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불며 공사판 작업반장 두 달을 휘저으며
  
▲ 구조라쉼터 살기 좋은 마을 구조라 쉼터 표지석
구조라쉼터

한 여름인 7~8월 땡볕보다 더 뜨겁고 덥게 느껴지는 6월. 공공근로 하시는 어르신 50여 명과 함께 작은 공원 만들기에 나섰다. 구조라 마을 한 공터에서 공사는 시작되었다. 함께한 사람은 어머니보다 몇 살 아래가 대부분이었지만, 몇 살 위도 몇 분 있었다.  

오전이라지만 땡볕이다. 이미 몸 전체는 땀범벅인 상태로 옷을 입고 물에 들어간 기분이다. 팔뚝은 열을 받아 빨갛게 익은지 오래고, 검은색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밀짚모자 아래로 흐르는 땀은 눈에 들어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이마에 흐른 땀이 콧등성이를 지나 입에 들어온다. 짭짤하다. 더위와의 한 판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노루오줌 꽃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노루오줌 야생화.
노루오줌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공터에 작은 공원을 만들기로 마을 이장과 의견이 오갔다. 관광객들에게는 쉼터를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자연 학습장을 마련하자는 것. 잡초가 무성한 땅은 중장비가 동원됐다. 인력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땅을 고르고 정자를 짓기 시작했다. 목수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래야, 통나무를 옮겨주고, 들어 받쳐주는 것이 전부. 공공근로 하시는 분 중 다행히 목수가 있어 정자 만들기는 잘 마무리 되었다. 

공원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로부터 설계도를 지원 받은 것도 아니었다. 머리 속 느낌으로 백지에 대충 그림을 그렸다. 엉성한 설계도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 같은 설계도에 무슨 공원이 탄생할까 하는 의구심은 나뿐만 아니라, 동참하는 분들도 같았을 것이리라. 

  
▲ 꽃동산 두 달여 만에 마무리를 한 구조라 마을 꽃 동산. 그네, 돌탑, 파고라가 비치되고, 화려한 꽃과 야자수가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돌탑

공원의 주제는 '살기 좋은 마을 구조라 쉼터'로 정했다. 계절별로 각가지 야생화가 피고, 연못에는 수생식물이 꽃을 피우게 할 계획이다. 장독대를 만들어 옛 추억을 살리고, 투호놀이와 씨름을 할 수 있는 민속놀이 마당도 만들기로 했다. 거기에다 운치 있는 그네와, 소망을 빌 수 있는 작은 돌탑 하나를 만들어 마무리하기로. 

  
▲ 장독대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장독대.
장독대

땀 흘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공원 형태는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야트막한 동산을 만들고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돌 대신 나무토막으로 경계를 세웠다. 나무토막은 인근 공사장에서 나온 폐 목재를 직접 전기톱으로 잘랐다. 30㎝ 짜리 1천여 개를 자르는 동안 톱날도 몇 개나 갈아치웠다. 어르신들이 자르는 걸 보고, 직접 해 보니 쉬운 게 아니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오전 10시 쉬는 시간. 쉬려고 땡볕을 피해 이리저리 분주하다. 덥고 피곤하다 보니 체면 차릴 형편도 아니다. 팔자로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 사람, 냉커피 한 잔에 피로를 푸는 사람, 등 뒤로 흘러내리는 땀을 서로 닦아 주는 사람, 쉬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10분간 휴식을 마치고, 작업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자, 들은 척, 만 척 한다. 괜스레 못 들은 척 하고, 딴청도 피운다. 난들 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작업반장 지독하다고 욕(?)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고 마냥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빨리빨리 움직이라는 고함소리가 이어진다. 욕 듣기를 자초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 흙나르기 공원 만들기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흙을 나르고 있다.
흙나르기

흙을 퍼 날라 꽃동산을 만드는 작업은 1960년대 밀가루 배급 공사를 연상케 한다. 작은 대야에 흙을 담아 옆 사람에게 건네주어 한 군데 작은 동산을 만든다. 간격이 조금 벌어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금 앞당겨 오라고 야단이다. 고생 끝에 터 고르기 작업은 마칠 수 있었다. 

  
▲ 장독대 붉은 벽돌로 장독대 담장을 쌓고 있는 필자.
장독대

남자들은 빨간 벽돌로 장독대 담장을 쌓고 있다. 나이 든 분들이고, 경험이 없는 터라, 작업 진도는 전문 인력보다 두 배 이상 든다. 줄을 퉁겨 놓고 쌓았지만 한 줄을 다 쌓고 보면 삐딱하다. 다시 뜯어 새롭게 쌓아 보지만 별반 나아 보이지 않는다. 담장 위는 짚으로 엮은 용마루로 마무리다. 요즘 짚으로 용마루를 엮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현실에서, 그래도 용마루 엮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제법 폼이 나고, 운치도 있어 보인다. 고향 맛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다. 

  
▲ 연못 공원에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수련과 부레옥잠을 심었다.
연못

작은 연못 만들기는 중장비가 도왔다. 자연을 닮은 모양을 내기 위해 큰 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맞추기를 반복했다. 밑바닥은 물이 새지 않게 하기 위해 시멘트 작업이 마무리다. 호스를 연결하고 물을 가둬 하루가 지나니 물은 다 새어 버리고 없다. 다시 시멘트로 보완작업을 거쳐 연못이 완성됐다. 이제 수생식물만 심으면 작은 연못 하나가 탄생되리라. 

한 달여 지나니 공원 조성을 위한 기초 작업은 얼추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야생화는 아침 일찍 멀리 고창에서 달려 도착했다. 사계절 피는 야생화를 골고루 선택한 100여 종의 야생화.  

평소 야생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행지를 가면 꼭 야생화 공원을 빼 놓지 않고 둘러본다. 몇 년 전, 고창들꽃학습원에 들러 야생화의 매력에 빠졌다. 그런 인연에 고창 야생화를 들여오게 된 것이다. 군데군데 심을 위치를 정해주며 심는 요령도 설명했다. 포기당 몇 백 원에서부터 몇 천 원에 이르고, 수련은 만 원이 넘기에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 야자수 공원 옆으로 식재된 야자수 종류의 나무. 외도보타니아에서 다섯 그루를 기증했다.
야자수

오뉴월 땡볕에 땀 흘린 두 달의 시간이 지났다. 무성하게 잡초난 빈 공터는 화장한 여자 얼굴보다 더 예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모두가 벅찬 기쁨을 누리면서 서로 토닥거리며 격려했다. 공원 입구에는 기념으로 큰 바위에 '살기 좋은 마을 구조라 쉼터'라는 표지석도 세웠다. 돌탑 앞에서 기념촬영도 마쳤다. 사람 힘이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공원을 찾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독대에 참새가 노닐고, 연못에는 개구리 알이 보였다. 평소 안면이 있는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한 인부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 올챙이 들판이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공원을 만들고 난 후 고인 물을 찾아온 개구리가 알을 낳고 올챙이로 변하고 있다.
올챙이

"한 달 전엔 개구리 울음소리를 못 들었는데, 최근 며칠은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못 잘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동네 한 복판에서 보기 드문 참새가 날아와 공원을 휘 젖고 다니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여기에 참새가 날아 올 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참새는 장독대 볏짚에 달려있는 나락 먹이 때문에 날아왔고, 개구리 알은 물을 찾아온 개구리가 낳았던 것이다. 그 작은 참새 눈으로 나락을 찾아 날아들고, 들판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고인 물을 찾아 개구리가 찾아 왔을까. 동물이 살아가는 자연의 법칙을 또 한번 배우게 되었다. 

  
▲ 기념촬영 두 달여 동안 고생을 함께한 어머니 같으신 분들과 공사를 마무리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야생화공원

거제도 최고를 자랑하는 구조라해수욕장이 개장하는 날, 마을 이장으로부터 개장식에 참석하라는 전화가 왔다. 왜 그러냐 하니 공원 조성에 앞장 선 공로로 감사패를 주겠다는 것. 못 이기는 척 하고, 받았지만 쑥스럽다는 생각이다. 이 감사패는 어머니 연배와 같은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었기에. 6월 땡볕 두 달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작업반장 호루라기 소리에 깜짝 놀라고, 잔소리(?) 들으며 묵묵히 일해 주신 거제시 일운면 어르신들. 이 자리를 빌려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씀을 드리면서,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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