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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사는이야기] 아파트 작은 정원에서 나누는 '식물과의 사랑' 이야기

 

[사는이야기] 아파트 작은 정원에서 나누는 '식물과의 사랑' 이야기

 

 

[사는이야기] 아파트 작은 정원에서 나누는 '식물과의 사랑' 이야기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싹을 틔운다는 춘분이 지났습니다.

지난 일요일(23일),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방문한 이는 '사람'이 아닌, 봄기운을 가득 품은 '식물' 손님이었습니다.

이 손님은 대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베란다 창으로 따스한 햇살과 함께 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작은 화단이 하나 있습니다.

평수로는 6 정도 될까 말까 하는 작은 규모지만,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조성했으니, 햇수로는 10년째가 되는군요.

물이 콘크리트에 스며들지 않도록 바닥에는 두꺼운 비닐을 깔고, 그 위로 물 빠짐이 좋은 마사를 넣었습니다.

기왓장과 돌 등으로 작은 분수대도 만들었습니다.

아파트에 작은 정원이 하나 들어선 셈입니다.

 

 

조경할 당시에는 작은 야생화를 심었고 종류만도 100여 종이나 되었습니다.

화단이 작아 키가 큰 식물보다는 작은 야생화가 더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류의 꽃을 구입하기 위해 구례, 화순 등 전라지역까지 여행도 하였습니다.

또한, 전문 식물원에서 재배기술을 습득하기도 했습니다.

 

첫해는 다양한 품종에서 작지만 아름다고 귀여운 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세상에 더 이상 가지고 싶은 것이 없을 정도로 흐뭇했습니다.

매일 같이 뿌리와 잎에 적당한 물을 뿌려주면서 야생화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사랑이 가득한 대화였으며, 그렇게 1년을 보냈습니다.

 

 

그 해 겨울이 오자 식물들은 겨울잠에 빠졌습니다.

나 역시도 한 동안 수월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긴긴 겨울을 지나 봄이 다가왔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를 볼 수 있다는 희망 가득한 계절이었습니다.

싹이 트고 잎이 나면서 줄기를 갖추는 등 야생화는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꽃망울을 터뜨릴 때가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꽃이 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인지 정말 궁금했지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야생화는 끝내 꽃을 피우지 않고, 나의 기대를 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야생화를 구입한 화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구입한 야생화가 싹은 트고 자라는데, 꽃이 피지 않는군요."

"야생화는 추운 겨울을 나야만 꽃을 피웁니다. 아파트 베란다는 바깥보다 온도가 높기 때문에 적응력이 떨어져 꽃을 피우기가 힘이 들었겠죠."

 

그렇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에게 관심과 사랑만으로는 상대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상대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조건이나 환경을 잘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는 노력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여운 자식도 온실에서만 키울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긴 겨우내 얼음 같은 땅 속에서, 자신의 몸을 단련시켜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야생화처럼 말입니다.

 

베란다 정원에는 야생화 대신 채소를 심었습니다.

지난해에는 고추 한 그루를 심어 여름부터 겨울까지 땡추를 따 먹는 기쁨도 느꼈습니다.

지난주에는 곰취, 상추, 배추, 당귀 어린 것을 사다 심었고, 곧 부추와 여주도 파종할 예정입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만든 작은 정원에서 올 한해도 식물과의 사랑은 계속될 것만 같습니다.

 

 

 

 

 

 

[사는이야기] 아파트 작은 정원에서 나누는 '식물과의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