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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지역

[팔공산 갓바위] 고행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무엇을 염원할까/관암사

 

[팔공산 갓바위] 고행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무엇을 염원할까/관암사

갓바위 산행에서 느낀, ‘나를 비우는 것’

 

갓바위에서 내려다 본 대웅전과 멀리 산 아래로는 선본사가 보인다.

 

[팔공산 갓바위] 고행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무엇을 염원할까/관암사

갓바위 산행에서 느낀, ‘나를 비우는 것’

 

그간 몇 번이나 가보고 싶었던 곳, 팔공산 갓바위.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의 기도처로 잘 알려진 이곳은 일반 불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전국의 유명사찰을 많이 다녀 봤지만, 기도처로 유명한 이곳 갓바위를 찾지 못한 것은 게으른 불자라서 일까. 이번에는 큰 맘 먹고 집을 나섰다. 한식날인 지난 일요일(6일). 아침 6시, 거제도를 출발하여 174km를 1시간 40분 만에 달려 도착한 갓바위 주차장. 10시에 올리는 기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일찍 서둘러야만 했다.

 

아침 기온 탓일까, 봄 날씨치곤 제법 쌀쌀하다. 간절한 마음인지라, 일부러 아침밥도 먹지 않았다. 입구에서 어묵 두 개와 국물로 기운을 다졌을 뿐. 이른 아침이지만 산행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 시각 벌써 하산 하는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띈다. 들머리 구간 짧은 급경사를 오르니 숨이 할딱인다.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고도 남는다.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 주변에는 사찰이나 작은 암자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입구 보은사를 지나 도로공사가 한창인 길을 따라 관암사까지 쉼 없이 걸었다. 들이키는 약수 한 잔은 내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지켜주는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팔공산 갓바위를 오르는 길에 자리한 관암사.

 

 

관암사를 지나자 길은 계단으로 시작되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 계단 길은 끝이 없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찾은 갓바위 산행 길은 일반 등산로가 아닌 계단 길의 연속이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면서 느낀 것은, 경사진 비탈길에 중심 잡기 어려운 길 보다는, 하나씩 오르는 계단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 못 됐다는 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다음 날,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걸음걸이가 불편한 것이 이를 증명했다. 한 걸음, 두세 걸음이 고통의 연속이다. 어떤 이는 엄살을 부린다고 하겠지만, 정도의 차이가 날 뿐, 분명 다리가 붓고 통증이 며칠까지 이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산은 넓은 시야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도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폭 넓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높이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진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가 앞을 가리지만, 사이사이로 대구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10미터와 50미터가 다르고 100미터를 오를 때, 더 넓어지는 시야. 사람도 높은 자리에 오르면 넓은 마음과 안목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자연이지만, 그렇다고 ‘표현’까지 못하는 것은 아닐 터. 다만, 사람이 그것을 꿰뚫는 지혜가 부족할 뿐이다.

 

‘높이 오를수록 넓어지는 시야’, 사람도 자연에서 배워야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계단 길은 모퉁이를 꺾고 꺾으며 돌고 있다. 중간 중간 있는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나를 앞질러 간 사람도, 얼마 뒤엔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이 우리네 인생사 모습이다. 조금 빠르다고, 조금 더 느리다고, 뭐가 다르고 얼마나 큰 차이가 날까. 그저, 거기서 거기인 것을. 나는 이 산행 길에서 ‘비우는 것’을 배우고 있다.

 

갓바위를 오르는 길에 세심정에서 휴식하는 사람들.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는 갓바위 부처님을 직접 보았다. 널찍한 바위를 이고 앉은 부처님은 인자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법당에서 보아 온 살며시 미소 짓는 자비 가득한 웃음 띤 그 얼굴이 아니다. 내 마음이 비뚤어져서일까. 어찌 보면 고통을 인내하는 모습이다. 갓바위 부처님 앞 공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배, 백팔배를 올리고 있다. 셀 수 없이 머리 숙이며 기도하는 저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 저리 간절함을 안고 있을까.

 

팔공산 ‘관봉’ 아래 자리한 선본사 갓바위는 ‘갓바위부처님’으로,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1965. 9. 1일 지정)’이다.

 

 

집에서 가져간 쌀과 양초와 정화수 한 병을 부처님께 올렸다. 땅바닥에 ‘엎드렸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기도는 계속됐다. 절하는 횟수를 세지만 숫자가 ‘왔다갔다’하면서 정확한 횟수가 얼마인지 가물가물하다. 기도하는 동안에도 ‘나의 바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몸뚱이만 땅을 쳐 박고 있는 형국이다. 갑자기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굳은 믿음」이란 조건이 붙는 것이 아닙니다. ‘잘 되게 해 주면 믿는다’, ‘믿으면 잘 되겠지’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라고.

 

갓바위 앞마당에서 기도하는 불자들. 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은 무엇일까?

 

 

팔공산 ‘관봉’ 아래 자리한 선본사 갓바위는 ‘갓바위부처님’으로,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1965. 9. 1일 지정)’이다. 관봉이 우리말로 ‘갓바위’라 ‘갓바위부처님’이라 부른다. 통일신라시대 석불 좌상으로, 전체 높이는 4m에 이르고, 화강암인 하나의 돌로 조각돼 있다.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고, 그 위로 15cm 두께의 갓 모양을 한 엷은 바위가 얹혀 있다.

 

그간 이 부처님의 명칭에 대해, ‘미륵불’, ‘아미타불’ 등 이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왼손에 ‘약합’이 있는 것이 뚜렷하다. 하여, 옛 사람들은 모두 약사여래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암사를 지나 갓바위를 오르는 사람들. 사진에서 보는 관암사 입구 계단에서 갓바위 정상까지 총 계단수는 1362개.

 

기도를 마치고 관봉 아래쪽에 자리한 대웅전과 삼성각을 돌아 다시 갓바위로 올랐다. 내려가는 계단 길은 오를 때 보다 훨씬 수월하다. 넉넉한 마음 때문일까, 계단 길을 세어 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백팔기도 하듯 수를 세었고, 백이 넘어가면 손가락을 짚었다. 갓바위 정상부에서 관암사 입구까지 계단 수는 총 1362개. 아마 숫자를 놓쳤거나 두 번 세었을 수도 있지만 열 개 넘게는 틀리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365개, 1389개, 심지어 1400개가 넘는다는 글이 있다. 구간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갓바위 삼성각 전각들.

 

 

갓바위 오를 때면, 저절로 힘이 솟아나는 할머니

 

관암사를 지나면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대구에서 왔다는 76세 김옥분 할머니. 허리를 거의 90도로 접혀 걸을 정도로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는 1년에 갓바위를 두 번 오른다고 했다.

 

“허리를 굽혀 걷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왜 힘들지 않겠어요. 그런데 갓바위에 올 때면 신기하게도 힘이 솟아납니다. 산에 올라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묵은 때가 씻기는 것만 같아요.”

“갓바위를 찾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기도 덕분인지 몰라도,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던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잘 살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힘든 고행길에 마시는 정화수 한 모금은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안겨준다.

 

 

그러면서,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

 

“어째 젊은 양반이 늙은이한테 말을 걸어주는지. 나 같은 사람한테 말동무 해 준다는 것이 참 고맙고 기쁘구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산에 다니는 불자라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할머니와 대화에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와 대화는 시공을 초월하게 만들었다. 갓바위 오를 때면, ‘힘이 솟아난다’라고 말하는 할머니지만, 왜 힘이 들지 않을까 싶다.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는 나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솔직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그 끝에 드는 의문 하나가 있다.

 

“힘들게 갓바위에 올라 기도하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질까. 왜, 저렇게 어려운 고행을 하는 것인지.”

 

언제 또 다시 갓바위을 오를지 모를 일이다. 아마, 그 때는 계단 길이 아닌 또 다른 등산로를 걷고 싶은 마음이다.

 

[팔공산 갓바위] 고행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무엇을 염원할까/관암사

갓바위 산행에서 느낀, ‘나를 비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