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굴 껍데기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시면...캬!
거제도, 꿀 껍데기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시면...캬!
나폴레옹 1세도 전쟁터에서 하루 세끼 꼬박 챙겨 먹었다는 굴. '바다의 우유'라 불리기도 하고, '사랑의 묘약'이라 부르는 굴. 날것을 거의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유일하게 먹는 수산물이기도 한 굴. 생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날씨가 추울수록 알이 탱글탱글 차고, 맛이 깊어지는 생굴은 거제도의 대표적 겨울음식이다. 추운 겨울날 차창 밖 호수 같은 바다풍경을 보고 먹는 굴은 여행자에게 특별한 추억거리.
생굴을 20여 분 익히면, 그림처럼 쫙 벌어진 우유 빛을 한 굴이 침을 꼴깍 넘어가게 만든다.
거제도는 전국 제일의 굴 양식을 자랑한다. 남해안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청정해역으로 지정돼, 이곳에서 생산된 굴은 미국까지 수출하고 있을 정도니 꽤나 인기가 있다. 거제도의 굴 양식은 거제도 서쪽 해안을 중심으로 양식장이 집중돼 있는데, 거제대교에서 둔덕을 지나 거제만으로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 주변에 굴집이 즐비해 있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큰 섬이지만, 다리가 놓여 있어 육지와 다를 바 없이 교통이 편리하다. 2010년 12월 이전까지만 해도 거제도에 가려면, 2개의 거제대교(신, 거제대교 포함) 중 1개의 다리를 지나야 했지만, 지금은 거가대교 개통으로 훨씬 가기가 쉽다. 휴일인 8일, 생굴 맛집 여행을 하려고 거가대교를 따라 가 봤다.
굴 구이는 장갑을 끼고 칼을 든 중무장(?)한 모습을 하고 음식을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거가대교는 이제 거제도의 상징처럼 돼 버린 명물이다. 전국의 많은 사진작가들이 다리에 걸린 일출을 찍기 이곳으로 몰린다. 거제 장목면 유호마을 방파제 입구가 그 장소. 토, 일요일이면 차를 주차할 수 없을 정도로 자리 잡기 경쟁도 치열하다. 바로 코앞으로는 옛 대통령 별장인 저도가 숨은 역사를 간직한 채, 서 있다. 그 옆으로는 거가대교가 위용을 자랑한다. 여기 일출은 대형교각에 걸친 붉은 태양을 다리에 걸 수가 있다. 시간이 나고, 좀 부지런하다면, 아침 일찍 여기 와서 좋은 작품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거제시 하청면 와항마을 하청굴구이집.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풍경과 한 잔 술은 시 한수를 읊게 하고도 남는다.
거가대교 장목 IC를 빠져 나오면 장목면. 여기서 5번 국도를 따라 하청면 와항마을까지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면 아기자기한 바다풍경은 오른쪽 눈에 맞춰져 있다. 이어 빨간 색칠을 한 제법 큰 다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섬 안의 섬, 칠천도를 연결해 주는 다리다. 뼈아픈 조선역사의 숨결이 멎어있는 채로, 여행자를 맞이하는 칠천량. 칠천량은 거제도 본 섬과 칠천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말한다.
깊은 잠. 힘든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선은 목줄을 묶어 놓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뒤로는 역사의 현장인 칠천량과 칠천도 대교.
1597년 발생한 정유재란은 그해 7월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군 수군에게 패한 해전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칠천량해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몇 해 전, 경상남도에서 이곳 칠천량 해역을 중심으로 거북선을 비롯한 당시 해전에 참가했던 선체 발굴 작업을 시도했으나, 큰 성과 없이 끝을 낸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역사의 현장도 만나고, 굴 구이도 맛있게 먹고
역사적 현장을 뒤로 하고 약 5분 여 달리면 작은 포구가 나오는데, 하청면 와항마을이다. 물결 한 폭 일렁이지 않는 잔잔한 바다는 호수와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다 위에는 하얀 부표가 촘촘히 떠 있는데, 생굴을 키워내는 양식장이다. 작은 방파제에 목줄을 묶어 놓은 작은 배는 고요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다. 힘든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두 다리 두 팔 큰 팔자로 벌려, 잠에 꼴아 떨어진 삶에 지친 노동자의 모습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휴식. 힘든 노동을 마치고 항구에 돌아 온 작은 어선은 목줄을 매어 놓고 휴식에 취해 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굴 구이 요리를 처음 먹어 보는 사람이라면, 조금 당황하지 않을까 싶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솥에 거친 껍질의 생굴을 가득 담은 모습은 보기에도 벅차다. 거기에다 식탁에 놓여진 흰 목장갑과 작은 칼은 어디에 쓰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가스에 불을 켜고 20여 분 지나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뚜껑을 열자, 생굴은 입을 쫙 벌린, 통통하고 윤기가 보들보들한 굴로 변해있다. 정말 우유 빛 모습이다.
알고 보니 장갑은 뜨거운 굴 껍데기를 잡는 용도였고, 칼은 굴을 떼 내는데 쓰이는 무기(?)였다. 따끈따끈한 굴을 하나 떼어 입에 넣으니 약간 짭짤한 소금기가 먼저 느껴진다. 몇 초의 사이를 두고 다른 맛이 나는데, 그 맛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맛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굴 껍데기 술.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맛이 어떤 기분을 내는지 잘 아시리라.
특별한 재료로 특별나게 만든 음식은, 그 재료의 참 맛을 느끼며 먹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맛을 아는 사람. 좀 품위(?) 있게 표현하면, '식도락가'라고 하면 어떨는지? 오래 전, 설렁탕 집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설렁탕에 김칫국물과 깍두기를 넣어 섞어 먹는 것을 보고 하는 말.
"친구야~. 너 진짜 음식 먹을 줄 모르네."
"왜? 뭐가 잘못됐어."
"설렁탕은 열 시간을 넘겨 우려내는데, 그 참맛을 느끼며 먹어야지. 그렇게 김칫국물을 넣고 섞어 먹으면, 그게 김치국물탕이지 설렁탕이야?"
굴 구이. 참으로 맛이 있어 보인다.
당시, 멍하니 한대 맞은 느낌이었던, 그 기분이 굴 구이를 먹으면서 되살아나는 이유는 뭘까? 굴 구이 참맛을 알려면, 초장이나 김에 싸지 말고, 굴만 먹어보라는 뜻. 그래야 굴의 향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삼겹살도 상추에 된장과 마늘을, 싱싱한 회도 깻잎에 고추와 초장을, 한 입 가득 넣어 씹어 먹는 습관. 양념 맛으로 먹는지, 상추깻잎을 먹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하면서도, 김 한 장에 굴 하나 싸서 먹어보니 맛이 황홀하다.
"캬아~. 죽여주는 이 맛."
하청굴구이집 메뉴표
그래도 제 맛을 알고 먹는 음식이 맛이 있는 법. 설렁탕도 김칫국물을 넣지 않고 소금만 조금 넣고 탕 그대로. 매운탕도 고춧가루 듬뿍 넣은 것 보다는 '지리'로. 싱싱한 회도 매운 간장에 살짝 찍어 먹어야만, 쫄깃쫄깃한 제 맛을 알 수 있을 터. 김에 싸 먹는 굴 구이도 맛이 있지만, 그냥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을. 그것도 굴 껍데기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신 후에라면.
거제도, 굴 껍데기에 소주 한 잔 따라 마시면...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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