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

[사는이야기] 누구를 이렇게 저주한 적이 없었는데... 솟아나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사는 이야기]누구를 이렇게 저주한 적이 없었는데... 솟아나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헌법재판소 TV장면.


"권총이 있다면 차마 사람은 쏠 수는 없고, 허공에라도 한 방 쏘고 싶은 심정이 든다네."


지인과 술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내 뱉은 말인데, 뱉고 나서 보니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추가로 이어지는 말 한 마디에 지인들도 거의 같은 심정이라는 것과 내 말에 동조한다는 사실에 놀랐을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총을 팔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만약 미국이나 다른 나라처럼 총기 소지가 쉽다면,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움에 빠질 게 뻔하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퍼 부은 적이 없다. 나를 직접 공격하거나 나의 목숨을 위협한 것도 아니다. 내 가족과 가족 주변을 음해하거나 다치게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분노가 일어나고, 저주를 퍼붓게 되는지?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크게 느껴지는 '다름'은 바로 '양심'을 가졌다는 것. 양심이란 무엇인가,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를 말한다. 도덕과 법에 어긋나는 죄를 지었으면 그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양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양심을 조금 가진 만큼이라도 잘못을 인정할 것으로 본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기본 양심이다. 그런데 지금 온 국민이 분노하는 혼란스러운 나라의 상황에서, 죄를 저지른 죄인들의 양심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작금의 이 사회에는 '뻔뻔함'이 넘쳐난다. 그 뻔뻔함은 지위가 높을수록 도를 넘는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을까.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심성이 잘못된 탓도 크겠지만, 무엇보다도 사회 시스템이 정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큰 요인이라는 생각이다. 남을 밟고 넘어가야 내가 살 수 있고, 온갖 감언이설로 집단을 현혹하고, 상사의 불의한 지시에도 자신의 안위와 성공을 위해 무조건 충성하는 자세가 이런 사태를 낳지 않았을까.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옛 말이 있다. 말하자면, "아는 사람이 잘 되면 질투가 나서 그 꼴을 못 본다"는 뜻일 게다. 이것은 인간의 저급한 양심의 일종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속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나 자신도 이에 속하지 않는다고 부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온 국민을 분노하는 이번 스캔들은 사촌이 논을 사서 배가 아픈 것과 다른 상황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엄밀히 말해서 '나와 나의 가족'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거나 피해를 준 것이 아님에도, 왜 이렇게 분노가 솟아날까. 그것은 '양심'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자들, 그 중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고위공직자의 양심 없는 태도가 분노를 표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대를 접었다. 내가 저주를 퍼 붓는 이런 사람들에게 양심이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얼마 전까지는 죄지은 자들이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국민에게 용서받는 심정으로 순수하게 자백하는 양심은 못되더라도, 특검의 조사가 진행되고 빼도 박지도 못할 증거 앞에서는 일말의 양심을 기대했던 터다. 그런데 이제는 '죄지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이 글을 '쓸까 말까'를 많이도 망설였다. 내가 누구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솟아나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당연히 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한 사회가 유지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예외일 수는 없다. 


분노를 참지 못해 죄지은 자를 무기나 다른 수단으로 위협해서도 안 된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따를 수밖에 없다. 한 번 상상해 보라. 총기를 자유롭게 가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총기를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그래도 낫다. 죄지은 자들에 대해 위해를 가하기보단, 차라리 혼자서 분노하고 저주하는 것이 사회 안전에도 필요하기에. 이 글을 쓰면서 남을 저주한데 대해 참회의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