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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거제도

거제도, 작은 암자 이진암과 영은사에서 보낸 휴일 오후


거제도, 작은 암자 이진암과 영은사에서 보낸 휴일 오후

거제도, 거제도 명산 옥녀봉 아래 조용히 앉은 이진암

지난 토, 일요일(14~15일). 쉬는 날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옴짝달싹하지 않고 푹 쉬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틀 동안 거실과 방을 오가는 게 전부. 나로서는 그간 쉽게 있어 왔던 일은 아니다. 가 보지 않은 곳으로,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내게 있어서는 분명 뜻밖의 일이었기에.

거제도, 이진암 입구 돌담에 앉은 부처. 아기부처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책을 읽으며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째 되는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 병(?)이 재발되는 기운에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사진 찍기에도 별로 좋은 조건도 아닌, 우중충한 날씨다. 집에서 가까운 작은 암자인 '이진암'으로 향했다. 거제도 명산에 속하는 옥녀봉 아래에 조용히 앉은 이진암. 입구에 들어서자, 청량하게 들려오는 독경소리. 비록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지만, 겨울 찬바람 탓인지 귓전에는 맑은 소리로 부딪친다.

거제도 명산 옥녀봉 아래 조용히 앉은 이진암. 이곳에서는 푸른 거제도 쪽빛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잎이 말란 채 붙어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꽁꽁 얼어버린 작은 연못, 처마 밑 바람에 실려 뎅그렁거리는 풍경. 자연의 이런 모습이 외출 나온 나의 말벗 친구인 셈. 산 정상으로 오르는 들머리 작은 계곡에는 실 같은 물이 졸졸 흐른다. 깨끗하고 맑은 물이라, 두 손으로 한 모금을 떠 마셨다. 시원함이 뼛속까지 전해오는 느낌이다. 어릴 때 소를 몰고 풀을 먹이려 다닐 적, 이런 계곡물을 마시면서 배고픔을 달랬던 아스라한 기억이 떠오른다.

거제도, 꽁꽁 얼어버린 이진암의 작은 연못. 얼음 아래로는 뭇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조용한 작은 산사, 이진암을 뒤로하고 차를 다시 몰았다. 약 3km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작은 절 영은사를 찾았다. 추운 날씨 탓인지 덩그러니 절집만 절을 지키고 있다. 앞서 찾은 암자보다는 규모가 크다. 웅장하게 느껴지는 대웅전을 비롯한 다른 전각들이 절 같은 느낌을 물씬 묻어나게 한다.

거제도 일운면에 있는 영은사

한 동안 절 터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적막감을 깨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외국인 부부가 절 마당에 들어섰던 것. 혼자보다는 여럿이 좋겠다는 생각에,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좋은 느낌의 인사가 돌아온다. 평소, 절에 관한 일반적 상식보다는 조금 나은 절 공부를 하는 터라,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서툰 영어지만, 그래도 알아듣는 눈치라 기분이 좋아진다. 한동안 시간을 같이 했던, 외국인 부부는 생각보다 많은 불교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거제도 일운면에 있는 영은사 용왕각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술 한 잔 생각나 아는 형한테 전화를 하려니, 먼저 벨이 울린다. 술이나 같이 하자면서 별일 없으면 집에 오라는 것. 늦은 오후, 빈속에 마시는 술은 술꾼이 아니면 그 기분과 느낌을 모를 터. 수족관에 참돔 몇 마리를 잡아 싱싱한 회를 만들었다. 작은 술상이 차려지고, 어느 새 술 한 병을 비웠다. 이어 두 병째 병을 가져오는데, 뭐라고 말을 하는 형님.

술을 마시다 우연히 발견한 술병마다 다른 량의 술이 채워진 술병. 대단한 생활의 발견이다.

"어~. 병이 이상하네. 술이 어째 저리 목까지 가득 찼노?"
"정말 그러네요. 형수님, 다른 병도 좀 가져와 보세요."

큰 소리에 놀란 형수님은 술 몇 병을 더 가져왔다. 테이블 위에 술병을 가지런히 놓고 서로 비교해 보니, 놀랍게도 술병에 찬 술의 량이 각기 달랐던 것. 몇 십 년 동안 술을 마셨지만, 이렇게 술의 량이 다를 줄은 몰랐다. 크게 차이 나는 량은 아니지만, 어떻게 병마다 이렇게 다른 량의 술이 담길 수 있는 것인지.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대단한 생활의 발견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형님은 술병 속 각기 다른 량의 술병을 발견했습니다. 대단한 생활의 발견입니다. 하하하. 술꾼들에게는 분명 화제가 될 만한 합니다. 사진을 찍어 제 블로그에 올릴게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두병과 세병 그리고 여러 병을 놓고 비교해 봐도 술의 량은 제각각인 술병이다. 사진을 찍자 형수님이 거든다.

술을 마시다 우연히 발견한 술병마다 각기 다른 량의 술이 채워진 술병. 대단한 생활의 발견이다.

"혹시, 병을 따서 술을 더 붓고 사진을 찍었다고 말하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그럼 누가 이의를 하면 그 때 보여 주도록, 그 병은 저 뒤편에 보관해 두면 되겠네요."
"그러면 되겠네요. 그리고 블로그에 올린다면, 이런 부분을 먼저 언급하면 좋겠네요. 그래야 의심을 덜하지 않을까요?"

거제도 일운면에 있는 영은사

한 동안 '술병 속 술 량'의 문제를 놓고 화기애애한 얘기가 오갔다. 솔직히 말해 술병에 든 술이, 조금 많고 조금 적음이, 무슨 문제가 될까. 술 외에도, 티브이 화면으로 비춰지는 병에 음료를 담는 장면을 보면, 똑 같은 량을 담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어떻게 똑 같은 량만 담을 수 있겠는가.

뭐, 술자리 대화가 특별 한 게 있을까마는,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이다. 모처럼 맞은 이틀간 휴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술자리로 끝은 냈지만, 그래도 즐거운 휴일 하루였다.

거제도, 작은 암자 이진암과 영은사에서 보낸 휴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