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기억의 당등산과 아주장터
  
▲ 거리행진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마치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먼 산이 누렇다. 가까이엔 보이지 않는 황사가 먼 산에는 누런 모습으로 시야를 흐리게 한 5월의 첫째 날. 경남 거제시 아주동 '아주3·1운동기념탑' 앞에서는 92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독립만세'라는 함성이 퍼져나갔다. 700여 명의 주민들이 손에 국기와 만장을 들고 그날의 만세운동을 재연했고, 그날의 울분을 함성으로 토해냈다. 영문도 모르는 어린아이도 엄마의 손을 잡고 거리행진에 참가했다. 

  
▲ 기념사 '아주 3.1운동 기념탑' 앞에서 거제시 권민호 시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기념사

거제도에서 3·1운동 시발은 1919년 기미년 음력 4월 3일. 이운면 아양리(현재 대우조선소) 바닷가 당등산에서 거제도내의 지식인과 개화문화를 선호하는 신지식인, 지방부호의 협력아래 피 끓는 젊은 청년들이 앞장섰다. 이 운동에 주동이 된 인물은 이공수, 윤택근, 이주근, 이인수, 이주무, 윤사인 등이다. 

(중략) 4월 3일 거사를 위해 2일 밤 이주근, 이인수 등은 밤을 이용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4월 3일 당등산에서 대한독립을 위한 모임을 갖는다는 격문을 마을 곳곳에 부착하였다. 전단을 본 애국지사들은 아침부터 한 사람, 두 사람 은밀하게 모여 들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울분을 터뜨렸고 그리고 모두 아주장터로 내려 왔다. 그 날이 아주장날이라 많은 군중들이 합세하여 만세를 불렀다. 그 소리는 민족의 한으로 온 장터가 찢어질 듯 한 소리로 터져 나왔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헌병들은 미친 듯 총을 쏘며 달려왔다.

- <거제시지> 상권 570~571쪽 

  
▲ 고향 대우조선해양이 들어 서기 전 아양리 일대. 왼쪽 산 아래 마을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오른쪽 희미한 부분이 독립운동을 의논했던 당등산이고 아래로는 아주장터로 이어진다.
당등산

거제도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아양리는 내가 태어난 곳. 지금은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자리하고 있지만, 어릴 적 그땐 초가집에 논밭과 어촌으로 이루어진 한적한 시골이었을 뿐. 당등산은 해발 72m의 야트막한 산으로 초등학교 시절 소풍놀이 단골 장소였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일까,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아서일까. 그땐 독립운동을 의논했던 장소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에 새삼 옛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 만장 '대한독립만세' 깃발
대한독립만세

  
▲ 만세삼창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을 마치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만세삼창

아주장터는 약간 경사진 길 언덕에 자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었다. 비가 올 때면, 황톳길이라 미끄럽기 그지없었지만, 우산도 없이 장터를 배회하곤 했다. 배고팠던 시절 먹을 거라도 하나 없을까 하는 심정으로. 이 장터 역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오고가며 지났건만,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내왔다는 사실에 가슴만 여밀 뿐이다.  

1974년 8월 25일 일요일. 정든 고향집을 버리고 새롭게 조성한 동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조선소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4개 마을 385세대 2천여 명 주민이 원치 않은 이주를 해야만 했다. 초가집에서 슬래브벽돌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당시 촌에서의 가옥형태는 파격적이었고, 실내도 초가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그러나 집만 반듯하면 뭐하랴. 궁핍한 삶은 그대로였다. 어렵게 보내야만 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92년 만에 열리는 '대한독립만세' 운동의 역사를 통하여 뜨거운 가슴에서 살아나고 있다. 

  
▲ 거리행진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가 열린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을 마치자 대형 태극기는 참가자들을 인도한다. 아주3·1운동기념탑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아주초등학교. 내가 졸업한 이 학교도 조선소 건설 때문에 새로운 학교로 옮겨야만 했다. 학교를 사이에 둔 좁은 골목길은 그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후손과 시민들로 꽉 찼다. 가며 가며 만세삼창이 터지고 그 함성은 골목길을 휘돌아 귓가를 때린다. 

  
▲ 거리행진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마치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것은 대우조선해양 골리앗크레인. 조선소가 들어서기 전 당등산이 저 위치에 있었으며 높이도 비슷하다.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가까이로 대우조선 골리앗크레인이 우뚝 서 있다. 아마 조선소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크레인 높이의 꼭 그 자리에 독립운동의 현장인 당등산이 있었을 터. 태극기 휘날리며 행진하는 시민들 뒤로 보이는 조선소는 내게 많은 기억을 쏟아내게 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소를 몰고 들로 산으로 꼴풀을 먹이러 다니는 모습에서부터, 아이보다 큰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를 하던 모습까지. 그것만도 아니다. 친구들과 집단으로 싸워 코가 깨지고 피를 흘린 일, 남의 집 달걀을 훔쳐 깨서 먹던 일 등. 어릴 적 웬만한 사람이면 겪었을 법한 일들이 태극기 너머 크레인을 보자 스멀스멀 기억난다. 

  
▲ 거리행진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마치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20여 분을 걸어 아주운동장에 도착했다. 한쪽 구석, 노란 제복에 총을 든 일본헌병이 무리지어 있다. 성난 민초들은 헌병을 향해 두려움도 없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성난 민초들의 울음소리를 타고 크게 흔들린다. 이를 본, 지휘관으로 보이는 헌병이 소리치자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댄다. 

민초는 쓰러지고, 탄식소리도 고함소리도 함께 쓰러져버린다. 보다 못한 다른 민초들이 들고 일어난다. 돌을 던지고 성난 목소리를 뱉어낸다. 겁에 질린 헌병들은 줄행랑을 놓기에 바쁘다. 민초들은 다시 환호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함성은 옥녀봉 줄기를 타고 거제도 전역으로 퍼져 나가 민중을 자극할 것이다. 

  
▲ 일본헌병 아주운동장에서 ‘아주 5. 2 독립만세운동’ 당시 민중을 향해 일본헌병들이 총을 쓰는 장면을 재현하고 있으며, 성난 민중들이 던지는 돌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일본헌병

한바탕 퍼포먼스가 끝났다. 이어 육중한 진혼곡이 울린다. 나라 잃은 서러움과 한 맺힌 가슴은 바람을 타고 순백의 저고리에 묻혀 애처로운 흐느적거림으로 내게 다가온다. 진혼무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 일제가 판을 칠 때, 백성들은 새하얀 저고리처럼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주5·2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로 열린 이날 행사는 내겐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재연하여 후세에 정확히 알리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그래서 역사를 보는 눈이 중요하다. 그 눈은 동서양이 다르지만,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 

중국 북송대의 역사가 사마광(司馬光)은 역사를 '거울'이라 하였고, 영국의 역사가 카(E. H. Carr)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 표현했다. 일본에 침탈당한 시절 역사의 한 장면을 92년이 지난 오늘에야 보았다. 어린 시절 당등산과 아주장터가 있던 터에서. 아직도 일본은 한국의 역사를 조작한다. 황사 바람을 맞으면서도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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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 | 아주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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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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