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별러 가고 싶었던 섬, 통영 연화도/통영여행/한국의 섬/통영 섬여행지
날지 못한 용머리, 바다에 몸을 맡긴 채 억겁의 세월을 보내며
우리나라 최고의 절경이라 극찬할 정도로 아름다운 용머리 풍경. 이 용머리 풍경을 보러 그 동안 몇 번이나 벼르고 별렀던 연화도 여행이었다.
벼르고 별러 가고 싶었던 섬, 통영 연화도/통영여행/한국의 섬/통영 섬여행지
날지 못한 용머리, 바다에 몸을 맡긴 채 억겁의 세월을 보내며
정말이지,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간 수없이 가 봐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나 실제 상황이 어렵다 보니 갈 수 없었던 섬. 여름이 제 자리를 물려주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 초입에야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대는 9월 첫 주 일요일(8일).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섬 모양이 연꽃처럼 생겼다고 부르는 섬, ‘연화도’. 연화도사가 이 섬에 도를 닦다가 숨져 바다에 수장하자,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났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섬이다. ‘한국의 비경’을 소개하는 방송이나,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 정도는 소개되었을 법도 한 곳. 연화도는 동서로 긴 형태를 이루며, 동남쪽 끝에는 네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네바위는 네 개의 바위로 연결된 섬으로, 그 유명하다는, ‘용’을 닮았다는 ‘용머리’가 있다. 이곳 연화도를 가고 싶었던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용머리를 보기 위해서였던 것.
통영항에서 여행자를 실은 배는 통영바다에 떠 있는 섬과 섬 사이를 뚫고 목적지인 연화도로 향하고 있다. 여행자는 바다를 보며 낭만에 빠져 있는 듯하다.
통영여객선터미널은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갖춰 입은 여행자들로 만원이다. 나처럼 용머리를 보기 위해서 떠나는 것일까. 저마다 무슨 목적으로 섬을 찾는지 궁금할 뿐이다. 섬사람이라 여객선을 한두 번 타본 것은 아니지만, 긴 뱃고동 울음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야릇함이랄까. 그것은 불효자가 몇 십 년 만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고향집을 찾는 심정과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얀 포말은 물살을 만들어 큰 덩치의 배를 밀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통영을 ‘나포리’라 부른다. 그만큼 항구가 아름답다는 것일 게다.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에 쇳덩어리 조선소만 없다면 더욱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늘높이 솟은 요트 마스트는 유럽의 요트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통영을 ‘예향의 도시’라 부른다. 그에 걸 맞는 통영국제음악당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다. 예술은 흔히 곡선처럼 부드러움을 표현한다고는 하지만, 이 건축물만큼은 직선의 강한 이미지가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연화도로 가는 뱃길에서 만나는 통영국제음악당. 뒤로는 미륵산과 케이블카 모습이 보인다.
긴 뱃고동 울음소리... 불효자가 고향 찾는 야릇한 느낌으로 다가 와
언제 날아왔는지 갈매기 떼가 배를 쫓아오고 있다. 여행자가 던져주는 새우깡에 꼬임 당한 갈매기. 저 작은 새우깡을 어떻게 발견하며 달려드는지 신기하다. 새우깡을 쫓는 갈매기 떼는 배가 한 바다를 나갔을 때가 돼서야 멈췄다. 섬과 섬이 어우러진 통영바다.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빗은 조각품과도 같은 섬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여행이다. 어떤 바위섬은 무거운 등대를 제 몸에 얹혀 놓은 채, 밤길을 지나는 배를 인도해 준다. 통영항에서 한 시간 조금 더 달렸을까, 땅에 발을 내려놓을 섬, 연화도가 눈에 들어온다.
연화도에 가는 것은 사람뿐이 아니다. 차량도 뒤섞여 있다. 제마다 갈 길이 바쁜 모양인지, 사람과 차량이 서로 앞서려고 혼잡하다. 이정표도 보지 않은 채, 무리를 이룬 산행 팀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참이나 걸었을 즈음, ‘내가 어느 쪽으로 가지’라는 느낌을 가졌다. 주변 사람에게 묻기도 멋쩍어서 그냥 같이 걷기로 했다. 설마 이 작은 섬에서 “가면 어디로 갈까,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생각에서다.
“내 새끼 어디에 있니? 내 새끼 못 봤어요?”
“내 사진 좀 찍어줘요. 나도 같이 찍어줘.”
“나도 따라 갈게요. 나도 같이 가게 해 줘.”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오르니 이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꽤나 시끄럽기까지 하다. 거의 비명에 가깝도록 질러댄다. 줄에 묶인 염소가 울부짖는 소리를, 나는 이렇게 들었다. 자연 속에 동화되면 동물의 울음소리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느낌이다. 염소에게 답을 하고 있는 나.
“그래. 미안하지만 너 새끼를 못 봤어. 산행도 함께 하고 싶지만, 같이 갈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해 줘. 대신 사진은 한 장 찍어 줄게.”
단체 산행객을 비롯한 많은 여행자가 연화봉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결국 사진 한 장도 찍어 주지 못한 채, 산을 오르고야 말았다. 염소의 울음 섞인 호소를 한참 뒤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늘을 가린 숲이 열리고 저 멀리 연화봉(해발 212.2m) 정상에 우뚝 선 석불상이 보인다. 사방으로 펼쳐진 쪽빛바다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제 모습 그대로 간직한 섬. 저 작은 섬도 자신의 이름을 지니고나 있을라나. 그 누군가 또한, 제 이름을 불러줄지 궁금할 뿐이다.
드디어 봤다. 이것을 보려고 연화도에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것이었을까. 구불구불 굽이치는 용의 용맹처럼, 바다를 향해 틀임을 향한 용의 모습을 본 것이다. 용은 꼬리를 박차며 머리를 치켜든 채, 하늘을 날고 싶은데도 날지 못하는 형국을 하고 있다. 꼬리 쪽이 무거운 탓일까, 결국 날지 못하고 용은 바다에 그대로 누워있다.
“아빠. 텔레비전에서 본 모습 그대로야. 와~. 정말 멋지다.”
“그래, 맞네. 똑 같네, 같아.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네. 여기에 오길 잘했네.”
보덕암 입구에 서면 왼쪽 해수관음상과 용머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 아이와 아빠가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더라도,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용머리의 풍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내가 사는 이 땅에 또 있을까’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 동안 사진촬영에 빠져 있었다.
연화봉 정상아래 사명대사가 수도했던 토굴 터를 돌아 보덕암으로 향했다. 입구에 안내문이 없어 암자의 내력을 알 수 없어 아쉽다. 그런데 암자는 경사진 부지를 잘 활용하여 지어서인지, 뒤 쪽에서 볼 땐 1층이고, 앞쪽에서 보면 5층 콘크리트 건물로 웅장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5층 법당 천수관음상에서 기도를 마쳤다. 보덕암 바로 옆에 자리한 해수관음상에서 보는 용머리가 보다 큰 모습으로 눈에 확 들어온다.
위쪽에서 보면 1층 건물이고, 아래쪽에서 보면 5층 건물인 보덕암. 용머리 쪽에서 보면 자연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작은 섬에 사찰이 두 군데나, 절벽에 선 보덕암 그림 같은 풍경으로
통영에서 연화도를 향할 때 왕복배편을 한꺼번에 끊었다. 나가는 배는 오후 3시 반 배편이다. 점심은 충무김밥으로 배를 채웠다. 아직 시간이 넉넉한지라, 연화봉 정상과 보덕암 갈림길에서 출렁다리까지 가기로 했다. 남은 거리는 2.5km. 9월이라지만 내리쬐는 땡볕은 얼굴과 목 주변 그리고 팔등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이후 피부는 검게 탔고, 며칠 동안 따가운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5층 석탑을 지나니 평평한 숲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섬과 바다 풍경이 참 매력적이다. 온 길을 뒤돌아보니 절벽에 세워진 보덕암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연화봉 정상에 선 석불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용머리 쪽에서 바라 본 보덕암과 연화봉 정상에 자리한 석불상.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작은 언덕을 힘들게 오르락내리락 한 끝자락. 용머리가 바로 눈앞으로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인다. 고공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발아래를 쉽게 볼 수도 없을 것만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출렁다리도 현기증을 느끼기는 마찬가지. 머리가 어지러운 탓으로, 다리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서야만 했다. 한 여행자가 다리 위에서 일부러 다리를 출렁거리게 한다. 모두 놀라워하면서도 즐기는 모습이다. 용머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너럭바위에서 용의 눈과 마주했다. 비상하지 못한 용의 슬퍼하는 눈빛이다. 저 멀리에서는 나를 오라는 듯, 손짓하는 작은 섬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연화도 동두마을 앞에 위치한 출렁다리. 연화봉 정상에서 등산로를 따라 약 3km를 걸어야 만날 수 있다.
힘든 네 시간의 산길 걸음을 끝내고, 동두마을 입구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본촌마을까지 걸었다. 마을 뒤편에 자리한 연화사에도 잠시 들렀다. 작은 섬 안에 제법 규모를 갖춘 보덕암과 연화사란 사찰이 두 군데나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연화사는 400여 년 전 연화도사, 사명대사, 자운선사 등이 수행했다는 산자락에, 1998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산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물이 그리 넉넉지 않은 섬에 자리한 절이라서 그럴까. 여느 절처럼 흐르는 샘물은 없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 한 컵으로 목을 축여야만 했다. 9월 따가운 햇살을 식혀주는 맛있는 물이었다.
연화도에는 연화사와 보덕암 등 두 곳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연화사 천왕문.
선창가엔 육지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나도 저 행렬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멀어지는 섬, 연화도. 언제 날아왔는지 아침에 만난 그 갈매기가 나를 반긴다. 섬과 섬 사이로 빠져 나가는 여객선은 통영으로 향하는데.
연화도 여행을 마치고 통영항으로 가기 위해 줄 선 여행자들. 저 많은 여행자는 연화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 속 깊이 담아 갈 것이리라.
이날 찍은 사진만 해도 1419장. 그런데 모두 엉망이 돼 버렸다. 전날 야간촬영으로 사진감도(ISO)를 ‘2000’으로 조정해 놓은 줄도 모르고 촬영하다 보니 입자가 상당히 거칠게 나온 것. 풀 프레임(1:1)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용으로는 한 장도 쓰지 못함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쩌면 이 해프닝이 다음에 다시 연화도를 찾아 가게 할지도 모를 일이 아닐까 싶다. 벼르고 별러 가고 싶었던 섬, 연화도. 연화도 여행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리라.
□ 연화도여행 안내
<여객선 시간 및 요금표>
. 통영 ⇒ 연화도(06:30, 09:30, 11:00, 13:00, 15:00/ 요금 8,300원)
. 연화도 ⇒ 통영(08:20, 11:45, 13:20, 15:30, 17:00/ 요금 8,300원)
<안내전화>
. 통영여객터미널 1666-0960/ 통영사무실 055-641-8181/ 연화사 055-641-3670
연화도매표소 055-641-6184/ 보덕암 055-649-3211
<소요시간>
. 통영여객터미널 - 연화도(차도선 이용, 1시간 10분 정도)
. 연화도여객선터미널 - 연화사 - 석탑 - 출렁다리(1시간 30분) - 연화도여객선터미널(2시간)
. 연화도여객선터미널 - 연화봉정상(50분) - 보덕암 - 출렁다리(3시간 30분) - 연화도여객선터미널(4시간)
<이동거리>
. 연화도 등산로입구 - 연화봉(1.2km) - 사명대사토굴터(1.7km) - 보덕암․연화사 갈림길(2.2km) - 출렁다리(4.7km) - 연화사입구(6.7km) - 연화도여객선터미널(7.1km)
. 연화도여객선터미널 - 연화사입구(430m) - 보덕암․연화사 갈림길(1160m) - 보덕암(14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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