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마애불 조성] 함양 오도재를 넘어 마천면 금계마을에 조성 중인 거대한 마애불

/‘직업은 못 속인다라는 뜻을 가진 삼구화불이본행(三句話不离本行)/금계마을 학바위 마애불 조성

 

함양 마천면으로 가는 길, 석산 개발지에 조성 중인 거대한 마애불.

 

삼구화불이본행(三句話不离本行)

 

한자공부를 전문으로 하지 않아 틀릴 수도 있지만, 직역하면 이런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 글귀(문장)를 말하면 자신의 업종이나, 뿌리나, 근본을 분리하지 못한다.”

 

풀이하면, 세 마디만 하면 항상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일을 얘기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직업은 못 속인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중국어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직종에 종사할 경우, 어떤 사물을 보는 눈은 나도,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것일까요?

 

함양에서 지방도 1023번 도로를 따라 오도재를 지나면, 국가지원지방도 60번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입니다.

금계마을 못 미쳐 왼쪽 멀리 건너편으로는 학바위라는 곳이 있는데, 그 주변은 석산개발로 산을 훼손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석산은 높이만 해도, 수십 미터는 족히 넘는 대규모의 개발지입니다.

 

 

 

 

문제는 석산을 개발한 후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석산의 면을 다듬어 거대한 불상을 조성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며칠 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벽송사를 찾았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석산개발 현장을 보았는데 예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을 본 것입니다.

석산 벽면에 거대한 불상이 조성돼 있는 것입니다.

 

불상은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큰 불상입니다.

불상의 얼굴만 뚜렷하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조성 중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렴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면에 거대한 불상을 몇 년 안에 조성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마는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평소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가끔 오도재를 넘어 가곤 하는 길입니다.

그때마다 석산 벽면에 불상을 조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불심 깊은 불자와 스님께서 추진하셨는지 몰라도, 나의 생각이 그대로 실현됐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종사하는 업종이 비슷한 사람끼리 통하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요?

 

부디, 깊은 불심으로 우리나라에서 길이 남을 마애불을 조성해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기도로서 발원해 봅니다.

 

 

 

 

[함양 마애불 조성] 함양 오도재를 넘어 마천면 금계마을에 조성 중인 거대한 마애불

/‘직업은 못 속인다라는 뜻을 가진 삼구화불이본행(三句話不离本行)

/금계마을 학바위 마애불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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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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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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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8.05.26 0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상이 정말 대단하군요 잘 보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s://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8.05.26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폐쇄된 채석장이 새롭게 바뀌고 있군요.
    행복하세요^^

 

사천 봉명산 다솔사 뒷 터에서 웃음 짓는 애민중생 미륵대성/사천여행추천

 

 

사천 봉명산 다솔사 뒷 터에서 웃음 짓는 애민중생 미륵대성/사천여행지

 

사천 봉명산군립공원 일대에 자리한 다솔사.

절터 한 바퀴를 돌아 녹차 밭 주변에 이르니 하얀 조각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리석으로 조각된 큰 석상으로, 얼굴표정이 참으로 익살스럽고 행복한 표정입니다.

 

곡선으로 강조된 눈과 입술은 웃음기가 넘쳐납니다.

축 쳐진 큰 귀는 불상에서 보는 귀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네요.

목에는 염주를 길게 늘어뜨린 상태로, 배를 드러내며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왼손에는 약단지를 들고 있어 약사불을 연상케 합니다.

아래쪽 표지석에는 『봉명산 애민중생 미륵대성』이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애민중생 미륵대성'.

대충은 그 의미를 알것 같지만, 인터넷을 찾아봐도 정확한 뜻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두고두고 불교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경남 사천 다솔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솔사

다솔사(多率寺)는 경남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86번지, 봉명산(鳳鳴山) 아래에 위치하는 절이다.

 

다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봉명산은 이명산이라고도 한다. 사찰이 자리한 일대는 봉명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511년(지증왕 12)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영악사(靈嶽寺)’라 하였고, 636년(선덕여왕 5) 건물 2동을 신축하고 다솔사로 개칭하였다. 676년(문무왕 16) 의상(義湘) 대사가 다시 ‘영봉사(靈鳳寺)’라고 고쳐 부른 뒤, 신라 말기 도선(道詵) 국사가 중건하고 다솔사라고 하였다.

 

☞ 다솔사 경내 안내문에는 503년(신라 지증왕 4)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돼 있는데,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의 기록가 차이가 있어 어느 것이 정확한지 의문이다.

 

1326년(충숙왕 13) 나옹(懶翁)이 중수하였고, 조선 초기에 영일·효익 등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686년(숙종 12) 복원하였다. 1748년(영조 24) 당우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758년 명부전·사왕문·대양루 등을 중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대양루를 제외하고 1914년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재건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 대양루(大陽樓)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8호인 극락전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인 응진전, 대웅전·나한전(羅漢殿)·천왕전(天王殿)·요사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대양루는 1749년(영조 25) 건립된 2층 맞배집으로서, 건평 106평의 큰 건물이다. 1658년에 중건하고, 1986년에 수리하였으며, 2000년 1월에 다시 보수를 마쳤다.

 

1978년 2월 8일에 있었던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改金佛事)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됨에 따라, 이 절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의 석탑을 본뜬 높이 23m, 30평 정도의 성보법당(聖寶法堂)을 탑 안에 설치하여 적멸보궁사리탑(寂滅寶宮舍利塔)을 건립하였다.

 

이밖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멸이 심한 마애불(磨崖佛)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인 보안암석굴(普安庵石窟), 부도군(浮屠群) 등이 있다.

 

보안암석굴은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하여지며, 경주 석굴암의 형태와 비슷하다. 석굴 안의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코 부분이 깨어져 있으며,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여 1.3m 내외의 석불좌상 16구가 안치되어 있는데,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도군에는 도명(道明)·낙화(樂華)·성진(聖眞)·풍운(風雲)·세진(洗塵) 등 5인의 부도가 있다.

 

이 절은 일제 때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金東里)가 『등신불(等身佛)』을 쓴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절 주위에서 재배되는 죽로차(竹露茶)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사천 봉명산 다솔사 뒷 터에서 웃음 짓는 애민중생 미륵대성/사천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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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 다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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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렘 2017.09.11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민중생 미륵대성]
    우주만물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구원하시는 부처님

  2. 설렘 2017.09.11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성불히십시요.


김해여행, 진영 봉화산 마애불과 호미든 관음상

진영 봉화산 마애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진영 봉화산 마애불(자연 암벽에 조각된 석불이 넘어져 있는 모습으로 있다.)

이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조각된 앉아 있는 석불로 발견 당시 산중턱 바위틈에 끼여 옆으로 누워 있었다. 양손과 왼쪽 어깨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애불은 당나라 황후의 꿈에 한 청년이 나타나 자꾸만 자기를 괴롭힘으로 신승의 힘을 빌려 그 청년을 바위틈에 넣어 김해 땅 봉화산의 석불이 되게 함으로써 생긴 것이라 한다.

불상의 머리 부분은 민머리에 상투 모양이 크게 표현되었는데, 목에는 3개의 주름 흔적이 보인다. 코와 입 등은 부분적으로 마모되었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지그시 감은 눈은 깊은 사색에 잠긴 듯하다.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U자형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오른손은 손바닥을 펴 어깨 높이에서 손가락이 위로 향하게 하였고, 왼손은 허리춤에서 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펴고 있다. 즉, 오른손은 중생의 두령움을 풀어주고, 왼손은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을 각각 상징한다.

이런한 손 모양은 삼국시대에만  나타나는데, 충청남도 서산의 마애삼존불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부좌를 한 채 깊은 선의 세계에 몰입해 있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신체의 균형이 잘 잡혔고 얼굴도 세련된 불상으로 조각 기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진영 봉화산 마애불 안내판

마애불 옆 바위


호미든 관음개발성상의 변

호미든 관음상

단기 4292(1959) 을해 4월 5일 황폐되고 혼탁한 사회에서 젊은 불교학도들에 의하여 이 봉화산 정상에 12척의 몸으로 호미를 들고 나타나 40년 동안 온갖 풍상 속에 개발을 선도하다 몸이 흐트러져 다시 24척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이렇게 굳건히 섰노라. 우리 다함께 온갖 잡초를 뽑아 내고 가다듬은 땅위에 통일의 마음과 진리의 보리심을 심어 이 국토에 정토를 이루고자 함이니라.
단기 4332년(1999) 을유 10월 30일

'호미든 관음개발성상의 변' 안내문

봉화산 사자바위 정상에 있는 안내판

김해여행, 진영 봉화산 마애불과 호미든 관음상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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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ubuntuk.tistory.com BlogIcon ubuntuk 2011.12.05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