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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거제도

이 곳에 가지 않고서, 거제도를 가봤다고 말하지 마라


 

태초의 섬 병대도, 

신비스러운 속살을 훔쳐보다

 

27년 전, 이맘때가 되었을까? 오토바이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잠시 한 숨을 돌리던 그 때, 눈앞에 펼쳐진 비경에 숨이 멎고야 말았다. 수억 년 전이었을까. 깊은 저 바다 속에서 솟아올라, 억겁의 세월을 버티며 떠 있는 크고 작은 섬. 올망졸망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지켜주며 변함없이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있었던. 거제도 남부면 홍포마을에서 여차마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여행자의 눈을 틔우고, 탄성을 지르게 했던 섬, 대소병대도.

숨이 멎었다던, 그 기억으로 17일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그땐 홍포마을로 가는 길은 주먹만한 돌멩이로 가득했고, 움푹 듬뿍 팬 고르지 못한 비포장 길이었다. 가다가도 몇 번을 넘어져 오토바이에 흠집이 생기고, 무릎이 까져야만 갈 수 있었던 길. 이제는 깨끗한 포장길로 승용차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돼 버렸다.

전망 좋은 곳에 차를 버리고 섬을 내려 본다. 안개가 섬을 감싸고 있다. 태초의 신비를 지금까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섬. 그 섬은 안개 속에 숨어 여행자에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바람이 살랑이며 안개를 걷어내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섬. 다시, 안개는 섬을 보호하듯 막을 치며 가리고 있다. 잠깐이요, 잠시다.


눈요기만 시켜주는 섬이 얄밉다. 빨리 돌아가는 필름에 나타난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아뿔싸,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란 쉽지 않은 자연 조건인데. 홍포마을은 무지개 뜨는 마을로 이름 지어졌고, 이곳 석양은 전국 제일의 명소로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비포장 길은 홍포마을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여차마을까지 3.3㎞는 작은 돌멩이가 깔린 길. 국립공원지역이라 자연을 보호하는 명분에서일까. 여행자도 이곳만큼은 비포장 상태로 관리만 잘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차는 편리하지만 어떨 때는 짐이 되고 만다. 차를 버리고 땀 흘리며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을 테지만, 어쩔 수가 없다.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불편 때문에.

조류가 센 곳이라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보인다. 두려움이 느낄 정도로 거세다. 그곳을 고깃배가 흰 물살을 일으키며 헤쳐 나가고 있다. 부산에서 여수를 오가는 모래운반선도 섬 사이로 헤집고 나간다. 갈매기 한 마리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섬 위를 빙빙 돌며 친구하고 있다. 낚시꾼도 감성돔을 비롯한 고급 어종의 입질이 좋다고 알려진 병대도. 이래저래 병대도는 외롭지 않은 섬이 돼 버렸다. 마을 어른들은 옛적부터 섬 사이가 솔다(좁다)고 ‘손대도’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섬은 안개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하다.

대소병대도. 여차마을 서남쪽 앞으로 군데군데 흩어진 섬 무리로 소병대도와 대병대도를 이르는 이름이다. 행정편의에 의하여 소병대도는 3개 필지 26,480㎡, 대병대도는 5개 필지 84,132㎡로 총 110,612㎡로서, 평수로는 약 33,460평. 그런데 육안으로 보는 소병대도는 보기에 따라 11~12개 섬으로, 대병대도는 40여개 내외로 보인다. ‘여’라고 불리는 작은 바위까지 합쳐 하나의 섬을 형성하고 있는 대소병대도. 무리지어 있는 크고 작은 50개 이상 되는 이 섬을 상상해 보면 어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지 짐작이 가고 남지 않을까.

울퉁불퉁 한 굴곡진 길은 차도 사람도 지치게 만든다. 구르는 자동차 바퀴에 흩날리는 먼지와 기계소리는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달갑지마는 아닐 터. 자연 속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로움을 즐기는 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날씨가 무더워서인지 이 길을 걷는 여행자는 두 명, 한 팀밖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더 이상 피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기에.

얼마를 지났을까, 전망대가 나온다. 멀리도 넓게, 펼쳐져 보이는 섬들은 한 폭의 산수화다. 여행 들머리인 홍포마을에서 바라보는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

저 멀리 갈매기 섬이라는 불리는 홍도가 보인다. 수 만 마리 갈매기가 사는 홍도는 오래 전 두 번이나 가 봤지만, 지금은 갈 수 없는 섬이 돼 버렸다. 갈매기 보호를 위하여 사람의 출입을 금지해 버렸기에. 멀리 가물거리는 홍도는 꿈속을 헤매는 몽환의 분위기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짧은 비포장 구간이지만 한 시간 남짓 걸려서 포장길로 들어섰다. 여차마을이다. 처음 이 마을에 들렀을 땐, 초가집도 있었고, 말 그대로 아담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급 펜션이 들어선 휴양지로 탈바꿈 해 있는 모습이다. 유럽풍의 펜션을 보니 하룻밤 자고 싶은 강한 유혹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비포장 길 앞으로 탁 트인 쪽빛 바다위에 떠 있는 무수한 섬들. 신선이 노는 데가 따로 없을 정도다. 홀로 외로운 섬, 때로는 무리지어 행복이 가득한 섬. 여행자는 쪽빛 바다위에 펼쳐져 있는 비경을 보노라면, 숨이 멎을 수도 있을 터. 27년 전 내 경험과도 같이.

이 아름다운 비경을 놓치고 거제도를 여행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으리라. 거제도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자신 있게 권해드리고 싶은 거제도 제1의 명소라 감히 말하고 싶다. 보너스 하나를 더 드린다면, 홍포마을 일몰은 황홀감에 빠질 수 있음이 충분하다는 것을...
 

시간이 정지돼 있는 홍포에서 여차에 이르는 비포장 길. 느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국에서도 몇 남지 않은 아름다운 길이다. 거제도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 명승 2호로 지정된 해금강과 외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거제도를 대표하는 관광 1번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휴가철을 맞아 거제도를 찾고 있다. 거제도는 생각보다, 보기보다, 갈 데도 많고 모르는 곳도 많다. 거제도를 찾은 여행객은 이름 있는 명소만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게 현실이다. 거제도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이 곳에 꼭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제시 남부면 여차마을에서 홍포마을로 넘어가는 비포장 길. 여차마을에서 홍포마을까지 3.3㎞ 구간 비포장 길은 차량통행이 가능하나 걸어보는 재미는 분명 남다를 것.

자동차는 비경 속을 빠져 나왔다. 해금강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원추리, 수국, 범부채 그리고 벌개미취 등 온갖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펴 있다. 야생화 사이로 보이는 쪽빛 바다와 섬은 여행자에게 깊은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니라.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005&PAGE_CD=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