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산사순례 13] 지리산 천은사에서 108배로 13번 째 염주알을 꿰다
/사찰여행/구례여행/구례 가볼만한 곳
구례 지리산 천은사 입구.
[108산사순례 13] 지리산 천은사에서 108배로 13번 째 염주알을 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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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화재가 나지 않게 한, '물 흐르는 듯'한 서체의 일주문 편액
[108산사순례기도로 떠나는 사찰이야기] 지리산 천은사
지리산이 품은 사찰, 천은사로 가는 발길이 무겁다. 천은사에 가려면 사찰의 규정에 따라 문화재 입장료를 당연히 내야 하겠다. 하지만, 천은사 주변 861번 지방도를 이용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입장료(통행료)를 내야만 도로를 통과할 수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난 달 22일. <108산사순례> 기도여행으로 천은사를 찾았을 때, 앞선 여행자와 매표소 직원 간의 실랑이를 목격 할 수 있었다. 2013년 6월, 대법원은 '통행료 부당 징수 판결'을 내렸음에도,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문화재 자료 제35호 천은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다.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로 꼽힌다. 천은사는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조선시대 중건 당시 극락보전 상량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전하는 설과 상량문 기록과는 분명한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인근 화엄사의 창건연대(544년)와 비교해 볼 때, 이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기 보다는 중창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천은사 누리집 참고) 천은사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는, 천은사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924호), 천은사괘불탱(1340호), 구례 천은사 금동불감(1546호) 등이 있다. 전남유형문화재로는 극락보전(50호), 삼장탱화(268호)가 있다.
천은사는 창건 당시 경내에 이슬처럼 맑은 차가운 샘이 있어 감로사라 했다. 이 물을 마시면 '흐렸던 정신이 맑아진다'하여 한 때는 천 명이 넘는 스님이 지내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절이 불타고 중건 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하여 '천은사'라 이름을 바꿨다.
이후 원인모를 화재가 끊이지 않자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 두려워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 4대 명필 중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물 흐르는 듯한, 필체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서체로 걸었더니 이후부터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는 이 같은 역사를 고이 간직하면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평등한 것은 '죽음', 그 의미를 새기며
일주문 편액에 쓰인 서체가 부드럽고 힘이 넘치는 느낌이다. 일필휘지, 붓을 들고 '단숨에 죽 써 내린' 그 당시 서예가의 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주문 지붕의 색 바랜 단청은, 수 년 동안 장독에서 깊은 장맛을 내는 것과 같은, 묵직함으로 가득하다. 건축물의 부재 하나하나 섬세하게 다듬고 조각한 목조건물의 진수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는 천은사 일주문.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에서 잠시 넋을 놓아 버렸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하얀 거품을 내고 바위를 돌고 돌아 흐른다. 봄을 맞으러 떠나는 부산한 여행자처럼, 여행자를 맞는 요란스러움을 떠는 물소리도 떠들썩하고 시끄럽긴 매한가지. 백 년은 넘게 보이는 나무 한 그루는 제 몸에 큰 구멍을 내면서까지도 꿋꿋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 시작되고 있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겪어야 할 '생노병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진실. 사람과 사람 그 사이에서 평등한 단 하나의 사실은 '죽음'이라는 것.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평등함이다. 고목 한 그루에서 배우는 지혜인 새 생명의 시작과 죽음의 끝, 자연에서 배우는 깨달음이리라.
이른 아침 찾아 간 절 마당엔 고요함이 가득하다. 미세하게 부는 봄바람과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귓전을 간지럽게 할 뿐이다. 절 마당에 서 있는 '보리수나무' 한 그루. 부처님께서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니 그 존귀함을 알만 하다. 옛 부터 천은사 주변에는 보리수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천은사 마당에 서 있는 수령 약 300년 된 이 나무가 가장 오래됐으며, 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로 만든 염주는 불자들이 많이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다른 곳의 보리수나무 열매는 납작한 모양이지만, 천은사 열매는 동글동글하고 색이 고우며 윤기가 나고 가볍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스님들 사이에서도 천은사 염주를 얻는 게 큰 영광이라 할 정도라고 한다.
천은사의 주 법당은 극락보전. 이 법당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돼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이후의 전통적인 다포계 양식이다. 건물의 외형은 다른 사찰의 전각들과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나, 지붕 용마루 끝 장식이 뭔가 달라 보인다. 우리나라 목조건물 지붕에는 조각을 한 장식기와를 얹히는데, 그 종류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치미, 취두, 용두, 잡상 그리고 토수가 있다.
인간관계를 다시금 생각게 하는 , '생각의 보물'을 찾은 천은사 여행
치미는 목조건물 지붕의 용마루 좌우 끝에 장식된 기와로서, 조선시대 이전에는 새 날개나 물고기 꼬리모양을 주로 하고 있다. 그 이후로는 용머리 모양의 장식으로 많이 바뀌었고 이를 두고 취두라고 한다. 취두가 사용된 건물에서는 잡상과 토수가 반드시 설치되는데, 천은사 극락보전은 용두의 형태를 하고 있다. 불가에서 용은 불법을 수호하고 귀의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용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극락보전에서 108배로 <108산사순례기도여행>13번 째 염주 알을 꿰었다.
극락보전 법당 안 아미타후불탱화도 눈여겨 볼만한 하다. 탱화란 불교의 신앙 대상이나 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벽에 거는 불교그림을 말한다. 천은사 극락보전 탱화는 보물 제924호로, 영조 52년(1776)에 그려졌으며, 아미타불이 서방극락 세계에서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미술, 특히 서양미술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미술을 이해하기 어려우나, 불교미술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다.
탱화 속에 그려진 부처님과 보살님을 보노라면 온화한 자비심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전혀 없다. 성내지도, 그렇다고 밝은 미소로 웃는 표정도 아닌, 그 얼굴 속에서 진리와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탓에 빛이 바래가는 그림이지만, 탱화 속에 자리한 온화한 얼굴은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주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천은사 경내에서 후문으로 나와 잠시 길가에 앉았다. 겉으로만 봐도 족히 몇 백 년을 살아온 기상 넘치는 소나무가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얼었던 땅은 녹아 싹을 하나 둘 피우면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마른 나뭇가지에도 새순이 피어나는 봄이다. 어느 불자가 법정스님에게, "스님, 중노릇하는데 가장 어려운 일은 뭡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법정스님은 곧 바로 막힘없이, '인간관계'라고 답했다고 한다. '맞다'는 생각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있다면 '인간관계'가 아닐까. 얼었던 땅이 풀리는 봄, 서로가 불편한 '인간관계'를 가진 이들이 있다면, 화사한 이 계절에 모두 녹아져 서로가 친밀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108산사순례>, 구례 천은사에서 소중한 '생각의 보물'을 찾은 여행이었다고 말하리라.
『108산사순례 13』
(1)양산 통도사 → (2)합천 해인사(483.8km) → (3)순천 송광사(367.8km) → (4)경산 선본사 갓바위(448.4km) → (5)완주 송광사(220. 2km) → (6)김제 금산사(279.2km) → (7)여수 향일암(183.4km) → (8)여수 흥국사(192.3km) → (9)양산 내원사(100.3km) → (10)부산 범어사(126.6km) → (11)구례 연곡사(156.8km) → (12)구례 화엄사(25.1km) → (13)구례 천은사(화엄사 → 천은사(7.1km) → 집(185.4km), 192.5km)
☞ 총 누적거리 2,776.4km
[108산사순례 13] 지리산 천은사에서 108배로 13번 째 염주알을 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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