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여행] 막바지 가는 가을에 만난 최치원이 올라 시를 짓던 누각, 함양군청 옆 학사루

/함양여행코스/함양군청/함양 가볼만한 곳

 

함양군청 옆에 자리한 학사루.

 

[함양여행] 막바지 가는 가을에 만난 최치원이 올라 시를 짓던 누각, 함양군청 옆 학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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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로 치닫던 11월 초 가을.

함양군청 옆에 자리한 학사루에 들렀습니다.

학사루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이 누각에 올라 시를 자주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사루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군청 앞 큰 나무는 노란 잎을 떨구고 있습니다.

막바지 가는 가을이 아쉽기만 합니다.

 

 

함양 학사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이 누각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운 최치원(857~?)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이곳에 올라 시를 자주 지었기 때문에 학사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청의 객사 자리인 현 함양고등학교 안에 있었던 것을 1979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이전 당시에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92년(숙종 18)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원래 학사루는 객사의 부속 건물로 함양 읍성의 중심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학사루를 제외하고 객사를 비롯한 다른 중요 건물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비교적 큰 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그렇게 화려한 건물은 아니지만, 누의 아래와 위, 지붕의 비례가 대단히 조화롭고 안정되어 있으므로, 조선시대 관청에서 지은 누각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종직(1431~1492)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이곳에 걸려있던 유자광(?-1512)이 쓴 시를 철거한 일이 있는데, 이것이 사적인 원한으로 발전하여 1498년(연산군 4)에 일어난 무오사화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함양여행] 막바지 가는 가을에 만난 최치원이 올라 시를 짓던 누각, 함양군청 옆 학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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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 함양학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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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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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5.11.20 0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지원이 시를 짓던 곳이라고 하니 다시 한번 보게 되네요

  2.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5.11.20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치원,김종직 선생이 함양 관리로 게셨군요^^

  3. Favicon of https://hym9981.tistory.com BlogIcon 마니7373 2015.11.20 0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짙은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글과 사진들
    잘 감상하고 읽고 갑니다~~
    다음주부터는 초겨울이 시작된다고 하니
    건강 관리 잘하세요^^

  4.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5.11.20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을의 정취가 멋지군요^^

  5. Favicon of https://gdlsg.tistory.com BlogIcon 도생 2015.11.20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문에 정진하던 선비의 기상을 느낄 수 있겠네요.
    행복하세요^^

  6. Favicon of https://sjinub15.tistory.com BlogIcon misoyou 2015.11.20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가보고 싶은곳 이네요 ㅎ
    잘보고갑니다

  7. Favicon of https://su1624.tistory.com BlogIcon 도느로 2015.11.20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절과 잘 어울리는 곳을 다녀오셨네요.
    이제 진짜 가을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도 행복하셔요 ^^ㅇ

  8. Favicon of https://meloyou.com BlogIcon 멜로요우 2015.11.20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치원이 시를 지었던 곳이라.. 운치도있고 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네요~


함양여행, 여행하며 공부하는 함양 상림숲 '역사 인물 공원'을 찾아서 1


 


함양여행, 여행하며 공부하는 함양 '역사 인물 공원'을 찾아서

역사 인물 공원기

지리산과 덕유산의 정기를 이어 받아 숭고한 사상과 고귀한 정신으로 다볕골에 빛을 발한 선현들을 영원히 기리고자 고운 선생의 애민정신이 깃든 이곳 상림에 흉상을 세워 만민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옛부터 우리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리어온 영남의 대표적 선비고장으로 오랜 역사를 통하여 훌륭한 인물이 수 없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열한분 최치원, 조승숙, 김종직, 양관, 유호인, 정여창, 노진, 강익, 박지원, 이병헌, 문태서 등을 이곳에 모셔 그분들의 거룩한 발자취를 밝혀 그 얼을 계승코자 새로운 천년을 열어가는 기념사업으로 역사인물공원을 조성하였다.

이곳에 모신 분들은 해외에 국위를 떨치고 깊은 학문을 쌓은 인물과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고 고고한 선비 정신을 실천한 인물,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을 연구 보급하여 나라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 효제충의로 존경을 받는 인물, 혁신적 사상가로서 새로운 사상과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이 고장에 헌신봉사 함으로써 후손들의 사기진작과 긍지를 갖게 한 인물들이다.

나라와 고을을 지키고 빛낸 선현들의 고귀한 얼과 기백을 이어받아 그분들의 생활과 선비정신을 배우고 익혀서 혜안을 열어 나라의 기둥이 되고 빼어난 선조들의 후손으로서 보람된 삶을 누리고자 함이로다.

서기 2001년 11월


고운 최치원

 

고운 최치원[857~925(?)]

신라 최고의 문장가요 한문학의 비조이며 동방 18현인 중의 1인이다. 경조 사량부에서 태어나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관리로 종사하면서 황제의 자금어대를 하사 받았고 '토 황소격문'의 글을 써서 내란을 평정함으로써 공의 문장은 중국에서도 명성이 드높았다. 28세에 귀국하였으나 문란한 국정에 통탄하며 외직을 자청하여 태안정읍 서산을 거쳐 천령(함양)태수로 부임하여 대관림(상림)을 조성하고 풍수해를 막아 이 고장 발전에 기여했고 덕으로써 풍속을 교화하고 치정을 쌓아 후세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계원필경', '사육집', '사산비명', 고은집 등이 있다.


덕곡 조승숙

 

덕곡 조승숙(1357~1418)

고련말의 학자요 충신으로서 두문동 72현 중의 1인이다. 함양 덕곡(덕암) 사람으로 약관에 사미사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는 황제로부터 자금어대를 하사받아 중국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성품이 강직하고 의로운 일에 앞장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아 이성계가 등극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절개를 지켜 관복을 벗고 두문동에 은거했다가 고향으로 내려와서 교수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여 이 고장에 학풍을 일으켰다. 공의 충직함에 태종은 침향궤를 하사했고 성종은 그의 사후에 충절을 기리어 사제문을 내렸으며 후인들은 그의 충의를 흠모하고 있다. 유고로 '덕곡집'이 전한다.

점필재 김종직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조선초 도학의 거유로 영남학파의 종조이다. 밀양에서 태어나 세조 5년 문과에 급제했고 함양군수 재임시는 백성들의 다세(차)를 감면 관영차밭을 조성했으며 매년 짚으로 이던 함양성 나각을 기와로 바꿔 부역을 덜어주고 효제충신을 중시한 학교를 진흥육성시켜서 학문의 꽃을 피워 정여창, 김굉필 같은 도학의 거유와 유호인, 표연말, 조위, 김일손, 남효은 등 문장의 명사를 많이 배출했고 중론을 조화시키고 풍속을 바로잡아 교화에 힘썼다. 흥학육재안민화중을 치정의 제일로 삼고 백성을 편케 했으니, 군민이 그의 청덕과 선정을 양모하여 생사당을 세웠다. 저서로 '점필재집', '청구통아', '당후일기' 등이 있다.

일로당 양관

 

일로당 양관(1437~1507)

조선초기의 학자이며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다. 함양 모간(효리) 출생으로 세조 3년 사마시 동 6년 무과에 급제하여 봉직할 때 정성을 다하고 근면하여 몸가짐이 맑고 삼갔다. 덕천군수로 재직할 때 양민흥학에 힘쓰고 준법정신이 강했으며 청렴하고 검약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임기후 귀로의 행장을 검색하니 두보시집 거문고와 삼베이불 한채 뿐이었다. 임금께 보고되어 청백리안에 기록되고 임금께서 화공을 시켜 공의 행색을 그려 어전벽에 걸어놓고 관리들이 외직으로 부임 할 때마다 그림을 가리키며 공을 본받으라 하였다. 부패한 시대일수록 공의 옥같은 청렴은 더욱 빛나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다.

함양여행, 여행하며 공부하는 함양 상림숲 '역사 인물 공원'을 찾아서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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