소리, 모터보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쓸려오는 파도소리에 섞여 함께 들린다. 시계바늘은 뜨거웠던 여름, 그 어느 날 오후로 돌아가 있었다. 실상, 지난 여름 물놀이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구조라해수욕장. 오른쪽 뒤로 해금강이 보인다.

발길을 돌려 와현해수욕장에서 2km 떨어진 구조라해수욕장으로 옮겼다. 이 곳은 거제도에서 제일 큰 해수욕장으로 여름 날 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고 떠난 곳이다. 여름축제가 열리고, 밤이면 화려한 음악공연도 펼쳐졌던 무대였다. 그럼에도 이곳 역시, 지금은 적막감만 감도는 쓸쓸한 무대로만 남아 있다.

경남 거제 '쪽빛 바다'에서 동백꽃과 갈매기에 흠뻑 젖어들다

국도 14호선은 거제와 포항을 잇는 291.3km 구간의 국도로 시작점이 거제시 남부면 다포리. 다포리에서 학동, 망치, 구조라, 장승포 사이 약 40km 구간은 수십 년 된 동백꽃이 가로수로 심겨져 있다. 거제를 대표하는 꽃이 동백꽃이라 할 정도로 거제도는 동백꽃이 겨울을 장식한다. 그래서 거제시 시화도 동백꽃으로 지정돼 있다.

 

거제시 일운면 망치삼거리에서 바라 본 쪽빛 거제바다. 멀리 해금강이 보인다.

쪽빛 거제바다에서 동백꽃과 갈매기에 흠뻑 젖어 들다

동백꽃은 수도권에서 자라기 힘든 나무로,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피고 진다. 사계절 내내 넓은 푸른 잎을 유지하며 자란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변치 않는 의리의 상징으로 여겼다. 동백꽃은 추운 겨울에 피기 때문에 암술과 수술을 잇는 것은 새가 그 임무를 맡고 있다. 바로 동박새다. 이 새는 몸집이 작고 깃털이 아름다운 새로 전설에 많이 등장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망치삼거리. 이곳에서 바다 풍경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동백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는다.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는 여느 꽃과는 달리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백꽃이 떨어질 땐 사람 목이 달아나듯, 섬뜩하게 보인다. 무사의 목이 순간에 달아나는 것과 같다 해서 일본에서는 춘수락이라 표현했다.

이처럼 동백꽃은 꽃송이 째 떨어지는 이유로 슬픔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동백꽃은 전설, 소설, 시, 그리고 노래 말에도 등장하는 단골 소재로 나타난다. 이와는 반대로 꽃이 시들기 전 한꺼번에 떨어지기 때문에 '생명을 마감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면 동백꽃은 왜 통째로 떨어질까? 그것은 통꽃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통꽃 구조로는 동백꽃 이외에도 능소화, 무궁화도 있다.

생명이 다했다 여길 즈음, 미련을 버리고 송두리째 끊어버리는 모습에서 깔끔한 절개와 도도함을 볼 수 있는 동백꽃.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다하여 세한지우라 했던가. 나는 그래서 세한지우 동백꽃을 좋아한다. 송이 째 떨어지는 동백꽃을 보고, 그 곁을 한참이나 떠나지 않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망치삼거리. 오른쪽으로 가면 구천댐이요, 왼쪽으로 가면 해금강이다.

구조라해수욕장을 지나면서부터는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오후 햇살을 받은 잎사귀는 반짝거리며 은빛을 내고 있다. 쪽빛 바다 위 멀리 떠 있는 해금강 사자바위가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리가면 해금강이요, 저리가면 구천댐을 알리는 망치삼거리. 망치삼거리에서 보는 풍경은 그지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쪽빛 거제바다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차에서 잠시 내려 감상에 젖어도 좋다. 아름다운 풍광은 여행자에게 시 한편을 충분히 선사하리라.

갈매기가 힘찬 비상을 한다.

거제바다는 갈매기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아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갯벌도 있다. 작은 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하면서 노니는 광경도 볼 수도 있다. 힘찬 갈매기가 비상하는 모습을 보려면 지세포항 선창마을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무리지어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 한 마리가 갑자기 날갯짓이다. 놀란 듯 같이 날개를 퍼덕이는 무리의 갈매기는 순식간에 하늘을 치솟아 오른다. 빙빙 하늘을 돌다 다시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

휴식. 갈매기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높이 나는 갈매기를 보니, 오래 전 읽은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명언으로 알려진 '리처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

그리고 '선운사 동구'라는 서정주의 시를 다시 읽었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되어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휴식. 갈매기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모처럼 편안한 휴일을 맞은 나는 쪽빛 거제바다에서 동백꽃과 갈매기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통통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항구로 돌아오는 어선의 기척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무리의 갈매기. 나도 오늘 만큼은 저 갈매기 처럼 주변 상황에 움쩍거리고 싶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싶었기에.




(거제여행) 송두리째 떨어지는 머리... 그래서 이 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