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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나의 부처님]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2), 고산스님/오늘의 법문에서

 

[나의 부처님]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2), 고산스님

/오늘의 법문에서

 

김제 금산사 감로수.

 

[나의 부처님]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2), 고산스님

/오늘의 법문에서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2)/ 고산스님

 

<아함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마음이 더러운 까닭에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한 까닭에 중생이 깨끗하다. 마치 화가가 하얀 바탕의 종이에 갖가지 색을 칠하여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내듯이 마음도 색, 수, 상, 행, 식, 오온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생사의 사슬에 묶이고 오온에 대한 실 다움으로 하여 해탈을 얻는다."

 

그렇듯이 우리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뚱이가 소중한 만큼 우리에게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음을 항상 가꾸고 다듬고 청결하게 간수하여 일체의 중생을 사랑하고 바른 진리를 깨우치는 대도에 주저 없이 동참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대도를 이룬 사람을 깨달은 자, 각자라고 한다.

 

 

그러면 중생과 부처님이 둘이 아니고, 미혹함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라고 했으니, 우리도 부처님, 즉 각자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부처님이라 하겠지만, 미혹한 중생은 번뇌와 망상 속에 묻혀 사는 어두운 부처님이라 할 것이다.

광석을 뽑아내듯이, 우리들도 광석이 거쳐야 하는 제련과정이 요하는 부처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6년 동안 갈고 닦은 고행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었고, 신과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셨기에 더러운 때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부처님이 된 것이다.

제련과정을 소홀히 하고 게을리 하는 사람은 부처님이 될 수 없다.

 

<화엄경>에서처럼 마음이 곧 부처님이라는 '심즉시불(心卽是佛)'의 경지도 제련과정 없이 그대로 마음에 받아 들어서는 안 된다.

요즈음의 세태에서 일체유심조라는 경구가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제련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부처님이 곳곳에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잘 가꾸고 다루는 사람에게 부처님, 보살, 현인, 위인이라는 칭호를 붙여 부른다.

그렇지 못하고 마음이 삐뚤어져 엉뚱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악당, 죄인, 폭군이라 한다.

이 또한 마음이 부리는 조화이다.

 

<장아함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바른 마음을 쓸 줄 알면 신들도 기뻐할 것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조절하여 부드럽고 순하게 가지라.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귀신이나 축생, 혹은 지옥까지도 만든다. 그러니까 마음을 따르지 말고 마음이 주인이 되라."

 

 

[나의 부처님]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2), 고산스님

/오늘의 법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