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경상지역

지난 여름 휴가 때 들렀던 울주 서생포왜성/울주여행/울주 가볼만한 곳

 

지난 여름 휴가 때 들렀던 울주 서생포왜성

/울주여행/울주 가볼만한 곳

 

울주 서생포왜성에 본 진하해수욕장이 있는 마을 풍경.

 

지난 여름 휴가 때 들렀던 울주 서생포왜성

/울주여행/울주 가볼만한 곳

 

지난 여름휴가 때 들렀던 울주군 서생면에 위치한 서생포왜성.

그간 여행을 다니면서 포스팅 하지 못했던 여행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땀 흘리면서 비탈길을 올랐던 서생포 왜성은,

성을 축조한지 420년이 지났지만 비교적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왜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성을 말합니다.

서생포왜성에 대해 알아봅니다.

 

 

서생포왜성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 일원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년(선조 26년) 5월부터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지휘하여 돌로 쌓은 16세기 말의 일본식 평산성이다.

 

회야강 강구의 작은 포구를 끼고 해발 133m 고지의 산정에 내성을 쌓고 동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2단, 3단의 부곽을 두었으며, 그 아래로 산 아래까지 점차 길고 넓어지는 외성을 배치하였다. 성벽 밖에는 2,3중으로 호를 둘렀다.

 

성곽의 전체면적이 호를 포함하여 151,934㎡에 이르고 호를 제외한 성 외곽부의 길이가 약 2.5km, 평면상의 직선거리는 동서 약 870m, 남북 약 370m에 달해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가장 웅장하다.

 

현재 산정에는 높이 약 5m의 천수대가 남아 있으며, 성의 내외부에서는 다수의 우물터가 확인된다. 성벽은 외성의 경우 바깥쪽에만 돌로 쌓는 내탁식으로 하고 내성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식으로 축조하였으며, 기울기는 지면에서 60도 내외이다.

 

1594년(선조 27년)부터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 와 평화 교섭을 하였으며 많은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1598년(선조 31년) 명나라 마귀장군의 도움으로 성을 되찾았고, 1년 후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53명의 충신들을 배향하기 위해 창표당을 세웠으나 지금은 파괴되어 터만 남아 있다.

 

서생포 왜성은 임진왜란 직후부터 1895년까지 약 300년 동안 조선 수군의 동첨절세사영으로 사용되었다.

 

 

 

☞ 안내판 정비가 아쉬웠습니다.

 

출격용 소곽

이 소곽은 배후의 주곽을 방어하고 군대의 출진 시 그 움직임을 은폐 보호함으로서 안전한 출격을 도모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성을 처음 쌓은 임진왜란기에는 남측과 북측에 출입구가 설치되어 출격용 소곽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정유재란기인 1598년 정월의 울산왜성전투를 전후하여 2개의 출입구를 모두 폐쇄함에 따라 그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

 

돌출형 소곽

남측으로 돌출되어 축조된 이 소곽의 주위에는 3개의 출입구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남측으로 열린 되형 출입구는 성 밖으로 나가는 내성의 부출입구이며, 동측 출입구는 하단의 주출입구로 이어지고 북측의 직진형 출입구는 산정부로 연결된다. 이러한 지점에 위치한 이 소곽의 규모는 작지만 3개의 출입구를 동시에 수비통제하며 자체적으로 독립해서 전투를 수행하는 기능을 지닌다.

 

산정부 중심곽 천수대

이 소곽은 내성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동측과 서측에는 엇물림형 출입구와 소곽을 배치하였고 남측과 북측은 석루를 둘렀다. 북서 모퉁이에는 천수대로 짐작되는 남북 18m, 동서 17m,  높이 5m의 석단이 놓여 있으며, 축성당시 상부에는 3층에서 5층 규모의 천수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들렀던 울주 서생포왜성

/울주여행/울주 가볼만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