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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수능시험 때문에 어머니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


수능시험 때문에 어머니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

가을 - 수능시험 때문에 어머니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입니다.

늦가을비가 제정신이 아닌 모양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며칠간 오락가락 계속해서 내리니 말입니다.
그러잖아도 가을을 타는 남자라 맘도 뒤숭숭한데, 몹쓸 가을비는 한방 맞은데 또 때리는 격이네요.

어제(10일).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었죠.
회사에 다니는 아들은 수능시험을 칠 필요도 없고, 저와도 역시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수능시험 때문에 한 시간 늦게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 되겠군요.
최선을 다해 시험을 잘 치루라고 말입니다.

수능시험날 출근길에 만난 가을

덕분에 좀 여유롭게 출근했습니다.
평소 다니는 길이지만,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물든 단풍잎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맘이 여유롭지 못해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겠지요.
그래서 이참에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에서 폼(?) 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나가는 동년배의 한 남자가 말을 걸어옵니다.

"무엇을 찍고 있습니까?"
"예. 가을을 찍고 있습니다."
"가을요, 아마추어 사진작가신가요?"
"예. 아마추어 사진작갑니다.(웃으며 장난스레 받아주며)"

수능시험날 출근길에서 만난 가을

학교나 학원에서 정식으로 사진학에 대해서 공부를 한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진 활동을 한 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이론공부도 많이 했고, 사진학에 대해서도 스스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지나가는 그이가 한 말이 귓가를 맴돌며 맘이 조금 불편해 지는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프로는 아니지만, 프로페셔널이라고 했으면, 기분이 한층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저가 가진 카메라가 볼품없는 소형카메라가 돼서 아마추어 작가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네요.

얼마 전, 팔순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십니다.

"사진기 그거 엔간히 가지고 댕기라."
"아니, 왜 그러신다요?"
"필림인지 지랄인지 그거 산다고 돈도 많이 들고 헌데, 씰데 없이 돈만 쓰고 댕긴게 그러체."
"..."

더 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설명한다고 이해할 턱도 없습니다. 요즘에는 디지털카메라로 필름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저런 걱정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어떡할 수도 없겠지요.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내팽개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수능시험날 출근길에서 만난 가을

20년을 훨씬 넘게 사진을 찍어댔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직 어머니 얼굴 사진 한 장을 제대로 찍어 드린 일이 없네요.
이번 주말을 맞아 어머니께 곱게 단장하시라 하고, 사진 한 장 찍어드려야겠습니다.
효도가 뭐 별것 있습니까?
사진관에서 정색을 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찍은 사진은 싫습니다.
사진이 살아 있지 않으니까요.
제가 찍은 사진은 그 속에 어머니 삶에 대한 평생의 한과 자식사랑에 대한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사진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진이 나올지 상상이 가지 않으십니까?

수능시험날 출근길에서 만난 가을

수능시험 때문에 어머니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