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굴 껍데기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시면...캬!
나폴레옹 1세도 전쟁터에서 하루 세끼 꼬박 챙겨 먹었다는 굴. '바다의 우유'라 불리기도 하고, '사랑의 묘약'이라 부르는 굴. 날것을 거의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유일하게 먹는 수산물이기도 한 굴. 생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날씨가 추울수록 알이 탱글탱글 차고, 맛이 깊어지는 생굴은 거제도의 대표적 겨울음식이다. 추운 겨울날 차창 밖 호수 같은 바다풍경을 보고 먹는 굴은 여행자에게 특별한 추억거리.
거제도는 전국 제일의 굴 양식을 자랑한다. 남해안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청정해역으로 지정돼, 이곳에서 생산된 굴은 미국까지 수출하고 있을 정도니 꽤나 인기가 있다. 거제도의 굴 양식은 거제도 서쪽 해안을 중심으로 양식장이 집중돼 있는데, 거제대교에서 둔덕을 지나 거제만으로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 주변에 굴집이 즐비해 있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큰 섬이지만, 다리가 놓여 있어 육지와 다를 바 없이 교통이 편리하다. 2010년 12월 이전까지만 해도 거제도에 가려면, 2개의 거제대교(신, 거제대교 포함) 중 1개의 다리를 지나야 했지만, 지금은 거가대교 개통으로 훨씬 가기가 쉽다. 휴일인 8일, 생굴 맛집 여행을 하려고 거가대교를 따라 가 봤다.
거가대교는 이제 거제도의 상징처럼 돼 버린 명물이다. 전국의 많은 사진작가들이 다리에 걸린 일출을 찍기 이곳으로 몰린다. 거제 장목면 유호마을 방파제 입구가 그 장소. 토, 일요일이면 차를 주차할 수 없을 정도로 자리 잡기 경쟁도 치열하다. 바로 코앞으로는 옛 대통령 별장인 저도가 숨은 역사를 간직한 채, 서 있다. 그 옆으로는 거가대교가 위용을 자랑한다. 여기 일출은 대형교각에 걸친 붉은 태양을 다리에 걸 수가 있다. 시간이 나고, 좀 부지런하다면, 아침 일찍 여기 와서 좋은 작품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거가대교 장목 IC를 빠져 나오면 장목면. 여기서 5번 국도를 따라 하청면 와항마을까지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면 아기자기한 바다풍경은 오른쪽 눈에 맞춰져 있다. 이어 빨간 색칠을 한 제법 큰 다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섬 안의 섬, 칠천도를 연결해 주는 다리다. 뼈아픈 조선역사의 숨결이 멎어있는 채로, 여행자를 맞이하는 칠천량. 칠천량은 거제도 본 섬과 칠천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말한다.
1597년 발생한 정유재란은 그해 7월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군 수군에게 패한 해전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칠천량해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몇 해 전, 경상남도에서 이곳 칠천량 해역을 중심으로 거북선을 비롯한 당시 해전에 참가했던 선체 발굴 작업을 시도했으나, 큰 성과 없이 끝을 낸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역사의 현장도 만나고, 굴 구이도 맛있게 먹고
역사적 현장을 뒤로 하고 약 5분 여 달리면 작은 포구가 나오는데, 하청면 와항마을이다. 물결 한 폭 일렁이지 않는 잔잔한 바다는 호수와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다 위에는 하얀 부표가 촘촘히 떠 있는데, 생굴을 키워내는 양식장이다. 작은 방파제에 목줄을 묶어 놓은 작은 배는 고요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다. 힘든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두 다리 두 팔 큰 팔자로 벌려, 잠에 꼴아 떨어진 삶에 지친 노동자의 모습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굴 구이 요리를 처음 먹어 보는 사람이라면, 조금 당황하지 않을까 싶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솥에 거친 껍질의 생굴을 가득 담은 모습은 보기에도 벅차다. 거기에다 식탁에 놓여진 흰 목장갑과 작은 칼은 어디에 쓰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가스에 불을 켜고 20여 분 지나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뚜껑을 열자, 생굴은 입을 쫙 벌린, 통통하고 윤기가 보들보들한 굴로 변해있다. 정말 우유 빛 모습이다.
알고 보니 장갑은 뜨거운 굴 껍데기를 잡는 용도였고, 칼은 굴을 떼 내는데 쓰이는 무기(?)였다. 따끈따끈한 굴을 하나 떼어 입에 넣으니 약간 짭짤한 소금기가 먼저 느껴진다. 몇 초의 사이를 두고 다른 맛이 나는데, 그 맛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맛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재료로 특별나게 만든 음식은, 그 재료의 참 맛을 느끼며 먹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맛을 아는 사람. 좀 품위(?) 있게 표현하면, '식도락가'라고 하면 어떨는지? 오래 전, 설렁탕 집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설렁탕에 김칫국물과 깍두기를 넣어 섞어 먹는 것을 보고 하는 말.
"친구야~. 너 진짜 음식 먹을 줄 모르네."
"왜? 뭐가 잘못됐어."
"설렁탕은 열 시간을 넘겨 우려내는데, 그 참맛을 느끼며 먹어야지. 그렇게 김칫국물을 넣고 섞어 먹으면, 그게 김치국물탕이지 설렁탕이야?"
당시, 멍하니 한대 맞은 느낌이었던, 그 기분이 굴 구이를 먹으면서 되살아나는 이유는 뭘까? 굴 구이 참맛을 알려면, 초장이나 김에 싸지 말고, 굴만 먹어보라는 뜻. 그래야 굴의 향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삼겹살도 상추에 된장과 마늘을, 싱싱한 회도 깻잎에 고추와 초장을, 한 입 가득 넣어 씹어 먹는 습관. 양념 맛으로 먹는지, 상추깻잎을 먹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하면서도, 김 한 장에 굴 하나 싸서 먹어보니 맛이 황홀하다.
"캬아~. 죽여주는 이 맛."
그래도 제 맛을 알고 먹는 음식이 맛이 있는 법. 설렁탕도 김칫국물을 넣지 않고 소금만 조금 넣고 탕 그대로. 매운탕도 고춧가루 듬뿍 넣은 것 보다는 '지리'로. 싱싱한 회도 매운 간장에 살짝 찍어 먹어야만, 쫄깃쫄깃한 제 맛을 알 수 있을 터. 김에 싸 먹는 굴 구이도 맛이 있지만, 그냥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을. 그것도 굴 껍데기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신 후에라면.
거제도, 굴 껍데기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시면...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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