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례선생님의 비장한 주례말씀




지난 일요일(11월 27일).

지인의 딸 결혼식을 축하하러 아침 일찍 일행과 버스에 올랐다. 거제에서 목적지인 서울까지 10분 모자라는 6시간이 걸렸다. 청원 IC를 나가 점심도 먹고, 휴게소에 두 번이나 들러다 보니, 평소보다는 꽤나 시간이 걸린 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아니면 결혼식장에 축하하러 갔다가, 그냥 혼주 얼굴 보고, 축의금 내고, 점심 먹고 오는 것이 보편적 결혼식 축하 의례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날은 식장 안에 자리를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예전과 다른 모습도 보는 흥미로움도 있었다.

그런데 내 관심을 끈 것은 예전과 다른 모습의 결혼식 과정이 아니라, 주례선생님의 주례사. 새로이 한 가정을 꾸리는 신랑신부에게 당부하는 모습이 심히 비장한 모습이다.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꾼데는, 우체국 집배원이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한데 있었다.
 
몇 십 년 전의 이야깁니다.

전라도 진도에 아주 가난한 집에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워낙 가난해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공부를 하기란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가끔 먹을 것도 생기고 하니 말입니다. 아이는 공부를 너무나 하고 싶었기에 편지를 한통 써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집배원이 우체통을 열자 이상한 편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발신인의 이름은 있는데, 수신인은 주소가 없었고, 이름 또한 일반 사람 이름이 아닌 '하는님'이라고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배원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대체 '이 편지를 어디로 보내야 할까'하고 말입니다. 집배원은 생각 끝에 가까운 교회에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교회에선 하느님의 믿음을 가르치니, 하느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깝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편지를 받은 목사님은 아이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에 유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마침내 대학교수가 되었고, 총장 자리까지에도 올랐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깁니다.

여기까지 주례말씀을 하는 동안 '아, 시골 가난한 집 어느 한 아이의 성공사례'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보다 이렇게 알았습니다. 좀 '특별하지만, 뭐, 있을 수 있는 얘기를 뭐하러하냐?' 이렇게 생각한 순간 반전이 이어졌습니다.

주례선생님의 주례말씀은 '아이의 성공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한 아이의 성공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신랑신부가 자신의 역할을 다 할 때, 비로소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때 집배원이 '뭐, 이런 편지가 있어'라고 하면서, 어디로 버렸거나, 교회에 배달하지 않았다면, 그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그 당시 집배원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에 시골에서 가난했던 한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랑신부 각자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항상 생각한다면, 좋은 가정을 이루리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신랑신부가 주례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지 의문입니다. 얼른 주례사가 끝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비단, 주례선생님의 말씀은 결혼하는 신랑신부에게만 해당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할 때 온 사회가 수레바퀴 돌아가듯, 잘 돌아가지 않을까요?

지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해서 새로운 인생 공부를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혼주와 신랑신부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혼주님은 자식을 훌륭히 키운 부모의 임무와 역할을 성실히 한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신랑신부님은 주례선생님 말씀처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항상 생각하는 부부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인사에 대신합니다.
잘 살고 부모님에게 효도하시기를 빌어 봅니다.


어느 주례선생님의 비장한 주례말씀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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