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행 막차를 타고 곧 만나러 갑니다

3000년 세월의 생명력, 동틀 녘 한 송이 연꽃에서 지혜를 배우다

올 여름은 여름 같지 않다는 느낌이다. 태풍에, 산사태에 이어 폭우로 이어지는 여름철 날씨 때문에. 찝찝한 여름 나기가 나 혼자만 드는 걸까? 그런 차, 연꽃이 아름답게 폈다는 소식에 한 걸음으로 달렸다. 8월 7일 아침 동을 틔우기 전 이른 시간. 지난해 만들었다는 거제 덕포동에 있는 작은 연꽃 마을은 녹색바탕에 연분홍 꽃으로 가득하다. 때 맞춰 살랑거리는 바람은 연꽃을 춤추게 하며 진한 향을 뿜어내고 있다.

 “연꽃은 새벽 동이 틀 때 봐야 제일 예쁘고 색깔도 곱답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내게 어른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마을에서 기관의 도움을 지원받아 지난해부터 조성했다는 연꽃 밭은 약 2400여 평. 1년 만에 어찌 이렇게 무성히 자란 연꽃 밭과 꽃을 피운 것을 보면 신기할 뿐이다.

벌이 날아든다. 한 마리가 아니다. 동무를 데리고 왔는지, 식구인지, 많은 벌은 꽃 술대에 꿀을 빠는데 정신이 없다. 셔터 소리에 놀랐는지 제 몸 만 한, 날개를 퍼덕이며 연신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한 동안 벌과 그렇게 놀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더러운 흙탕물에서도 우아함과 순수함을 간직하며 피어나는 연. 세상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으며, 마치 어린아이의 거짓 없고 순수한 해맑은 웃음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래서 꽃말도 ‘순결’이라 지은 걸까.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은은하게 향기를 뿜으며

연꽃이 피어오르듯이


버려진 쓰레기처럼

눈먼 중생들 속에 있으면서도

바로 깨달은 사람의 제자는

지혜로서 찬란하게 빛나리라


(법구경 58- 59)

쓰레기 더미는 심한 악취를 풍길 뿐이다. 그런데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강한 향기가 심한 악취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약함에도 더러움을 털어내는 연꽃에서 지혜를 배워야겠다.


오랜만에 걷는 논둑길. 무성히 자란 논둑길 잡초를 밟고 걷다보면, 뱀이 나타날까 두렵지만 요즘은 뱀 보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환경이 많이 파괴됐다는 증거일수도 있으리. 논 중간 아담한 정자 한 동이 눈길을 끈다.

소박하게 느껴지는 정자는 연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유혹을 이끌어 낸다. 논 덤벙, 천천히 돌아가는 물레방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방아질은 작은 모터에 기대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폭포나 큰 물줄기의 힘으로 돌지 않는 작은 풍차. 운치 나는 풍경을 만들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으리.

홍련 밭을 지나 백련이 핀 곳으로 갔다. 한 두 송이만 핀 백련. 순백의 백련은 그 순결함을 보여주기 부끄러워서일까. 아직 무리지어 펴 있지 않다. 연잎 위 동글동글 영글어 맺힌 물방울. 살짝 건드리니 두 물망은 하나로 합치고, 다시 그 방울은 또 다른 하나의 물방울을 만든다.

보석처럼 빛이 나는 영롱한 물방울은 합칠 뿐 결코 퍼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합치면 또 하나의 큰 힘이 되고, 연잎에서 떨어지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물방울에서 또 하나의 지혜를 배워본다.


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려만, 개인적으로 아주 꽃을 좋아하는 나. 예전에는 한 달에 보름 이상 장미꽃을 집에 두며 향기를 맡고 시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감상했다. 사진 한 장 가득 연꽃을 담았다. 장미대신 인화한 사진을 집에 걸어 두어야겠기에. 사진 속 연꽃은 촛불 밝힌 연등이 따로 없다는 느낌이다. 연등 속에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촛불. 사진 속 연꽃은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7~8월이면 연꽃 세상이다. 예전엔 연꽃을 보려면 대전 덕진공원이나, 무안 연꽃공원에 가야만 대규모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한 마을이나 늪지 같은 데서 연 밭을 만들어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연에서 생산되는 제품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도 있기에.

직경 2㎝ 정도의 큰 씨를 이용하면 목걸이, 귀걸이 차 걸이 등을 만들 수 있다. 연을 재료로 하는 먹 거리에는 연잎 차, 연근 차, 인절미 그리고 가래떡도 있다. 그 중에서도 연잎 차와 연근 차는 당뇨 치료에 좋다고 한다. 연근은 찬거리로, 연밥에 막걸리까지 만든다니, 이래저래 연꽃은 사람에게 베푸는 보시물이 아니겠는가.


한 여름이 막차를 타고 있다. 막차는 갖가지 사연을 안고 떠나는 인생 역정의 공간. 올 여름, 많은 사람이 찌뿌듯하게 보내지 않았을까. 그래서이다. 지금 막 떠나는 한 여름 행 막차를 타고 나서보자. 꼭 거제도 덕포동 마을이 아니라도 좋다. 인근에 연꽃 밭이 있는 곳이라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도 거제도 가까이 사는 여행객이라면 덕포동 연꽃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거가대교 들머리인 연초면 송정 IC에서 2.5㎞를 지나면 덕포 IC가 나오고 여기서 상덕마을로 약 3㎞를 가면 연꽃마을이 있는 공원.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출입을 허용한다고 안내판에는 적혀 있다.


연꽃 씨는 3000년이 지나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고 한다. 후손을 이을 수만 있다면, 그 씨앗 하나 얻어 무궁무진한 세월 함께하며 3000년 후 꽃을 피웠으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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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 옥포2동 | 덕포동연꽃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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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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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성제 2011.08.12 0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거제에도 이런곳이 있었네요 충청도 어느 마을에도 있던데
    연꽃은 무언가 일방적인 느낌을 많이 주는꽃인것 같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잔뜩 흐립니다, 비도 이제는 그만왔으면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되시기을 기원 합니다

    • 죽풍 2011.08.12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짬을 내 한번 가 보시죠. 마지막 가는 여름행 막차가 떠나고 있습니다. 자 떠나 보시죠,,,

  2. 언제나 2011.08.12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덕마을 연꽃테마파크, 참 좋습니다. 소개글 감사합니다

    • 죽풍 2011.08.12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꽃에서 인생의 지혜를 많이 배웁니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언제나 한결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