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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달마도] 퇴직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달마그림에 빠져 살고 싶다/달마대사 그림/달마대사의 생애/달마대사 어록

[달마도] 퇴직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달마그림에 빠져 살고 싶다

/달마대사 그림/달마대사의 생애/달마대사 어록


2014년 10월, 대구 팔공산 갓바위 입구에서 구입한 달마도.

 

[달마도] 퇴직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달마그림에 빠져 살고 싶다

/달마대사 그림/달마대사의 생애/달마대사 어록

 

퇴직하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이루고 싶다."

"귀촌하여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직장생활의 경험을 살려 사회봉사활동으로 나 자신의 활력소를 되찾고 싶다."

"제2의 직장을 찾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경제활동에 참여하겠다."

"적성에 맞는 취미생활로 노후를 즐기고 싶다."

 

퇴직을 앞둔 사람들이 '제2의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앞에서 언급한 말은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모두 맞는 말입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퇴직 후 삶을 흔히,'제2의 인생'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제2의 인생은 어떤 삶이어할까요?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퇴직을 앞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실시합니다.

'미래설계'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담은 과목으로 편성하고 있습니다.

강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노후자금관리 부부관계 ③ 소일거리 ④ 건강문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순위 변동은 있겠지만, 위 네 가지 모두 중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역시 퇴직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그림을 그립니다.

위 네 가지 중 제1로 삼는 것이 있다면 '소일거리'라는 생각입니다.

소일거리라면 돈을 버는 것에서부터, 집안일과 취미생활 등 다양합니다.

이 중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취미생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긴 휴가로 '달마도 그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책도 사고 인터넷 강의도 신청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첫 그림을 그려 완성된 작품(?)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괴망측한 그림은 "이 세상에 귀신이 산다"면, "이 그림이야말로 귀신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며칠 뒤 다시 그렸습니다.

그런데 앞서 그린 그림과는 달라진 달마도가 탄생하였습니다.

잘 아는 사람 몇 명에게 보내 비평을 부탁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많이 발전했다'면서 "꾸준히 하면 달마도 대가가 되겠다"고 격려의 말까지 보탰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달마도 대가가 되겠다"는 이 말을 듣고 싶었는지 나 자신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달마도 대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근처에는 꼭 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퇴직 1년 후 나의 모습을 그립니다.

달마도 달인으로 태어나 작은 전시회를 여는 것이 꿈입니다.

1년 후, 달마도 그리기가 나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켜 놓을지, 어떤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할지, 나 자신도 궁금합니다.

그때까지 달마도 그리기에 정진할 것입니다.


2016년 2월 5일, 달마도를 처음으로 그리다.


2016년 2월 6일 그림.



위 두 장은 2016년 2월 8일 설날에 그린 달마도.

 

달마(達摩)

 

중국남북조 시대의 선승으로 생멸연대는 ?-528로 정확하지 않다. 서천 28조의 제28조이며 중국 선종의 초조다. 그는 파사국 또는 향리국 국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호(諡號)는 원각대사(圓覺大師)이다. 대승에 뜻을 두고 명상했으며 외국에 포교하기 위해서 남중국에 왔다. 그 후 북쪽의 위나라로 가서 일이 잘되어 여러 가지 선()의 가르침을 폈다. 특히 나이 어린 도육(道育)과 혜가(慧可)라는 두 사람의 승려가 그를 받들면서 4-5년에 걸쳐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수행은 벽관(壁觀 ; 벽을 향해서 좌선하는 것)으로 마음이 본래부터 깨끗한 도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낙양의 동남쪽 50km 정도 떨어진 숭산의 소림사에서 면벽하고 9년 동안 좌선했다는 일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달마와 양무제와의 회견은 후대의 문헌에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때 무제가 묻고 달마가 대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절대적인 진리의 궁극은 어떠한 것입니까?”(如何是聖諦第一義).

텅 비어서 성스러움도 없습니다.”(廓然無聖).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對朕者誰).

알지 못합니다.”(不識).

 

이 대화에서 달마는 무제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다고 한다. 또 무제가 자신이 절을 짓고 경전을 사경하고 스님을 제도한 공적을 들며 공덕이 어느 정도 되느냐는 물음에, “고작해야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을 정도입니다.”라고 몹시 꾸짖었다는 야기도 전한다.

 

선종 계통에서는 혜가스님이 달마로부터 법을 배우기 위해 한쪽 팔을 잘라 바쳤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아무튼 달마로부터 혜가(慧可)에게 전해진 선()의 가르침이 당나라시대 특히 7세기경에 선종으로 꽃피웠고, 여러 뛰어난 선승들을 배출해 한국.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달마의 생애

 

설화 중심으로 중국에 선종을 전한 인물로 알려지는 초조 달마대사.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여 어느 것이 진실인지 확실치 않다. 여기에서는 널리 알려진 여러 설화를 통해 달마의 일생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 내용들은 거의 설화 및 에피소드에 기초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껏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초조 달마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달마는 누구인가? 보리달마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성을 세테이리(刹帝利)라고 했다. , 달마는 인도가 아닌 페르시아 출신이라고도 하며, 찰제리(한글표기, 刹帝利)라고 하는 것은 성이 아니라 인도 4성 계급 중에 크샤트리아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어느 날 반야다라라고 하는 고승이 널리 가르침을 베푼다는 말을 듣고 국왕은 그를 왕궁으로 초청하였다. 국왕은 반야다라의 가르침을 받고는 왕에게 광채가 나는 보석을 공양하고 신자가 되기로 하였다.

 

한편 왕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월정다라라고 불렀으며, 염불삼매의 행을 닦았다. 둘째는 공덕다라라고 하는데,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셋째는 보리다라라고 불렀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데 뛰어났다.

 

이에 반야다라는 세 왕자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이 보석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겠습니까?”

월정다라가 대답하였다.

이 보석은 우리나라의 보물입니다. 이 세상에 더 훌륭한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공덕다라 역시 비슷한 말을 하였다.

 

그런데 보리다라가 말하길,

 

스승님, 이런 보석은 감히 최상의 보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보물은 가지고 있는 사람만을 기쁘게 할 뿐 입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보물은 여러 가지 법 중에서 부처의 가르침이고, 사람이 지닌 뛰어난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는 지혜가 가장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지혜 중에서는 마음의 지혜가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보물이 가장 훌륭할 것입니다.”

 

반야다라는 그가 큰 그릇 임을 알고 크게 칭찬하였다.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10여 년 전, 해인사 입구에서 구입한 달마도.

 

[달마도] 퇴직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달마그림에 빠져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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