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유행어.
'소는 누가 키울꺼야~~~, 소~는.'

안국사 극락전 벽에 그려진 불화

그런데, 속세에서 웃음을 만드는 소의 주제와는 달리, 조금 내용이 다르지만, 소를 찾는 과정에서 깨우침을 깨치게 하는 그림이 있어 소개코자 합니다. 

선가에는 '심우도'라는 그림이 있다. '목우도', '시우도'라 부르기도 한다.
불가에서는 오랜 전부터 '소'를  진리의 상징으로 삼고 심법전수의 수단으로 삼았다. 절마다 소를 찾는 과정의 그림을 벽에 그려 놓은 것이 심우도다.

최초로 심우도를 그렸다고 알려진 송나라 곽암선사는 화엄경이 말하는 미륵불의 출세를 상징화하여 그렸다고 한다.

안국사 극락전 벽에 그려진 불화

소를 찾는 열 가지 과정의 그 심오한 뜻, 심우도

1. 심우(尋牛) 
첫 번째는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 심우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잊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소의 발자취를 잃어버린 것이다.

2. 견적(見跡)  
두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견적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3. 견우(見牛)
세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그림이다. 견우란 소를 보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감각 작용에 몰입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소의 꼬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안국사 극락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 - 좌로부터 심우, 견적, 견우

4. 득우(得牛)
네 번째는 득우. 즉, '소를 얻다'이니,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5. 목우(牧友)
다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게 코뚜레를 꿰어 끌고 가는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랫동안의 습관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이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소를 기른다는 의미로 목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또 이 소가 어떤 진흙탕, 어떤 삼독과 유혹 속에 빠질지 모른다. 길을 잘 들이면 소도 점잖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고삐를 풀어줘도 주인을 잘 따를 것이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여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안국사 극락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 - 좌로부터 득우, 목우, 귀우귀가

7. 망우재인(忘牛在人)
일곱 번째는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망우재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인우구망.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 모든 것이 무 속으로 사라졌다. 무는 바로 한계가 없음이요, 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이다. 하늘은 너무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 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떠한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고 맑습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 성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안국사 극락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 - 좌로부터 망우재인, 인우구망, 반본환원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옷은 누더기, 때가 찌들어도 지복으로 넘쳐흐른다. 술병을 차고 시장바닥으로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이 그림의 포화대상이 누구인가? 심우도를 그린 곽암선사에 의하면 바로 이 포대를 짊어진 화상이 미륵부처님이다. 결국 심우도는 저자거리로 나서는 미륵부처를 찾아야 산다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안국사 극락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 - 맨 좌측이 입전수수

여러분은 열 중에서 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

요즘 뜨는 유행어. '소는 누가 키울거야~~~, 소~는'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dangjin2618.tistory.com BlogIcon 모르세 2011.10.10 0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향에 절을 소개하시네요.잘보고 갑니다.즐거운 한주를 열어 가세요

  2. Favicon of https://dangjin2618.tistory.com BlogIcon 모르세 2011.10.10 1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풍님,당진이 고향인데 소풍을 많이 갔던 안국사(중학교때)가 있습니다.그것을 말했는데 이곳 무주에도 있네요.덕분에 나눔이 되었네요.

    • 죽풍 2011.10.1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당진 안국사는 가 보지 못했지만, 안국사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바로 아래 동생이 당진에 사는데 왠지 정감이 갑니다. 암튼 감사합니다. 즐거운 날 되시기 바랍니다.

  3. 박성제 2011.10.10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인우구망 아마도 전 해당이 안되겠죠
    휴일 즐겁게 보내셨는지요 혹시나 시간이 나시면 저와 약간의인생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시간돼시면 연락 좀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오늘도 불교 문화을 배우고 갑니다


편안히 앉아서 하는 적상산 안국사 여행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이 절을 늘려 지었고,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었고, 나라를 평안하게 해 주는 사찰이라 하여 절 이름을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1910년에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하였다.
1989년에 적상산 양수발전소 위쪽 댐 건설로 절이 수몰 지역에 포함되자 원행스님은 호국사지였던 현재 자리로 안국사를 옮겨 세웠다.

청하루를 지나 앞마당에 들어서면 적상산을 배경으로 단아한 모습의 극락전이, 왼쪽에는 천불전과 성보박물관이, 오른쪽에는 지장전과 범종각 등이 자리 잡고 있고, 아래로는 선방과 호국당, 그리고 호국사비가 있다.
특히, 천불전은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사고 모습이다.
극락전은 '인욕바라밀'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유명한 학 단청 설화를 알 수 있듯, 오른쪽 창방 쪽에는 단 하루 분량의 단청할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성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불상과 탱화,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500여 점 이상을 전시하고 있다.

 

안국사 소개

안국사 극락전

안국사 범종

안국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

안국사 영산회괘불탱

적상산성

적상산 사고

적상산사고 선원각(상)과 적상산사고 실록각(하)

안국사 안내도

여러분께서는 편하게 앉아서 무주 적상산 안국사 여행을 하셨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 안국사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박성제 2011.10.07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풍님은 정말 인정이 많으신가봅니다
    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면 인정이 많으시드라고요
    종교중에서 쟂일 거짓말 많이 하는 사람들은 교회인가봐요
    나의주위에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나쁜짓만 골라서해요
    정말 가증서럽더라고요 혹시 교회에 다니신다면 이해바랍니다

    • 죽풍 2011.10.07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사십시오.
      나 자신만 옳은 생각으로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2. 박성제 2011.10.07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옛날에 성당에 다녔습니다
    살다보니 그만 그리데네요


그냥 아무렇게 대하기 어려운 것들

일상사 살아 가다보면, 우리 주변에는 그냥 아무렇게 대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이전부터 전해내려 오는 중요한 가보라든지, 생활에 필요한 잡동사니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사찰 여행을 하고 나서 부터는 전각에 걸려 있는 현액사진을 많이 찍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제게는 아주 소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찰의 현액을 비롯한 불교관련 방을 하나 개설합니다.

그 동안 모아 온 자료나 앞으로 여행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갈까 생각합니다.
사찰 전각의 현액에 새긴 글자를 보면, 왕족의 글씨도 있고, 예술의 경지를 넘어 선 것도 있습니다.
또한 아주 소 시민적이고, 평범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아주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는 만큼 소개토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봐 주셨으면 합니다.

안국사 극락전

일주문 정면 - 적상산안국사

일주문 뒤편 - 국중제일정토도량

천불전 - 부처님 천 분이 계십니다.

삼성각

범종각

시간이 부족하여 오늘은 별다른 소개 없이 사진만 싣는 점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 있어 그냥 아무렇게나 다루기 어려운 것들 입니다.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박성제 2011.10.06 0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찰의현판은 다모였습니다
    수집하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오늘도 날씨가 춥네요 건강조심하세요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 붉은 단풍 뒤로 덕유산 향적봉이 보인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었으면,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너를 만나러 1760Km를 달린 끝에 어제서야(3일) 네 몸을 보여줬던 너. 지난해 12월 엄동설한 눈길에도 너를 만나러 갔다가 허탕 쳐야만 했고, 눈 녹은 봄날 새싹 나는 3월에도 발길을 돌려야만 했지.

여인의 치맛자락 속이 궁금한 음흉한 사내의 탐욕이 아닌, 너에 대한 궁금증이 날 이토록 애타게 만들었던 것이었지. 어제가 아닌 오늘, 너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내 맘이 홀가분해 졌다네.(안국사에 보내는 편지)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극락전

안국사. 왠지 나라를 평안하게 해 줄 것 같은 이미지가 풍기는 이름. 1277년(고려 충렬왕 3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북 무주 적상산에 있는 호국사찰이다. 1614년(광해군 6년)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1771년(영조 47년) 법당을 다시 지었고, 안국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1910년 적상산사고가 폐지될 때 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담당하였던 절. 당초 이 절은 현재 적상산 양수발전소 상부 댐 수몰부지에 있었으나, 댐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옮기게 된 것이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 지장전과 극락전

지난해 겨울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안국사를 찾았다. 거제에서 안국사까지 정확히 220Km, 왕복으로 440Km다. 눈이 많은 무주 땅의 정보도 없이 안국사를 찾은 것이 불찰이었을까. 그 뒤로도 설마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찾아 간 것도 역시 겨울철. 3월말까지 눈길 빙판으로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알고, 4월 초순 다시 찾았지만 역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 세 번째. 그리고 이번 여행으로 10개월 만에 안국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네 번째 방문이요, 이동거리는 경유지를 포함하면 거의 2000Km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구절양장, '아홉 번이나 꼬인 양의 창자'처럼 어떤 일이나, 도로가 매우 꼬불꼬불하고 험한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안국사로 가는 길이 꼭 구절양장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만큼 굴곡이 심하고, 자칫 한눈팔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길이다. 눈이 많은 겨울철에 도로를 왜 묶어놓는지, 직접 알수 있었다. 굽이져 오르는 경사에 다가오는 경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운전자 시야에 들어오는 직선구간이 짧다보니,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사진 촬영도 쉽지가 않다. 그저 눈으로만 즐겨야 하는 구간이다. 머루와인동굴에서 안국사까지 7.1Km 굽이굽이 진 커브만 해도 30여 개가 넘는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정상부에 다다르자 돌로 쌓은 철옹성이 보여 뭔가 궁금했는데, 적상산 양수발전소 상부 댐 모습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호수는 잔잔하다. 옛 절터가 않아 있던 지역이라 물도 선정에 든 것일까? 사진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보안 때문인지 사진촬영금지란다. 겁 많은 중생이 붉게 쓴 경고문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2000Km를 달린 끝에 보는 호국사찰 안국사

폼 나게 우뚝 솟은 일주문. 햇살이 비춘 역광으로 '적상산안국사'라는 현액이 희미하게 보인다. 일주문은 속세에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여는 절과 달리 일주문을 들어서자 내리막길이다. 정화수 한 잔에 목을 적시니 정신이 맑아온다. 절터에 오면 맘이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나 자신이 부처인 것을, 부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나와 부처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중생일까?

적상산일주문 - 저 세계로 들어가면 부처의 세계다.

가파른 경사진 계단에 청하루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청하루 내부에는 수몰되기 전, 석실비장, 청하루, 극락전, 산신각 등 안국사 현판이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접어야만 했다. 깊은 계곡과 높은 산을 뒤로 하는 대형 사찰과는 달리 산 정상부에 자리를 잡아서일까, 아늑함은 그 어는 절과는 다른 느낌이다. 절터 마당은 평온하고, 가람배치도 오밀조밀한 형태가 정겹다.

청하루

청하루 처마 끝 밑으로 멀리 향적봉 정상이 보인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광활함은 전쟁터에 나선 군사를 호령하는 용맹 있는 장군의 무대처럼 느껴진다. 밝은 햇살에 비추는 황금색의 '극락전' 현액. 절을 찾을 때 마다, 꼭 하는 일은 주 법당을 한 바퀴 돌아보는 일이다. 백팔번뇌를 깨우쳐 보겠다는 나만의 보시법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천정을 보니 이상하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게 단청이 돼 있는데, 유독 포 사이 한 군데만 채색이 돼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학대사에 관한 전설.

멀리 향적봉이 보인다.

당시 조정에서는 경복궁 중건사업으로 단청공을 구할 수 없어 단청을 하지 못한 상태로 안국사의 불자들과 스님은 보수공사 축성식과 백일기도를 마쳤습니다. 며칠  뒤 남루한 차림의 한 노승이 찾아와 단청을 하지 않은 연유를 묻자 사정을 이야기하니, '내가 단청공이나 한번 해 보겠소'하더니 며칠 뒤 흰 광목천 100여장을 가져와 '석 달 열흘을 일을 할 것이니, 그 안에 절대 휘장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하였고, 스님은 기꺼이 약조를 하였습니다.

노승은 휘장 안으로 사라지고 기이하게 생각한 인아스님은 99일째 되는 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찢어진 휘장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극락전 끝에서 학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다가 놀라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약조를 어긴 대가로 완성되지 못한 마지막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딱 하루거리에 해당하는 량의 목재가 단청이 되지 않은 채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무주군청 홈페이지 문화해설에서)

학대사 이야기에 얽힌 전설의 단청

예전에는 학이 온통 노닐었다 할 만큼 많은 학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는 극락전. 절터 한 마당을 한바퀴 노닐었다. 국화향기 가득한 절터는 학이 단청을 그리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삼성각을 지나 천불전을 한 바퀴 도니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처마 끝 풍경은 슬픈 울음을 울어댄다. 어떤 때는 그리도 맑은 풍경소리가 오늘은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가을 타는 내 마음이 슬퍼서일까.

풍경소리

천불전 아래쪽에 있는 성보박물관. 세계 각국 부처님과 불교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한국, 중국, 일본, 티베트, 태국 그리고 미얀마를 비롯한 20여 불교나라의 불상, 탱화, 불교유물 그리고 도자기 등을 볼 수 있어 불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절터를 아무리 둘러봐도 정작 보고 가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익히 들었던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해 왔던 전각으로 불리는 적상산사고.

성보박물관

안국사 풍경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에 다시 스님한테 가서 물으니 아래쪽 댐 주변에 있다는 것. 멀리까지 와서 하마터면 그 중요한 전각을 구경도 못하고 갈 뻔 했다가,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적상산사고는 오후 햇살 아래 제 몸만 덩그러니 내 놓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알아서 보고 가라는 듯, 조용함을 넘어 적막감이 감돈다. 안내판에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보다 더 적은 량의 글자만 있을 뿐, 더 이상 공부 차원의 내용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옛 적상산성의 흔적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이날 여행도 카메라 배터리가 없는 탓에 전체 사진을 폰 카메라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준비가 철저해야 된다는 것을 네 번의 도전 끝에 알았지만, 새로운 실수는 계속되고 있었다.

안국사에는 주요 문화재가 많다. 보물로는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267호), 유형문화재로는 안국사 극락전(유형문화재 제42호), 적상산성 호국사비(유형문화재 제85호), 안국사 목조아미타 삼존불상(유형문화재 제201호), 문화재자료로는 안국사 범종(유형문화재 제188호) 등이 있다.

무주여행, 범종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 안국사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죽풍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박성제 2011.10.05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도전입니다
    한곳을 네번식이나 간다는것은 보통마음으로는 힘든건데
    다행이도 네번만에 만날수 있슴에 축하드림니다
    전 앉아서 한번만에 보니 좀 미안하네요
    덕분에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 죽풍 2011.10.06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축하까지야,,,그래도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다음에는 산성도 둘러보고 와야겠습니다.

  2. 박보경 2011.10.05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멈췄던 발걸음인데 덕분에 마음 달래고 갑니다
    시 한편 적어도 될가요?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찿아 간 줄 알아라
    정호승님의 풍경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