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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나의 부처님] 나는 내 몸의 관리자일 뿐입니다, 월호스님/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나는 내 몸의 관리자일 뿐입니다, 월호스님/오늘의 법문



나는 내 몸의 관리자일 뿐입니다/ 월호스님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요?

무엇보다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애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 및 과거에 대한 회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애착과 회한은 어디에서 생겨날까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됩니다.

몸에 내가 있다는 것, 한 마디로 '나의 몸'이라는 소유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몸은 본래 내 것이 아니지요.

진정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달리, 늙거나 병들고, 죽어가는 이것이 어찌 내 소유란 말입니까?

이 몸뚱이가 내 소유라는 생각은 한 마디로 착각이었을 뿐입니다.


나는 몸의 관리자였을 뿐입니다.

임시로 관리를 맡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가꾸어주느라 바쁜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한 마디로 몸뚱이 시 봉하기에 바빠 '참 나'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토록 애서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좋은 모습 보여주고, 좋은 소리 들려주느라 최선을 다하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관리시효가 다해가는 것뿐입니다.

얼마나 개운한 일입니까?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놓아두고 떠나라 한다면 무척 서운할 것입니다.

당연히 미련이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관리하고 있다가, 그것을 놓아두고 떠나라 한다면 그다지 서운할 까닭이 없습니다.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소유자에게는 애착이 있기 때문에 미련이 남습니다.

하지만 관리자에게는 애착이 없으므로 미련이 없습니다.

떠날 때는 그냥 떠날 뿐!

오히려 홀가분한 심정으로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몸뚱이뿐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집, 재물, 심지어는 자신의 마음조차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관리했을 뿐입니다.

내생에는 또 다시 어떤 인연이나 한스러운 사연에 대해서도 너무 애달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못다 한 인연이란 없습니다.

억울한 죽음이란 없다는 말입니다.

이 우주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인과의 법칙에 오류는 없습니다.

이른바 금생과의 연이 다 했으니 갔을 뿐입니다.

다만 지어놓은 업에 따라 또 다른 몸을 받으러 떠난 것뿐입니다.

영가를 위해 베풀어주는 말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습니다.


진실한 모습은 이름을 떠났으며, 

본마음 참 나는 자취가 없지만, 

연 따라 숨거나 나타나는 것이 

마치 거울에 비춰진 형상과 같으며, 

업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마치 두레박줄이 오르고 내림과 같아서, 

오묘한 변화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實相離名 法身無跡 從緣隱現 若鏡像之有無 隨業昇沈 如井輪之高下 妙變莫測 幻來何難)


참 나는 지금의 이름이 아닙니다.

금생에서의 이름일 뿐, 전생에서는 다른 이름이었고, 내생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의 이름이란 말입니까?

참 나는 자취도 없습니다.

금생에서의 몸이었을 뿐, 전생에서는 다른 몸이었고, 내생에는 또 다른 몸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의 진짜 몸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나는 내 몸의 관리자일 뿐입니다/ 월호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