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히 앉아서 하는 적상산 안국사 여행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이 절을 늘려 지었고,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었고, 나라를 평안하게 해 주는 사찰이라 하여 절 이름을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1910년에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하였다.
1989년에 적상산 양수발전소 위쪽 댐 건설로 절이 수몰 지역에 포함되자 원행스님은 호국사지였던 현재 자리로 안국사를 옮겨 세웠다.

청하루를 지나 앞마당에 들어서면 적상산을 배경으로 단아한 모습의 극락전이, 왼쪽에는 천불전과 성보박물관이, 오른쪽에는 지장전과 범종각 등이 자리 잡고 있고, 아래로는 선방과 호국당, 그리고 호국사비가 있다.
특히, 천불전은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사고 모습이다.
극락전은 '인욕바라밀'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유명한 학 단청 설화를 알 수 있듯, 오른쪽 창방 쪽에는 단 하루 분량의 단청할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성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불상과 탱화,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500여 점 이상을 전시하고 있다.

 

안국사 소개

안국사 극락전

안국사 범종

안국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

안국사 영산회괘불탱

적상산성

적상산 사고

적상산사고 선원각(상)과 적상산사고 실록각(하)

안국사 안내도

여러분께서는 편하게 앉아서 무주 적상산 안국사 여행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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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성제 2011.10.07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풍님은 정말 인정이 많으신가봅니다
    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면 인정이 많으시드라고요
    종교중에서 쟂일 거짓말 많이 하는 사람들은 교회인가봐요
    나의주위에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나쁜짓만 골라서해요
    정말 가증서럽더라고요 혹시 교회에 다니신다면 이해바랍니다

    • 죽풍 2011.10.07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사십시오.
      나 자신만 옳은 생각으로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2. 박성제 2011.10.07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옛날에 성당에 다녔습니다
    살다보니 그만 그리데네요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 붉은 단풍 뒤로 덕유산 향적봉이 보인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었으면,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너를 만나러 1760Km를 달린 끝에 어제서야(3일) 네 몸을 보여줬던 너. 지난해 12월 엄동설한 눈길에도 너를 만나러 갔다가 허탕 쳐야만 했고, 눈 녹은 봄날 새싹 나는 3월에도 발길을 돌려야만 했지.

여인의 치맛자락 속이 궁금한 음흉한 사내의 탐욕이 아닌, 너에 대한 궁금증이 날 이토록 애타게 만들었던 것이었지. 어제가 아닌 오늘, 너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내 맘이 홀가분해 졌다네.(안국사에 보내는 편지)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극락전

안국사. 왠지 나라를 평안하게 해 줄 것 같은 이미지가 풍기는 이름. 1277년(고려 충렬왕 3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북 무주 적상산에 있는 호국사찰이다. 1614년(광해군 6년)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1771년(영조 47년) 법당을 다시 지었고, 안국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1910년 적상산사고가 폐지될 때 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담당하였던 절. 당초 이 절은 현재 적상산 양수발전소 상부 댐 수몰부지에 있었으나, 댐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옮기게 된 것이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 지장전과 극락전

지난해 겨울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안국사를 찾았다. 거제에서 안국사까지 정확히 220Km, 왕복으로 440Km다. 눈이 많은 무주 땅의 정보도 없이 안국사를 찾은 것이 불찰이었을까. 그 뒤로도 설마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찾아 간 것도 역시 겨울철. 3월말까지 눈길 빙판으로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알고, 4월 초순 다시 찾았지만 역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 세 번째. 그리고 이번 여행으로 10개월 만에 안국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네 번째 방문이요, 이동거리는 경유지를 포함하면 거의 2000Km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구절양장, '아홉 번이나 꼬인 양의 창자'처럼 어떤 일이나, 도로가 매우 꼬불꼬불하고 험한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안국사로 가는 길이 꼭 구절양장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만큼 굴곡이 심하고, 자칫 한눈팔면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길이다. 눈이 많은 겨울철에 도로를 왜 묶어놓는지, 직접 알수 있었다. 굽이져 오르는 경사에 다가오는 경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운전자 시야에 들어오는 직선구간이 짧다보니,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사진 촬영도 쉽지가 않다. 그저 눈으로만 즐겨야 하는 구간이다. 머루와인동굴에서 안국사까지 7.1Km 굽이굽이 진 커브만 해도 30여 개가 넘는다.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정상부에 다다르자 돌로 쌓은 철옹성이 보여 뭔가 궁금했는데, 적상산 양수발전소 상부 댐 모습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호수는 잔잔하다. 옛 절터가 않아 있던 지역이라 물도 선정에 든 것일까? 사진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보안 때문인지 사진촬영금지란다. 겁 많은 중생이 붉게 쓴 경고문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2000Km를 달린 끝에 보는 호국사찰 안국사

폼 나게 우뚝 솟은 일주문. 햇살이 비춘 역광으로 '적상산안국사'라는 현액이 희미하게 보인다. 일주문은 속세에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여는 절과 달리 일주문을 들어서자 내리막길이다. 정화수 한 잔에 목을 적시니 정신이 맑아온다. 절터에 오면 맘이 편해지는 것은 왜일까. 나 자신이 부처인 것을, 부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나와 부처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중생일까?

적상산일주문 - 저 세계로 들어가면 부처의 세계다.

가파른 경사진 계단에 청하루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청하루 내부에는 수몰되기 전, 석실비장, 청하루, 극락전, 산신각 등 안국사 현판이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접어야만 했다. 깊은 계곡과 높은 산을 뒤로 하는 대형 사찰과는 달리 산 정상부에 자리를 잡아서일까, 아늑함은 그 어는 절과는 다른 느낌이다. 절터 마당은 평온하고, 가람배치도 오밀조밀한 형태가 정겹다.

청하루

청하루 처마 끝 밑으로 멀리 향적봉 정상이 보인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광활함은 전쟁터에 나선 군사를 호령하는 용맹 있는 장군의 무대처럼 느껴진다. 밝은 햇살에 비추는 황금색의 '극락전' 현액. 절을 찾을 때 마다, 꼭 하는 일은 주 법당을 한 바퀴 돌아보는 일이다. 백팔번뇌를 깨우쳐 보겠다는 나만의 보시법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천정을 보니 이상하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게 단청이 돼 있는데, 유독 포 사이 한 군데만 채색이 돼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학대사에 관한 전설.

멀리 향적봉이 보인다.

당시 조정에서는 경복궁 중건사업으로 단청공을 구할 수 없어 단청을 하지 못한 상태로 안국사의 불자들과 스님은 보수공사 축성식과 백일기도를 마쳤습니다. 며칠  뒤 남루한 차림의 한 노승이 찾아와 단청을 하지 않은 연유를 묻자 사정을 이야기하니, '내가 단청공이나 한번 해 보겠소'하더니 며칠 뒤 흰 광목천 100여장을 가져와 '석 달 열흘을 일을 할 것이니, 그 안에 절대 휘장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하였고, 스님은 기꺼이 약조를 하였습니다.

노승은 휘장 안으로 사라지고 기이하게 생각한 인아스님은 99일째 되는 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찢어진 휘장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니 극락전 끝에서 학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다가 놀라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약조를 어긴 대가로 완성되지 못한 마지막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딱 하루거리에 해당하는 량의 목재가 단청이 되지 않은 채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무주군청 홈페이지 문화해설에서)

학대사 이야기에 얽힌 전설의 단청

예전에는 학이 온통 노닐었다 할 만큼 많은 학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는 극락전. 절터 한 마당을 한바퀴 노닐었다. 국화향기 가득한 절터는 학이 단청을 그리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삼성각을 지나 천불전을 한 바퀴 도니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처마 끝 풍경은 슬픈 울음을 울어댄다. 어떤 때는 그리도 맑은 풍경소리가 오늘은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가을 타는 내 마음이 슬퍼서일까.

풍경소리

천불전 아래쪽에 있는 성보박물관. 세계 각국 부처님과 불교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한국, 중국, 일본, 티베트, 태국 그리고 미얀마를 비롯한 20여 불교나라의 불상, 탱화, 불교유물 그리고 도자기 등을 볼 수 있어 불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절터를 아무리 둘러봐도 정작 보고 가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익히 들었던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해 왔던 전각으로 불리는 적상산사고.

성보박물관

안국사 풍경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에 다시 스님한테 가서 물으니 아래쪽 댐 주변에 있다는 것. 멀리까지 와서 하마터면 그 중요한 전각을 구경도 못하고 갈 뻔 했다가,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적상산사고는 오후 햇살 아래 제 몸만 덩그러니 내 놓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알아서 보고 가라는 듯, 조용함을 넘어 적막감이 감돈다. 안내판에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보다 더 적은 량의 글자만 있을 뿐, 더 이상 공부 차원의 내용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옛 적상산성의 흔적들.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이날 여행도 카메라 배터리가 없는 탓에 전체 사진을 폰 카메라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준비가 철저해야 된다는 것을 네 번의 도전 끝에 알았지만, 새로운 실수는 계속되고 있었다.

안국사에는 주요 문화재가 많다. 보물로는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267호), 유형문화재로는 안국사 극락전(유형문화재 제42호), 적상산성 호국사비(유형문화재 제85호), 안국사 목조아미타 삼존불상(유형문화재 제201호), 문화재자료로는 안국사 범종(유형문화재 제188호) 등이 있다.

무주여행, 범종

무주여행, 얼마나 귀하신 몸이기에, 네 번 만에 얼굴을 내미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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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성제 2011.10.05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도전입니다
    한곳을 네번식이나 간다는것은 보통마음으로는 힘든건데
    다행이도 네번만에 만날수 있슴에 축하드림니다
    전 앉아서 한번만에 보니 좀 미안하네요
    덕분에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 죽풍 2011.10.06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축하까지야,,,그래도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다음에는 산성도 둘러보고 와야겠습니다.

  2. 박보경 2011.10.05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멈췄던 발걸음인데 덕분에 마음 달래고 갑니다
    시 한편 적어도 될가요?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찿아 간 줄 알아라
    정호승님의 풍경 달다


무주여행,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무주여행, 적상산 사고

2011년 10월 3일. 가을 황금연휴 마지막 날.
무주군 적상면에 있는 적상산 사고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이다.
거제에서 출발 35번 고속국도를 타고, 함양 분기점에서 거창IC를 빠져 나와 무주로 향하는 길.
거제시청에서 거창군청까지 155킬로미터, 이어 거창에서 전북 무주군 적상산 안국사 입구까지 60킬로미터로 총 215킬로미터의 거리.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그래도 가을을 만끽하며 달리는 기분은 최상의 컨디션.

가을은 완연히 땅 위에 내려 앉았다. 빨강, 노랑 물결이 넘실거린다. 들녘에도, 길가에도, 산에도 화려한 색깔의 옷을 갈아 입고 있다.
가을추수 걷이도 한창이다. 사과는 붉은 홍조를 띠며 부끄러워하는 새색시 모습을 하고 있다.
도로변에 심겨진 사과 열매를 누가 따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역시 오늘 여행도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져 폰카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행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여행이었다.

무주여행, 적상산 사고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무주여행, 적상산 사고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적상산성 안에 설치했던 사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 실록을 정리 및 편찬하여 5부를 완성하고,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각 1부씩 보관했다. 이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 묘향산사고를 만주에서 일어난 후금(청나라)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1610년(광해군 2년) 무주군에 있던 적산산성을 수리하고 1614년 실록전을 건립해 1633년(인조 11년)까지 묘향산 사고의 실록을 모두 옮겼다. 1643년에는 사고를 지키고 산성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산성 안에 수호사찰로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했다.

1872년(고종 9년) 실록전과 선원각을 개수했으며, 조선 말기까지 실록이 완전히 보관되어 있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적상산실록은 창덕궁 장서각으로 이관되었다. 8.15 해방 후 실록도난사건이 발생하여 여러 권이 없어졌고, 나머지도 6.25전쟁으로 분실되었다. 산성에 있던 실록전 등의 건물도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다만 선원각만 근처의 안국사(安國寺)에 남아 있다.

(출처 : 브래태니커 백과사전)

적상산 양수발전댐을 지나 바라 보이는 적상산 사고

무주여행, 적상산사고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무주여행, 적상산사고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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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성제 2011.10.04 0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풍님 연휴 즐겁게 지내셨는지요
    가을 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많이 나게 하는 계절인가봐요
    오즈음은 무언가 허전하고 빈듯한 느낌으로 하루하루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나 동내일이 걱정입니다 무식한 놈들을에게는 무엇이약일가요
    약한데는 강하고 강한데는 어쩔쭐모르는 나약한 놈들입니다

    • 죽풍 2011.10.04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박성제님도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허전함이 들지만 즐거움을 찾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만, 그래도 하나하나 풀어가는 지혜와 넓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2. Favicon of http://sys610.tistory.com BlogIcon 블로그토리 2011.10.04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으로 사라진 사료들도 엄청나겠군요.
    슬픈 일입니다...ㅜㅜ

    • Favicon of https://bamnwind.tistory.com BlogIcon 죽풍 2011.10.04 2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렇죠. 지금도 북한 김일성 대학에 일부 사료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찾아오지도 못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3. Favicon of https://neowind.tistory.com BlogIcon 김천령 2011.10.04 2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상산은 종종 가는 곳입니다.
    완연한 가을을 느끼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bamnwind.tistory.com BlogIcon 죽풍 2011.10.04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김천령님의 바람흔적에서도 안국사 기사를 봤습니다.
      어제 님의 블로그에 엄청나게 방문하셨군요. 비결이 뭔지 정말 궁금하네요.

  4. Favicon of https://borisu1004.tistory.com BlogIcon 누리나래 2011.10.07 05: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주쪽은 단풍이 들기 시작햇군요..^^



설원의 개그 콘서트,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이고 내가 잘못 들었네~~~

  
▲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오른쪽 높은 봉우리). 중간 왼쪽 멀리 진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지리산 반야봉이다.
향적봉

소풍가는 날 새벽녘. 신발장 제일 아래 칸 구석진 곳, 21년 동안이나 나의 애마 역할을 한 비브람 등산화.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주지 않았던지 먼지가 소복이 쌓였다. 그 당시 거금(?)이라 할 수 있는 십 만 원 넘게 주고 산 등산화였다. 정확히 89년부터 산에 홀려 주말마다 산을 찾았다. 그 땐 자가용도 없었기에 버스로 지리산, 덕유산으로 가야만 했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불편함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랬지만 산을 찾아 나서는 길은 기대감으로 찼고, 돌아오는 길은 배낭에 기쁨 가득한 즐거움이 있었다. 

  
▲ 남덕유산 하얀 설원의 남덕유산. 왼쪽 뒤로 지리산 반야봉이 선명하다.
남덕유산

처음엔 여럿이 좋아 단체산행을 했지만, 고독을 즐기기 위해 혼자 다니기로 했다. 야간 산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초저녁, 산에 올라 텐트를 쳤다. 겁도 많이 났던 것은 당연한 일. 술병을 나발 채 마시며 잠을 청했지만, 새벽 두세 시경이면 충혈 된 눈은 자동으로 떠지곤 했다. 날짐승 울음소리,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윙윙거리는 바람소리, 모두가 머리털을 곤두서게 했다. 이렇게 겁을 먹으면서, 혼자서 왜 산행을 할까 했지만, 주말만 돌아오면 또 다시 배낭을 챙기곤 했던 기억. 먼지 쌓인 비브람 등산화를 꺼내는 새벽아침, 90년대 산행에 대한 기억을 내 뱉어 놓았다. 

마지막 겨울을 알리는 2월의 끝자락인 26일. 직원끼리 산행이지만, 친목도모와 화합을 위한 자리. 그래서 먹을거리가 푸짐해야 제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싱싱한 횟감을 찾아 여명 길을 나섰다. 평소에 횟감을 직접 손질하는 취미가 있어, 직접 고기를 골라 회를 만들었다. 가끔 회를 직접 떠 회식을 할 때면, 주위에서 횟집 차려도 되겠다고 하지만, 글쎄, 딱 한 달을 못 넘겨 문 닫지 않을까 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 가야산 중간 멀리 희미하게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가야산이다.
가야산

지난 해 말 거제와 부산을 잇는 아름다운 다리가 놓인 두 번째 큰 섬, 거제도. 다리를 지나야만 왠지, 어디로 떠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섬사람들만의 생각인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거제대교를 지날 때, 비로소 소풍을 간다는 기분이 든다. 차창 밖,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배가 힘이 넘친다. 푸른 쪽빛 겨울바다는 소풍객들을 환영해 주는 것만 같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달리고 달려서, 경상도를 벗어나 전라도로 접어든다. 산자락 군데군데 하얀 눈 두둑이 있다. 벌거벗은 나무 숲 사이에 녹지 않은 잔설. 봄을 기다리는 나뭇가지와 제 몸을 완전히 녹여버리고 싶지 않은 하얀 눈은 자연과 생명을 느끼게 해 준다. 목적지인 무주가 가까워오자 높은 산꼭대기는 하얀 눈 세상이다. 어서라도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다. 

  
▲ 대덕산 멀리 뾰족히 하늘에 닿아 있는 봉우리가 무풍면에 소재한 대덕산이다.
대덕산

한참 열을 내어 달린 버스가 지칠 쯤, 일행은 무주스키장에 도착했다. 화려한 복장을 하고 색안경을 낀 스키어들이 눈밭을 이리저리 누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모습은 프로 선수 못지않다. 스키를 배워 머리카락 흩날리며 한번 타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역시, 생각에 머문다. 지나가는 세월이 아쉬울 뿐, 머릿속 꿈만 가득한데 어쩌랴. 이런 산행이라도 계속할 수 있음에 행복으로 받아들여야지. 

곤돌라를 탄 직원들은 어린아이 얼굴이다. 소리 지르며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 영판 아이가 뛰노는 것과 같다. 집 마당에 늘 묶여 있던 강아지, 눈 오는 날 풀어 놓으면 눈밭에 깡충깡충 뛰노는 모습과 똑 같다. 강아지랑 비교한다고 뭐라고 나무랄까? 기분 나쁘게는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게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나로서, 보기 좋아서 하는 말이니라. 

  
▲ 설원 향적봉으로 오르내리는 등산객들. 왼쪽 끝이 향적봉이다.
향적봉

곤돌라는 일행을 설천봉에 내려 주었다. 하얀 설원의 세상. 많은 등산객들이 향적봉을 오르내린다. 눈이 얼어 등산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겨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다. 두 발을 땅에 버티기가 힘겹다. 작은 나무 가지에 넘어지지 않으려 의지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고, 눈밭 등산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나약한 나뭇가지에 버티는 모습이 우습다. 강하다는 인간의 역설적인 모습이다. 

  
▲ 오뚜기 산악회원 어떻게 아세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이고, 내가 잘못들었네,,, 짧은 시간 즐거움을 주게 한 안양에서 왔다는 오뚜기 산악회원들.
오뚜기산악회

넓적한 바위에서 사진을 찍는 단체 등산객에게 사진을 찍어 주자, 간단한 인사와 대화가 오갔다. 

"겨울 산이 좋죠. 저쪽 끝이 남덕유산입니다. 어디서 왔어요. 어느 산악회세요?"
"안양요. 어떻게 아세요?"
"예~? (한참 망설이다)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러자 일행으로 보이는 또 다른 남자가 끼어들며 내게 묻는다. 

"어떻게 모르세요? (그것도 모르느냐는 뜻으로)어디 외국에서 (살다)왔어요?"
"예? ... 무슨 회산가요, 무엇을 만드는 곳인데요?"
"아니, 어떻게를 진짜 모르세요? 케첩이랑 식품 만드는 회산데..."
"(그래도 몰라서) ...(멍한 내 모습)" 

대화는 여기서 끝을 맺었고, 모두 발걸음을 옮겼다. 설천봉에서 20여 분 지나니, 향적봉이 눈앞에 있었다. 겨울바람답지 않은, 차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얼굴과 가슴을 때린다. 환희와 함께하는 벅찬 가슴이다. 정말 오랜만에 오른 향적봉 정상. 몇 년 만에 올랐는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백련사를 거쳐 힘들게 걸어서 올랐는데, 이번에는 곤돌라의 힘을 빌렸다. 그런데 어쩌랴, 힘에 부치는 것을. 

  
▲ 지리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장엄한 지리산. 멀리 진하게 일자로 길게 늘어서 있는 부분이 지리산 종주코스. 왼쪽 끝이 천왕봉, 그 좌측으로 중봉, 오른쪽 끝이 반야봉이다.
지리산댐

주말 비 예보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날씨만 청량하다. 날씨 예보 믿고 나서지 않았다면, 후회만 가득 했을 법. 하늘은 파랗고, 산은 하얗다. 첩첩한 산맥이 겹겹이 드러누워 어깨동무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장엄한 모습이다. 멀리 지리산맥이 찐한 모습으로 길게 뻗어있다. 좌측으로 천왕봉이고, 조금 좌측이 중봉이다. 오른쪽 끝으로는 반야봉이 선하다. 그 사이로 제석봉~장터목산장~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산장~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임걸령~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종주코스. 지리산만을 고집하고 산행했을 때, 종주코스를 다녔을 때, 숲속의 돌멩이 하나, 풀 한포기, 고목 한 그루가 주마등처럼 기억으로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 머리 속은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다. 

  
▲ 적상산 하산하는 등산객 앞쪽 중간에 적상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양수댐 중 하나인 하부댐이 보인다.
적상산

푸르고 맑은 날씨는 멀리 가야산을 눈앞에 데려 놓았다. 가야산 줄기도 가는 실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무풍면 대덕산 꼭대기도 하늘에 닿아 있다. 산맥이 겹겹이 쳐져 있어 파도가 물결을 치는 모습이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듯, 우에서 좌로 방향을 트니 명산들이 즐비하다. 양수댐이 있는 적상산도 야트막히 코앞에 버티고 있다. 그 옆으로 하부 댐이 선명하게 푸른빛을 비추고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니 남덕유산이 양쪽봉우리로 다정히 서 있다. 향적봉에서 동엽령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가는 길. 겨울산행을 해 보지 않은 등산객이라면, 진정 그 맛을 모를 것이니라. 세 번의 덕유산 종주코스 산행, 향적봉에 선 이 시간, 옛 추억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산행 중에 먹는 음식이야말로 맛을 치자면, 고급 호텔 메뉴가 부럽지 않다. 반찬 종류가 중요하지 않다. 소주에 먹을 만한 안주 하나 있으면 최고.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횟감을 준비했으니, 기대는 가득 채움이다. 바람이 불어 동료끼리 서로 의지하며, 둘러앉았다. 소속감이요, 화합이다. 그래서 나선 오늘 소풍 아니겠는가? 소주와 회가 기가 차도록 맛이 있다. 산 정상에서 회를 쳐 먹는 이 맛, 누가 알까? 한 잔 술을 따라 '위하여'를 외치니, 내일부터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 직원끼리 무주스키장에서 마지막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며 직원끼리 한 컷.
무주스키장

하산하는 길, 직원 여러 명이 탄 곤돌라 안에서 등산 때 겪은 얘기를 전했다. 안양에 '어떻게'를 아냐고? 내가 처음 들었을 때처럼,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 눈치다. 눈치 빠른 한 직원이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한다. 직원이 뭔가 알아차렸다는 묘한 웃음을 보인다. 

"혹시, 오뚜기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닌데, '어떻게'라고 하던데. 내가 몇 번이나 물어도 '어떻게' 아냐고 하던데.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다시 물었지."
"잘못 들었을 겁니다. 안양에 오뚜기라는 회사가 있는 걸로 봐서, 아마 그 회사에서 단체 산행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 듯 했다. 내가 잘못 들었던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말이 툭 튀어 나온다. 어느 방송사 개그 프로, 인기 있는 대사 한 마디.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이고, 내가 잘못 들었네~~~" 

곤돌라에서 내렸다. 주차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든 버스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니, 산행 중에 만났던 그 '어떻게' 팀원들이 모여 있다.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버스 바로 옆, 안양에서 왔다는 산행 안내문이 붙은 '어떻게' 산행단체 버스가 떡하니 서 있다. 헤어짐 인사도 나눴다. 그제야 '어떻게'라는 말이 '오뚜기'라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근데 '오뚜기'가 어떻게 '어떻게'로 들렸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 기도 설천봉에 있는 돌탑에 동료 직원이 돌을 쌓으며 소원을 빌고 있다.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기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향적봉 설원 개그콘서트 재방송이 열렸다. 

"어떻게 아세요?"
"어떻게→어떠케→어떠게→오떠게→오뚜게→오뚜기"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난 그렇게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네~~~"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산속 메아리가 아닌 마이크 에코소리로. 

  
▲ 향적봉 산행 향적봉 산행
향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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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 덕유산 향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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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방조제와 채석강에 빠진 늦가을 여행
  
▲ 곰소바다 곰소만 앞바다. 적막감이 들고, 쓸쓸한 느낌이다.
곰소바다

덕숭산 자리에 터 잡은 수덕사는 늦가을 진한 향과 깊은 맛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느끼는 늦가을 밤은 조용히 깊어만 간다. 10월 19일 아침, 약간 을씨년스러운 기운은 황량한 들판에 내려놓고 가벼운 몸만 버스에 태웠다.  

전날, 온천에서 몸을 뜨겁게 달구었던 탓일까. 머리도 맑고 몸도 가볍다. 온천에서 목욕 한 게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온천 가기란 별 것 아니지만, 그리 쉽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단체여행 덕분에 온천에도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차창밖풍경 버스로 달리면서 바라본 차창밖 풍경. 버스가 달리듯 세월도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해 달리고 있다.
가을

승용차보다 그다지 속도를 내지 않는 버스는 차창 밖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승용차는 운전에만 몰두하다 보니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차체도 낮기 때문에 시야의 폭도 좁아 많은 풍경을 담지도 못한다.  

높은 위치에서 넓은 시야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데서는 버스여행이 좋다. 그래서 가끔 버스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두세 배의 시간을 요구하지만, 불편함을 이겨내 보는 것, 버스여행에서 얻는 소중한 체험이 아닐까. 

40번 국도를 벗어난 버스는 15번 고속국도로 접어들자 앞만 보고 내달린다. 덩달아 차창 밖 풍경도 쏜살같이 사라진다. 멀리 있는 풍경은 그래도 잠시 머물다 간다. 몇 시간을 달려 일행을 내려놓은 곳은 새만금방조제. 말로만 들어왔던 그곳에 처음으로 왔기에 어떤 곳일까 궁금하다. 

  
▲ 갑문 새만금방조제 갑문
새만금방조제

바다 위 만리장성, 단군 이래 최대 역사, 대한민국 경제고속도로 등 각종 수식어가 나붙는 새만금방조제. 전라북도 군산, 김제, 부안 앞바다를 연결하는 방조제다. 기존 세계에서 가장 긴 네덜란드 자위더르 방조제보다 500m 더 긴 33.9㎞다. 1991년 11월 16일 첫 삽을 뜨고, 2010년 4월 27일 삽질을 내려놓음으로써 19년 세월이 걸렸다.  

사업면적은 4만100㏊(토지 2만8300㏊, 담수호 1만1800㏊)로서, 서울의 2/3에 해당하고, 여의도의 140배에 이르는 땅이 새로 생긴 것. 우여곡절도 많았다. 개발로 인한 방대한 영역의 갯벌과 해양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가 있다는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환경단체와 전북주민들이 낸 새만금 사업계획 취소 소송에서 패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그런 새만금방조제에 왔다. 

  
▲ 채석강 퇴적암층.
채석강

끝이 안 보일 정도 곧게 뻗은 방조제 위로 버스는 천천히 달린다. 왼쪽으로는 일부 육지가 될 땅이요, 오른쪽으로는 바다다. 왼쪽은 아직 바다 그대로 모습이다. 오른쪽은 배가 다니고,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호수 같은 잔잔한 바다지만, 큰 파도가 칠 때가 있는 모양이다. 방조제 사면에는 큰 바위와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다.  

큰 바위는 파도로 인하여 사면에서 빠져 나온 것이고, 작은 돌은 바다에서 떠밀려 올라 온 것이라는 생각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버스에서 바라보이는 가드레일은 곡선으로 만들어져 있어 꼭 파도가 치는 것만 같다. 버스 속도에 따라 큰 파도와 작은 파도가 울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제법 달리자 작은 섬이 나온다. 군산시 옥도면 야미도와 신시도로 이어지는 길은 계속되고, 주변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고군산군도라고 한다. 경치가 빼어나고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선유도가 옆에 있다. 군산에서 뱃길이 있다지만, 신시도에서 어선으로 가면 금방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언젠가 꼭 한번 가고 싶은 섬이다. 

  
▲ 휴게소 공원 새만금방조제 갑문 휴게소에 쌀쌀한 가을이 내려 앉아 있다.
새만금방조제

잠시, 갑문 휴게소에 내려 한 숨 돌리며, 사진도 찍었다. 뿌연 날씨로 먼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몸이 움츠려 든다. 찬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커피 한잔, 여행의 여유로움이다. 방조제는 준공되었지만, 중간 중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흙탕길을 잠시 지나 변산반도로 들어섰다. 

  
▲ 채석강 채석강 퇴적암층.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채석강

기암괴석과 수 만권의 책을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으로 된 절벽 모습을 한 채석강은 변산반도 볼거리중 하나다. 짠물 냄새를 맡으며 썰물 때 드러나는 퇴적암층을 걷는 기분도 상쾌하다. 사이사이 고인 바닷물에 자신의 얼굴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흙 두께가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 퇴적암층 땅위에 선 소나무는, 고고함과 자존심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 채석강 거울 채석강에서 볼 수 있는 바다거울. 한번 쯤, 짠물 바다에 뜬 자신의 얼굴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채석강

곰소란 심마니들이 쓰는 은어로, 소금이라는 뜻이란다. 청정해수 천일염으로 숙성시킨 자연의 맛이라 자랑하는 젓갈로 유명한 곰소마을에서 먹는 점심은 푸짐했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차려진 젓갈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땅기게 한다. 탕이 보글거리는 소리, 잡담소리, 음식 먹는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온갖 소리들로 식당 안은 시장 통이 따로 없다. 한바탕 소란에 배는 채워지고, 이쑤시개 집어 들며, 느긋해 하는 사람들. 

갯가에 산다는 징표일까, 촌놈이라 그럴까. 젓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예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어, 젓갈 파는 집에 들렀다. 다른 단체도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환한 조명 아래 진열된 젓갈. 보는 것만으로도 먹고 싶다. 굴 향이 그대로 배어있는 어리굴젓, 쫄깃쫄깃한 낙지젓, 달콤한 창란젓과 명란젓, 짭짤한 바지락젓과 밴댕이젓, 씹는 맛으로 먹는 아가미젓, 배추 속잎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나는 갈치속젓, 이 모두가 입맛을 자극한다.  

이 밖에도 토하젓, 골뚜기젓, 꽃게장젓, 순태젓, 전어밤젓, 청어알젓, 그리고 가리비젓 종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짭짤함으로 혀를 자극하여 맛을 느끼게 하는 젓갈이지만, 각기 다른 맛을 내는 곰소만의 젓갈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 새우젓 김장할때 넣으면 한층 맛이 나는 연분홍색 새우젓.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럽다.
새우젓

지금은 한창 김장철. 진분홍색을 띠는 몇 종류의 새우젓에 눈길이 간다. 추젓(9월 전후로 잡은 새우로 담간 젓)은 주로 김장에 많이 쓴다. 한달 정도 지나면 김장 속에 삭아 유산 화 되어 버리기 때문. 오젓(오월 경에 잡는 새우)은 그냥 먹기에 편하다. 살이 통통 오른 육젓(유월경에 잡는 새우)은 무침으로 제격이다. 김장할 때 사용하는 젓은 지역마다 다른 모양. 새우젓을 넣는 지역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지역도 있다. 멸치액젓과 까나리액젓은 크기가 다른 용기에 종류별로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 무침젓갈 종류도 다양한 무침젓갈이 전시돼 있고,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럽다.
무침젓갈

여러 종류 젓갈을 사고 싶었지만, 어리굴젓과 아가미젓만 낙점이다. 몇 종류 더 사고 싶었고,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푸짐하다. 주문하면 택배로도 보내준다 하니 다음에는 다른 젓갈로 맛을 봐야겠다. 곰소만 칠산젓갈 백영식 대표는 무침젓갈을 먹는 주의사항을 단단히 알려준다. 무침젓갈은 냉동실에 보관하여 먹어야 한다고. 양념으로 만든 무침젓갈은 실온(3~5도)에서 보관할 경우 유산균이 많아져 쉽게 시어 버리기 때문에 냉동보관 해야 한다는 것. 냉동보관을 한다 해도 소금기가 있어 아주 세게 얼지 않기에 먹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 곰소바다 곰소만 앞바다
곰소만

곰소만의 가을 풍경과 젓갈 맛을 담은 버스는 달린다. 두 서넛 마주 앉아 조용히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큰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귤도 과자도 음료수도 나누어준다. 피곤한 탓일까, 한 사람은 고개가 앞으로, 뒤로, 운동 중이다. 몰래 사진을 찍어 나중에 같이 보면서, 한 바탕 웃었다. 버스 안 각가지 모습을 몰래 감상(?)하는 기분이 묘하다. 넓은 들녘과 멀리 보이는 산을 뒤로한 채 버스는 전날 아침 모였던 장소에 일행을 내려놓았다.  

버스를 이용하여 단체여행을 떠나 본 적도, 족히, 십년도 넘은 것만 같다. 차 안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막춤 추며, 놀았던 추억은 아득하기만 하다. 1박 2일 워크숍을 겸한 버스를 이용한 단체여행. 차 안에서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는 버스여행. 그래도 의미 깊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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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 곰소만젓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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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바다와 진도 바다의 또 다른 가을 느낌

  
▲ 늦가을 진도의 바다 거제도에서 310km를 달려 도착한 진도. 안개에 휩싸인 진도대교가 늦가을을 품에 안고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진도대교

바닷가에서 태어나 반세기 동안 바다를 보고 살아왔지만, 매일같이 바라보는 바다는 하루도 같은 느낌이 아닌,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가지게 해줬다. 그래서 바다를 사랑하게 됐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게 사랑할 것만 같다.  

가을은 깊어 가는데, 화려하게 치장한 단풍이 물든 산보다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바다가 더 좋다. 내 삶의 터 거제의 바다가 아닌, 또 다른 삶이 묻어 있는 바다를 보러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최남단의 섬인 진도로 향했다. 몇 달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진도였지만, 미루고 미루다 가는 여행길은 희뿌연 안개만이 안전운행을 일깨워 줄 뿐이다. 

  
▲ 쌍계사 국화축제 진도의 쌍계사에선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쌍계사

11월 첫 주 일요일(2일). 아침 일찍 거제에서 310㎞를 달렸고, 세 시간 반을 넘겨서야, 진도대교를 볼 수 있었다. 안개에 휩싸인 사장교의 진도대교는 휘황찬란한 야경사진에서 보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였다. 우뚝 솟은 주 탑은 웅장하였고, 언뜻, 거미줄 같아 보이는 로프는 육중한 상판 때문이었는지, 힘에 겨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마, 그런 느낌은 장시간의 운전으로 인한 피곤한 육신 때문이었을까. 동시에 느끼는 착시와 착각 현상의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리 밑은 초속 11노트(6m)의 빠른 조수가 흐르고, 동양에서 바다 물살이 제일 세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해남과 진도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이순신이 왜군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친 명량대첩지라 불리는 유명한 울돌목이다. 

유람선터미널로 전화를 걸었다. 유람선은 오전·오후 각 한 차례 운항하고, 10명 이상 되어야만 출항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이다. 점심을 미루고 쉬미항에 도착했다. 자동차는 제법 많이 주차돼 있었지만, 관광객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한산했다. 현장 분위기로 봐서 배는 출항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안개 낀 날씨로 차라리 유람선이 운항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시야가 흐려 사진촬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 강아지 삼형제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삼형제가 지친 탓일까 곤히 잠들어 있다.
진도

다시 돌아서 읍내로 나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 운이 좋게도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역시, 시골장터 만큼은 볼거리가 풍성하다. 풋풋한 정이 흐르고, 서로 싸우듯이 흥정하며, 왁자지껄한 장터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보고 느낀다.  

형제처럼 보이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세마리는 지친 탓일까,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귀엽고 정겹기만 하다. 한 달여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애견 선이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이별에 대한 슬픔과 애절함이 가슴을 죄어 오는 것만 같아 더 이상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 녹색의 땅 섬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느낄수 있는 들녘이다.
녹색의 땅

섬사람들은 근면성을 타고 난 것일까? 몇 해 전, 남해를 갔을 때도 겨울철에 노는 땅을 볼 수가 없었다. 마늘을 심은 들판은 녹색의 땅이었고, 근면과 성실의 현장이었다. 진도 역시 대파와 배추가 심겨진 들녘에서 섬사람 특유의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운림산방 허련선생의 화실
운림산방

예까지 왔으니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아니 보고 갈 수는 없다. 깊어 가는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명소라는 생각이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허련선생(1809년~1892년)이 말년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던 화실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곳 작은 연못에는, 가을이 수면에 넉넉히 내려앉아 포근히 쉬고 있다. 수면 위에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일필휘지의 힘도 느껴지지만, 곡선의 부드러움은 그 시대 가을 놀이하는 여인의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같은 느낌도 든다. 

  
▲ 자연산수화 진도의 대표적인 명소로 운림산방의 작은 연못. 수면은 화선지요, 물감은 자연이며, 붓은 하늘로 그린 연못위의 그림 한점. 허련선생은 이 연못에서 그림의 영감을 얻은 듯만 하다.
운림산방

연못 위 그림 한 장. 수면은 화선지요, 물감은 자연이며, 붓은 하늘이다. 연못 위 자연이 그린 그림을 본 때문일까. 소치기념관에서 감상하는 선생의 작품은 조금 전, 연못에서 본 잔영이 그대로 남아 실제 그림과 혼동을 일으키게 한다. 선생은 당시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겠지만, 영감(靈感)은 연못에서 느꼈으리라.  

매주 토요일 11시, 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진도역사관에서는 유명작가들이 그린 한국화, 서예 그리고 문인화 등을 경매한다는 안내를 듣고서야, 차라리 토요일에 방문하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 대웅전 진도 쌍계사 대웅전앞에 국화가 만발하다.
쌍계사

  
▲ 분재국 처음 보는 분재국.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의 국화에서 핀 수 백 송이의 꽃은 지극정성의 결실이다.
국화분재

쌍계사는 하동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진도에는 또 다른 쌍계사가 있었고, 이곳에선 국화대축제가 한창이었다. 사찰은 규모면에서 하동보다 크지 않지만, 고풍스러움만큼은 못지 않아보였다.  

엄지손가락 굵기보다 더 큰 분재국의 가지에서 핀 수백 송이의 국화는 일 년 내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동물 모양의 소원등과 국화가 어우러진 쌍계사의 가을은 긴 겨울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신비의 바닷길 매년 4~5월이면 뽕할머니상에서 오른쪽 안개에 싸인 모도까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신비의 바닷길

상큼한 국화향기를 뒤로하고 신비의 바닷길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뽕할머니상에서 바닷길이 열리는 모도(茅島)를 바라보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제법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들 물이라 수심도 꽤 깊어 보였는데, 바닷물이 갈라진다고 하니 신비스럽기만 하다. 바닷길은 매년 4~5월에 3~5회 정도 열리며, 길이 약 2.8㎞, 폭 약 40m라고 한다.  

잠시 후, 대형 관광버스 두 대가 부산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술시가 지나고 술 마신 기운 탓인지 여행객은 시끄럽기 짝이 없다. 아저씨부대는 포장마차로 향하고, 아줌마부대는 한 할머니가 작업하고 있는 김 건조장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파는 곱창김은 금세 동이 났다. 1미터가 넘는 곱창김은 곱창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진도에서 만난 할머니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에서 어미같은 할머니가 곱창김을 다듬고 있다.
신비의 바닷길

파도가 밀려간 듯 여행객들이 철수한 조용한 시간, 할머니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올 해 일흔 아홉이라는 할머니는 정정해 보였지만, 힘겨운 모습도 함께 보였다. 남편은 쉰셋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넷은 모두 잘 산다고 한다.  

아직 일을 할 수 있으니, 놀지 않는다면서, 오늘 하루 동안 한 봉지 만원하는 김을 스무 개 정도 팔았다고 한다. 어미 같은 생각에 기꺼이 한 봉지를 샀고, 집에 와서 무쳐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힌다. 아마도 할머니가 힘들게 노력하고 정성을 들인 손맛과 신비의 바닷길이 만들어준 마력이 더해져 좋은 맛을 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진도의 바다는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여행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소개팅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춘남녀가 소개팅을 하려면 키는 얼마이고, 몸매는 어떠며, 외모는 잘 생겼는지, 성격은 괜찮은지 등등, 먼저, 상대방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대략 알아보고 만나듯,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가고자 하는 곳, 가보고 싶어 하는 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해가 있어야 만이 한층 더 품격 있는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스스로 구세대라 생각하는 지금이다. 청춘시절, 소개팅을 해 본 경험이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는 전국을 대상으로 여행 소개팅을 하러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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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 운림산방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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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을 따라 도는 황포돛배야 어디로 가는지 말해다오

며칠째 몸은 무겁고 팔다리가 쑤시면서 정신은 혼미한 상태가 이어진다. 당연히, 병원을 찾아야겠지만 병원에서 치료할 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에서 버티고 있다. 가을향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특히, 가을에만 걸리는 이름도 모를 몹쓸 병이라는 진단이다. 물론, 의사의 진단이 아니라 자가 진단이다. 푸른 가을하늘을 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경쾌한 음악을 듣고, 신나게 달려야만 낫는다는 처방이 떨어졌다. 이것 역시도,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자가 처방임은 물론이다. 

  
▲ 가을을 달리는 기차 구 영산포역에는 가을을 달리는 기차가 있다
영산포

이름 모를 몹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와 차를 몰았다. 평소,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공부한다는 나만의 여행철학을 가지고 있던 터라, 출발하기에 앞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코스 등 여행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편이라 자부했건만, 이날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떠났고, 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겨우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홍탁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거제에서 나주까지 짧은 거리가 아니다. 모두들 가을맞이 하러 가는 걸까. 고속도로는 많은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 다투어 달린다. 집에서 230㎞를 달려 동광주 IC를 빠져나와 목포방향 1호선 국도를 달리다 보니, 드넓은 나주평야는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사전 정보도 계획도 없는 여행이었던지라, 시청에 들러 안내책자를 받고 홍어전문집을 찾아 나섰다. 

  
▲ 홍어의 거리 영산교 주변 홍어의 거리에 접어들면 홍어의 특유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홍어의 거리

영산교를 건너 좁은 도로로 접어드니 찐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차창을 닫았는데도, 찐한 향이 코를 자극하고도 남는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자동차는 즐비하게 주차돼 있고, 다리 입구에는 ‘홍어의 거리’라는 관광지를 상징하는 갈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갑작스레, 홍어에 대한 십수 년 전의 웃지 못 할 추억이 떠올랐다. 전라도 최고음식으로 호평 받으며, 잔칫상에 없어서는 안 될 홍어는 경상도 사람한테는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닌 시절이었다. 아는 형을 만나러 전라도 지역을 가게 되었고 음식을 시켰는데, 홍어 몇 점을 내 놓았다. 고깃살이 생가오리 같아 한 점을 덥석 집어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썩은 것 같은 역한 냄새에 씹지도 못하고 뱉어버리면서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아줌마, 머시(무엇이) 이런 썩은 고기를 내 놓는교(주는가요)?

...

아이, 진짜 무슨 식당이 이렇게 상한 음식을 가지고 장사를 하능교(합니까)?

...

주인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대꾸도 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항의하는 공격적인(?) 태도에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형님은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어색한 드라마가 한동안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꼈고, 나중에서야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홍어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같이 동석했던 그 형님도 홍어라는 걸 알면서도 내게 말하지 않았고, 신경질 부리는 모습을 보고 즐겼다고 하니, 혼자서 잠시 동안 바보가 된 것은 시간 문제였던 셈이다. 그 당시 멋쩍었던 기억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홍어만 보면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삼키기도 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 홍어회 한 접시 3만원짜리의 홍어회. 배가 고파 홍어 두점을 먹고 찍은 사진이다. 홍어가 영산포로 오게된 것은 고려시대 왜구가 극성을 부리자 흑산도에 사는 어민들을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키고 흑산도를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취하면서, 홍어가 함께 들어왔으며, 돛단배를 타고 오가던 당시 며칠씩 걸리기도 했는데 냉장설비가 없었던 시절이라 어시장에 도착하기 전에 상해버렸으며, 그런데도 배탈이 나지 않은 생선이 홍어였으며, 그 후로 홍어를 별미로 삭혀 먹었다고 한다.
홍어의 거리

코끝을 찡하게 하고, 가끔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냄새가 나는 홍어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 어떻게 홍어와의 친숙한 만남으로, 지금은 택배를 시켜 가면서까지도 먹는 홍어 마니아가 되었을까. 

그 당시 거제도에는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데 점심 때 자주 가는 식당이 있었다. 전라도 사람인 식당 주인은 맛보기로 손님들에게 홍어 몇 점을 내 놓곤 했다. 그때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한 점씩 먹어보았더니, 처음 맛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두 번째 갈 때는 두 점, 세 번째 갈 때는 세 점씩, 식당을 찾을 때마다 차츰 먹는 양을 늘려 나갔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홍어의 진미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홍어 홍보대사(?)로 활약할 만큼 홍어회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 영산포등대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설치된 등대로 수위측정과 등대기능을 겸했다. 우리나라 내륙하천가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1989년까지 수위관측 시설로 사용했으며, 지금도 수위를 표시하는 숫자표시와 등대안에는 낡은 장비가 있다.
영산포등대

홍어의 거리에 있는 소박한 어느 식당에 들렀다. 3만원 하는 홍어회가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김 한 조각에 돼지고기와 홍어 각 한 조각씩, 그리고 묵은지를 싸서 큰 입을 벌리고 한 점 넘기고 있는데, 푸짐한 주인아주머니와 서울에서 왔다는 손님의 인사말이 웃음을 더해준다. 

어솨요.(어서 와요.)

어이서(어디서) 오기는 서울에서 왔제(왔지). 

인사말로 알아듣지 못한 서울손님은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사람보다 더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는다. 그래도 주인아주머니는 깔끔한 음식 맛처럼 더 깔끔하게 인사를 받아 기분이 좋다. 홍어 맛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이다. 지금도 그 맛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느낌이다. 

식당 2층에서 바라보는 영산강은 호남 들녘을 휘감아 돌아 예로부터 풍요의 땅을 일구었던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삼한시대부터 조선조까지 호남내륙의 거점으로 전라도의 상징이었던 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영산포는 1977년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기 전까지 소금, 쌀, 홍어 등 물류의 중심지로 유명하였고, 지금도 그 당시 배가 정박하였던 자리에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하얀 등대가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벽에는 당시 물건을 싣고 내리는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여행객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 영산포벽화 영산포등대 주변 벽체에 그려져 있는 옛 시절의 상인들과 배가 정박해 있는 그림
영산포등대

멀리까지 왔는데 드라마 ‘주몽’의 촬영지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청에서 얻은 관광지도에는 삼한지 테마파크라고 안내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주영상테마파크로 명칭을 변경한지라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 동부여성 2천평의 실내 공간과 7미터 높이의 웅장한 스케일의 궁전
동부여성

BC 37년, 첫 민족국가 고구려 탄생의 역사를 재현해 놓은 곳. 2천년이란 긴 시간의 벽을 넘어 그 당시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성곽을 따라 돌면서 바라보는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물줄기는 평화로웠고, 물길에 몸을 맡긴 황포돛대는 한 폭의 동양화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나주영상테마파크 성곽 위에서 내려다 본 영산강과 나주들녘
영산강

삼삼오오 다정스레 나들이를 즐기는 나주영상테마파크의 안마당은 고요하다. 2천 평의 실내 공간과 7미터 높이의 웅장한 스케일의 동부여성, 영산강 물줄기와 나주 들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당에 위치한 신단, 철이 절대유일의 힘을 상징하던 시절 철을 만들었던 철기제작소, 유럽영화 ‘트로이’에서나 볼 수 있는 성벽 밖 수로가 있고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육중한 문을 가진 해자성문, 기와거리, 저잣거리, 초가거리 그리고 졸본부여성 등 역사적 고증을 거쳐 만든 세트장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본다면, 잠시마나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기와집 기와거리의 모습이다
기와집

  
▲ 신전 영산강 물줄기와 나주 들녘 경관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에 위치한 신전
신전

영산강의 옛 정취와 남도의 향수를 느끼고자 황포돛배 선착장에 이르렀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지라 두 척 중 한 척만 운행하였고, 배를 타려면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아쉽다는 생각뿐이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비단물결 따라 몸을 맡긴 황포돛배를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섯 시가 넘은 시간이라 집까지 가야 할 길이 멀었기 때문이니라. 

  
▲ 황포돛배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비단물결을 따라 여행객을 싣고 나르는 황포돛배
황포돛배

풍요로운 것은 가을만이 아닐 것이다. 여행도 풍요로워야 하건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빈 곳이 있어 그곳을 가득 채워 버린다면, 더 이상 채울 욕심이 없기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적당히 빈 곳을 비워두어야 다음을 기약하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 빈 내 마음은 신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 이미자의 ‘황포돛배’를 들으며, 나의 애마인 자동차의 핸들이 부드러워졌음을 느꼈을 때 빈 마음도 조금 채워짐을 느꼈다.

황포돛배 - 노래 이미자 -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 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오 돛배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람에

떠나가는 저 사공 고향이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 마라 이마음도 서럽다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오 돛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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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시 영산동 | 영산포홍어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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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전설을 간직한 채 피는 선운사의 꽃무릇

  
▲ 백양꽃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백양사

누가 그랬을까, 누가 말했을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살아있는 생명이 잠시 쉬어야 할 시간인 겨울로 가는 긴 여정 앞에 잠시 들르는 가을. 그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는 9월의 마지막 날, 전북 고창으로의 가을 여행길에 올랐다.  

높고 푸른 하늘과 새털 같은 하얀 구름은 정처 없이 어디론가 홀로 떠돌아다니는 방랑시인 김삿갓 같기도 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바퀴의 시끄러운 소음도 가을 분위기 탓인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무척 쾌청한 날씨라 농부의 가을걷이 모습도 눈에 띌 법도 하지만, 들녘은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고요하다. 

  
▲ 읍성내 소나무 읍성내에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소나무가 가을하늘을 덮고 있다.
소나무

몇 해 전, 먼 길을 빙 둘러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고창담양선 고속도로 개통으로 훨씬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고, 그만큼 시간도 늘어나 마음의 여유도 넉넉하다. 고창읍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세월의 흐름을 같이하며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읍성 입구에 들어서니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모양성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인 모양성(牟陽城)은 고창읍성의 다름 이름이다. 

  
▲ 고창읍성 읍성에 오르면 고창읍내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다.
고창읍

평일임에도 사람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답성놀이를 하고 있다. 안내 간판에는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적혀있다. 성 밟기는 저승 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좋고,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왁자지껄한 단체 여행객 한 팀을 따라 성을 돌았다.  

  
▲ 고창읍성 성곽 성곽에는 강아지밥풀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고창읍성

  
▲ 가을향기 성내에는 가을향기가 널려 퍼져 있다. 뒤로 보이는 작청이라는 건물은 조선시대때 이방과 아전들이 소관 업무를 처리하던 청사이다.
고창읍성

그 누군들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하고 싶은 욕심이 없을까.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아낄 겸, 성곽은 한 바퀴만 돌고 성내를 둘러보았다. 성안에는 동헌, 작청, 옥(獄), 풍화루, 지석묘, 고창객사, 척화비 그리고 공북루 등 성 안 곳곳에는 지방문화재가 많이 있어 역사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만 같다. 야생화와 억새가 함께 어우러져 핀 성내에는 가을향기가 널리 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선운사로 가는 도로변의 황금들녘 선운사로 가는 길에 가을이 무르있었다. 보는 것만 하여도 행복으로 충만하는 느낌이다.
황금들녘

선운사로 향하는 도로변은 가을이 한층 더 여물었다. 하늬바람 덕분일까. 여름을 보내고 서풍을 맞이하면 곡식이 여물고 대가 세어진다는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라는 속담이 실감난다. 황금빛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 그 자체다. 근심·걱정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잠시만이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음을 비우고 일상을 떠나 자연을 즐기는 편안함이 이래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늬바람에 출렁이는 억새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황금들판 너머 큰 바위산이 풍요로움을 즐기는 듯 내게 손짓을 하고 있다.  

길 옆 작은 마을의 오래된 상점 간판이 정겹다. 추억을 되돌려 놓는다. 잠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냥 통과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다시 돌아가 추억을 담아 가고 싶었는데, 일행이 있어 끝내 말을 못하고 말았다. 먼길이지만, 언젠가 다시 와서 찍어야 되겠다는 나와의 약속만을 머릿속에 남겨둔 채 가던 길을 재촉했다. 

  
▲ 선운사 꽃무릇 선운사 입구에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무릇이 붉게 피어있다.
꽃무릇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석산(石蒜)이라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의 종자구입이었다. 다른 말로 꽃무릇이라고 부르는 이 꽃은 명품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곱디고운 꽃이다. 고창 선운사의 가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꽃무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전국의 사진작가와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꽃무릇은 9월 중순경부터 꽃을 피우고 10월 중순 무서리가 내리면 새파란 잎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 겨울을 나게 하는 특별한 꽃이다. 고고히 홀로 피는 자태는 양귀비의 고귀함보다 아름답고, 무리지어 피는 화려함은 환장하리만큼 황홀하다. 

응달진 곳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꽃무릇은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오후쯤이면 그 화려함은 절정을 발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듬뿍 안겨주는, 가을을 대표하는 사랑받는 꽃으로 유명하다.  

몸은 하나지만 꽃과 잎이 같이 피지 않아 서로 영원토록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꽃. 상상화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아주 먼 옛날, 절에 기도하러 온 예쁜 처녀가 스님을 사모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뒤 절터 곳곳에 붉게 피어났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기다림은 영원히 만남으로 이루지 못하고, 그리움만으로 남는 것 같아 슬프기만 하다. 스님을 얼마나 그리워하였으면, 부도 옆에서도 활짝 피어 웃고 있을까. 

  
▲ 산신당 지킴이 꽃무릇 슬픈 전설을 간직한 채 핀 꽃무릇은 오늘도 그리움을 듬뿍 안고 있다.
산신당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꺾일 듯 한 연약한 꽃대는 가냘픈 처녀의 몸이고, 꽃잎은 스님을 애타게 그리는 간절한 사랑의 눈빛이런가. 그래서일까, 선운사 산신당 문지방에 꽃무릇 다섯 송이가 애타는 모습으로 피어있다. 아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매년 같은 시기에 저렇게 스님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화의 슬픈 전설을 알아버린 연유일까, 문지방에 핀 꽃무릇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 만세루 천왕문과 대웅보전 사이로 만세루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만세루

선운사 마당은 다른 절보다 더 넓은 것 같다. 절 마당에 긴 장방형의 누(樓)라는 이름을 붙인 만세루가 있는데, 실제로는 2층의 누각이 아닌 낮은 단층 건물로서 천왕문과 대웅보전을 연결하는 선상에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만세루가 절 마당 중간에 있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궁금해서 스님에게 물었는데, 대웅보전 쪽으로는 벽체를 두지 않고 개방하여 대웅보전과 밀접한 관계를 갖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법회가 있을 때 큰 스님의 법어를 듣는 강당으로 사용된다고. 

  
▲ 목어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목어
목어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을 범종각 한 곳에 같이 모셔 놓은 것도 다른 많은 사찰과는 달리 눈에 띄는 점이다. 천상과 지옥중생을 제도하고, 짐승을 비롯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며, 공중을 날아다니고 허공을 떠도는 영혼과 물속에 사는 중생까지도 제도하기 위한 불전사물을 보면서 깨달음이란 무엇일까란 마음으로 한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겨울에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인 가을. 늦은 오후의 산사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불전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때문에 외롭지가 않다. 가을을 느끼고 싶어 산사를 찾았건만, 가을의 그리움만 가득 안고 또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하는 것, 이것이 일상의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깊이 드는 까닭이다. 누가 말했을까, 누가 그랬을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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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 선운산도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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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북적대는 가을보다는 자신의 향기를 찾아서
 
  
▲ 가을향기 성불사 계곡에 찾아온 가을
 
 

깊어가는 가을날, 집 밖으로 한 걸음만 내밀면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도 완연한 가을을 느낀다. 더군다나 차를 타고 한적한 농촌 길을 달리다 보면 가을은 더욱 내 가슴 가까이에 와 닿아 있다. 오후 두 시의 가을 햇살을 등에 이고 산야에 흐드러지게 핀 억새. 역광을 받은 하얀 피사체는 사람의 혼을 빼앗아버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빛의 하늘거림은 붉게 물든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와 정신을 잃게 만든다.

 

  
▲ 화려함 붉게 물든 내 가슴속의 가을
 

전국에 이름 나 있는 억새 평원에 주말과 휴일에 수만 명의 등산객이 붐빈다는 뉴스는 깊어가는 이 가을의 소식을 그대로 전해준다. 어떤 이는 자연경관을 즐기기보다는 북적대는 사람 속에서 가을과 사람의 향기를 맡으려고, 또 어떤 이는 자연과 사람 속에서 자신의 향기를 맡으려는 이도 있다.

 

  
▲ 가을의 소리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시월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주 일요일(28일), 전남 광양시 봉강면 백운산 아래에 위치한 성불사(成佛寺)로 자신의 향기를 찾아 나섰다. 오후의 한적한 시간인데, 시골길이 너무나도 조용하다. 벼농사 가을걷이는 대부분 마쳤는지, 들녘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붉게 물든 경치를 감상하며, 사랑하는 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달리는 기분이야말로, 힘든 등반 끝에 시원히 맞이하는 바람의 상쾌함보다 더 좋은 느낌이리라.

 

  
▲ 포근함 하늘을 덮어버린 가을
 

산사로 들어가는 오솔길.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조용히 걷고 싶은 길이다. 차에서 내려 계곡으로 내려갔다. 바위를 돌고 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영혼을 깨운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어느새 잔잔한 고요의 바다에 안착하고,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은 물에 비친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반가움 형형색색의 가을
 

가을 행락철치고는 너무나 고요하다. 적막감이 감도는 산에는 형형색색 물든 나뭇잎만 일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이름이 잘 알려진 산보다는, 적막감이 감돌고 외로움을 한번쯤 느끼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별로 커 보이지 않는 사찰입구의 주차장에는 승용차만 대여섯 대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고요함 나의 향기를 찾아서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 많은 산사를 돌아 다녀봤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입구 좌측에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입석 앞으로 코끼리 상이 있고, 우측에는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새겨진 입석 앞으로 역시 코끼리상이 있다.

 

코끼리는 불가에서 무슨 상징일까? 석가모니 탄생은 어머니 마야 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게 되고,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 고독 고요한 산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나뭇잎 떨어져 땅바닥에 뒹구는 소리,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이 삼아 장난치면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외는 그 어떤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산사에서, 가을 향기를 맡고 자신의 향기에 취해 본다.

 

대웅보전 앞마당은 고요하다. 물결의 출렁임 하나 볼 수 없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다. 백운산 도솔봉 아래 화려한 색채로 수놓은 단풍을 홀로 감상하는 맛은 일품이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름난 산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 단청 단청 사이로 보이는 가을
 

단청(丹靑), 그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인간의 열정과 혼이 서려 있는 전통예술의 최고의 가치이기도 하다. 단청 사이로 보이는 가을의 아름다움은 두 배의 느낌을 더해 준다. 특히, 조용한 산사에서 혼자만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때 느끼는 그 감정은 자신이 예술가가 된 듯하다.

 

  
▲ 동반자 외로움을 느끼며
 

길가에 아름답게 피었던 코스모스의 흔적은 없어진 지 오래 된 듯하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가을을 배신이라도 하듯 씨앗만 매단 채 바람에 흔들거린다.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를 온 동네 수소문하였지만, 찾을 길 없는 것과 마찬가지 느낌이다. 다시, 돌아서는 발길의 무거움도 꼭 이런 감정일까?

 

두 그루의 늙고 늙은 소나무가 형제처럼, 친구처럼, 다정하게 보이지만, 아무래도 그 속사정은 나만이 알 것만 같다. 어젯밤, 별일 아닌 일을 가지고 싸운 부부처럼,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으련만, 그렇게 묵묵히 혼자인 듯, 두 나무가 둘로 있지만 혼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일일까?

 

멋진 공연이나 예술작품 전시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 갈 때의 느낌은 어떠할까? 충만한 마음에 그 기쁨이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여흥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하는 것도 의문이다. 여행으로 인하여 느끼게 해 주는 만족감과 기쁨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아쉬운 마음으로 조용한 산사의 느낌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자신을 찾아 떠나는 또다른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온다.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면서 각오를 다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 감향 자연과 인생의 가을을 느낀다
 

정겨운 시골집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노란 감을 따는 할머니의 모습이 가을 향기 그 자체다. 감을 손질하는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을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할머니 일생의 가을도, 자연의 가을도, 가을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고집스런 어미 생각이 났다. 평소에 티격태격 다투는 어미와 아들 사이다. 달콤한 감을 사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어미 같은 할머니한테 한 상자의 감을 샀다. 어미로부터 분명코 비싼 돈 주고 뭐 하러 이런 걸 사왔냐고 따져 물을 게 뻔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 가지 않을 수 없다. 농사짓는 아는 형님한테 얻어 왔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지만, 어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난해처럼, 똑같은 거짓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어미의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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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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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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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꽃살창
▲ 진한 향을 맡으며 천천히 걷고 싶은 전나무 숲길
일상에서 잡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곳, 일주문(一柱門). 산사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5월 11일 전북 부안땅을 밟고, 내소사를 찾았다.

절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전북 부안 내소사에 들어가는 느낌은 그 어느 절과는 다르다.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사귀가 걸음걸이를 한층 편하게 해 준다.

▲ 보종각
키가 큰 전나무 숲을 보니 밀림지대를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지고, 나무 잎에서 뿜어내는 향기는 아름다운 여인의 내음보다도 진하다. 맑은 공기에 취해 크게 심호흡을 하니 정신이 맑아진다. 다른 사람들과 일주문으로 같이 들어갔건만, 그 사람들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 내소사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앞서가는 사람의 빠른 발걸음을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다. 여기에서 만큼은 느릴수록 좋다.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약 5백 미터의 전나무 숲길을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단풍나무와 벚나무길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 하늘과 맞닿아 있는 대웅보전
사천왕문을 지나니 대웅전 앞에 뚝하니 버티고 서 있는, 천년이 되었다는, 아주 큰 당나무가 호령이라도 하는 듯하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 절을 감싸 안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 두 배로 드는 기분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한 바퀴 둘렀다.

절의 규모는 대사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을 한 품격 높여 부르는 대웅보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이 간다.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가 화음을 이루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노스님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내소사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291호).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춰 지은 건물로서, 화려한 다포양식으로 조선 인조11년(163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배흘림 양식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형태다. 정사각형 격자 문양으로 마감한 천장의 꽃무늬 단청은 법당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 불심
대웅전 감상의 최고는 정문의 꽃살 창문이다. 연꽃, 국화꽃, 해바라기꽃으로 장식한 문살의 문양이 하나의 꽃밭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수 백년 간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은 탓인지, 지금은 화려한 색깔의 채색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생각할 수 있으련만, 오히려 채색 없는 나무의 결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다는 느낌이다. 살며시 만져보니 촉감이 참 좋다.

부처님 공양 중 가장 으뜸이 등(燈) 공양이고, 다음으로 꽃 공양이라고 한다. 새삼 수 백년 전의 그 목수가 생각난다. 얼마나 엄청난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꽃문양 하나하나를 새겨 넣을 때마다 부처님을 생각한 그 불심(佛心)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마, 지금은 또 다른 부처가 되어 이 절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차장 주변으로 몇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다. 그런데 붉은 나팔 모양을 한 꽃잎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처음으로 보는 꽃잎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채석강을 만나러 떠나야만 했다.

들녘에는 마늘밭과 보리밭이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저 멀리 희미한 운무 속에서 불어오는 갯내음을 맡으면서 고향 바닷가의 그리운 모습이 오버랩 된다.

▲ 수 백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꽃잎(좌)/꽃살창 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인의 포근한 미소(우)
내소사에서 약 삼십분을 달리면 채석강을 만날 수 있다. 채석강(彩石江, 전라북도 기념물 제 28호, 면적:12만 7372㎡)은 부안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소로서 격포항 옆에 우뚝 솟은 해안가 닭이봉(달기봉) 아래에 약 1km 정도 펼쳐져 있다.

홍보용 안내판의 유래를 보니,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며 노닐다가 물에 비친 달빛에 반하여 그 달을 잡으려고 물에 뛰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하여 '채석강'이라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격포항 방파제에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방파제 높이도 만만찮아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끝까지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즐겼다. 제법 길다. 방파제 한쪽으로 상인들이 비닐천막을 치고 멍게, 해삼, 낙지, 키조개, 피조개, 개불 등 각종 해산물을 팔고 있다.

▲ 붉은 꽃주머니를 달고 있는 단풍나무
한 접시에 2만원이면 충분하다. 멍게 한 점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 한 잔 들이키는 맛이 일품이다. 살아가는 인생 하루하루가 이런 맛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욕이리라.

방파제 멀리 희미한 안개 속으로 섬이 하나 보여 옆 사람에게 물으니 위도(蝟島)란다. 한때 이슈가 됐던 핵 방폐장 시설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던 그 섬이 위도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희미한 안 개 속 그 섬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떤 섬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갑자기 그 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 채석강
채석강의 넓적한 바위바닥을 걷고 싶다면,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이 날 다행히도 물이 빠져 있어, 유람선이 있는 방파제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갔다. 수 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절벽을 감상하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계속 이어 북쪽 용두산을 돌아 약 2㎞의 해안절벽이 있는데, 그 곳이 적벽강(赤壁江, 전라북도기념물 제29호, 291,042㎡)이다.

물이 빠질 때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천히 걸으면서 넓고 평평한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다 생물들의 움직임을 감상하고, 해식동굴에 들어가 억겁의 세월을 느끼는 재미가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 분명하리라. 특히,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어린 아이들은 조개도 줍고 고동도 주우면서 바닷길을 걷는 기쁨은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채석강의 파도소리
층층이 쌓인 검은 빛깔의 바위절벽 위에 뿌리를 어떻게 내렸는지 장엄하게 서 있는 소나무 몇 그루. 언제나 푸른 바다를 보며, 때로는 태풍과 억센 해풍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서 있는 저 소나무야말로 절개의 상징이 아닐까?

검푸른 바다에서 밀려와 바위를 때리며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는 흰색과 검은색의 색깔 대비가 너무도 선명한 모습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자랑이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채석강의 낙조와 노을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환상적이라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거제도에서 멀리 이곳, 두 번을 방문했지만, 낙조를 보지 못한 탓에 다음에는 꼭 하룻밤을 지내면서 낙조와 노을과 밤바다를 구경할까 하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o. 내소사, 채석강 찾아가는 길
. 내소사
- 서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고창방면 23번국도->15.2km -> 보안사거리(우회전)
->30번국도(10km)->석포리 내소사입구(우회전)->2km->내소사일주문
- 부안읍->30번국도로 직진->변산->격포->진서면 석포리 내소사 입구(좌회전)
->2km->내소사 일주문
- 태인IC -> 30번국도(20.5km) -> 신태인 -> 부안읍

. 채석강
-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30번 국도)→부안→변산해수욕장→격포항
-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영전(30번 국도)→곰소→격포항
- 호남고속도로 태인IC(30번 국도)→부안→격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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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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