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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 월호스님/ 오늘의 법문

지리산 화엄사.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 월호스님

 

사고나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 급작스런 죽음을 당하게 되면, 영혼은 그 자리를 맴돈다고 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특별한 애착을 해결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서 떠도는 영혼, 즉 중음신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 <식스 센스>에서 콜은 말합니다.

“제 비밀을 말씀 드릴까요?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꿈속에서?”

“아뇨.”

“깨어 있을 때?”

“예.”

“무덤이나 관에 누운 사람들이니?”

“아뇨, 보통사람들처럼 걸어 다녀요.. 근데 서로를 보진 못해요.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거든요. 자기들이 죽었다는 것도 몰라요.”

“자주 보이니?”

“항상요. 사방에 있는 걸요.”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의 눈은 뜨여 있고 귀는 항상 열려 있지만 자신이 관심 두는 것만 보고 들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똑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식물학자는 풀과 나무를 유심히 볼 것이며, 조류학자는 새의 울음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욕심이 외치는 소리에만 귀 기울인 채, 다른 사람의 감정과 욕망을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봅니다.

우리의 삶은 여러 주인공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연속극입니다.

모두 자신의 대사만 하겠다고 외치거나, 자신만 TV에 나오겠다고 안간힘을 쓴다면 그 연속극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요구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십시오.

그 소리들이 어우러진다면 우리가 있는 이곳이 극락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사람들/ 월호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