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여행, 흑룡이야기
거제여행, 거제 계룡사 범종에 있는 용의 모습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티브이와 신문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열을 올리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흑룡(黑龍)', 그렇습니다. 용이면 용이지, 왜 '흑룡'이라고 그 상징성을 부각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까요?
흑룡을 말하기 전에, 먼저 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우선 용하면 떠오르는 것이 사람의 띠에 나타나는 '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띠는 천간과 지지가 합쳐 육십갑자를 만드는데요, 천간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그리고 계(癸)를 말합니다. 지지는 자(子 , 쥐), 축(丑 , 소), 인(寅 , 호랑이), 묘(卯 , 토끼), 진(辰, 용), 사(巳 , 뱀), 오(午 , 말), 미(未 , 양), 신(申 , 원숭이), 유(酉 , 닭) 술(戌 , 개) 그리고 해(亥 , 돼지)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지지 중 다섯 번째 나오는 '진'이 바로 용을 의미합니다. 12간지 시간으로는 7시~9시, 월별로는 3월, 방향은 동남향을 나타냅니다. 용은 음양오행 중 음양에서 양에 해당하며, 우주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를 나타내는, 금(金), 수(水), 목(木), 화(火), 그리고 토(土) 등 5행에서는 수에 해당합니다. 봉황, 기린, 거북, 그리고 용은 영물로 상징되는 4영인데, 여기서도 용이 포함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2년도인 올 해는 '임'과 '진'이 만나 임진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연유로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 부르는 것일까요? 그것은 천간 중 '임(壬)'자는 '북(北)'을 뜻하는 한자로 검은색을 의미하며, 그래서 '흑룡'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의 띠를 상징하는 동물들은 모두 살아있는데 반해, 용만 유일하게 실존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용이 기운을 토해 구름을 만들었고, 구름도 신령스럽고 기묘하여 용은 그 구름을 타고 신묘함을 부린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옛 시절 가끔 우리가 들었던, '구름 가는데, 용 간다.'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입니다. 용은 구름 속에 나타나고 사라지듯, 사람들에겐 상상속의 신비한 동물로, 무궁무진한 조화를 부리는 동물로, 인식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용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까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용은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기 때문인지, 여러 종류의 동물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그리고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거나 닮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여러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최고의 무기를 겸비한 용은 하늘과 땅 그리고 물속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다닙니다. 그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신으로 자리 잡으며, 사람들에게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게 됩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용의 압권은 바로 여의주. 여의주는 용의 턱 아래에 있다고 전해지는 구슬로 사람이 이를 얻으면 온갖 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대표적으로 용이 나타나는 데는 바로 전설 속에 나타나는 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자' <수지편>에는 '용은 물에서 낳으며, 그 색깔은 다섯 가지 색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조화능력'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아지려면 번데기처럼 작아질 수 있고, 커지려면 천하를 덮을 만큼 커질 수 있다'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 위로 솟을 수 있고, 아래로 솟구쳐 내리려 하면 깊은 샘 속으로 잠길 수 있다'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용은 옛날부터 우리 삶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옥이나 가구 등 전통문양에서도, 왕의 옷인 곤룡포와 사찰의 범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칼 손잡이와 향로 뚜껑 등, 용은 생활 속에 터를 잡지 않을 정도로 많은 곳에 자리하며, 사람들의 삶과 같이 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의 다른 의미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용은 상서로운 기운으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힘차게 승천하는 용처럼 비상과 상승의 기운을 줍니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태몽입니다. 용꿈을 꾸면 부정을 탈까봐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 중에서도 태몽을 꿨다면 어른에게도 직접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용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상상의 동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용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임금님의 얼굴은 용안, 옷은 용포, 임금님이 정무를 볼 때 앉던 평상은 용상이라고 합니다. 임금이 즉위를 하면 용비라고 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말이, 조선 세종 때 건국의 시조들을 찬양하고, 왕조의 창건을 합리화로 노래한 서사시인 '용비어천가'가 있죠. 요즘은 정치적으로 아부하며 변형한 '(누구누구 성을 딴)비어천가'라 부르며,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용이 부정적으로 상용된 적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숭상의 상징인 용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락하게 됐는지 모를 일이네요.
흑룡을 상징하는 임진년. 과거 임진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초등학생도 그 년도를 줄줄 욀 정도로 유명한 1592년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일어났습니다. 일본이 1592년 4월 13일(음력) 조선을 침략한 전쟁은, 같은 해 5월 7일 거제도 옥포만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둡니다. 여기에도 용이 나옵니다. 거북선 용머리에서 뿜어내는 연기는 적을 압도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민족 최대의 비극적 사건인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1952년, 60년 전이 이 해도 임진년이었습니다. 1592년과 1952년, 두 숫자를 비교해 보면 뭔가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네 자리 숫자 중 가운데 두 숫자가 바뀐 임진년에 역사의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참 기묘하다는 생각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용띠는 정력적이고 건강하며, 용감하고 정직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감수성도 풍부할 뿐 아니라, 신뢰감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사회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발휘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물론, 새해 덕담 차원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좋은 이야기를 하는데 굳이 싫어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용의 해, 그 중에서도 '흑룡의 해'를 맞아 모두 건강하고 소원성취하는 올 1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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