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보니 그 시절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풍성한 가을입니다.

2011년 10월 1일.
10월을 알리는 첫 날입니다.
오늘 보는 들녘은 그야말로 황금색으로 변해 있습니다.
굳이 가을이라 강조하지 않아도 눈으로 보는 가을을 느끼고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본다면야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맘먹은 대로 다니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가을을 전해 드릴까합니다.


시장에 팔려나온 길쭉한 고구마를 보니 더욱 고향 생각이 묻어납니다.

시장에 팔려 나온 고구마

초중학교 시절.
저희 집 밭은 동네에서 제일 컸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밭떼기 한 필지가 천 평이 훨씬 넘었으니까요.
봄이면 여러가지 곡식을 심었습니다.
조, 수수, 강냉이, 콩, 참깨, 메밀, 고추 그리고 고구마 등 하여튼 사람이 먹는 식물이라곤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작물을 심고 가꾸었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주식이라고 할 수 있던 고구마를 밭 전체의 약 90%를 차지할 정고로 많이 심었답니다.

그리고는 이 맘 때, 가을이 돌아오면 일손이 바빠집니다.
지금이야 트랙터나 경운기로 밭을 갈아 업으면 그만이지만, 그 당시는 그런 기계도 없었고, 있었더라도 살 형편이 아니었지요.
그러다 보니 전부 사람 손으로 호미를 사용하여 고구마를 캤습니다.
일손이 딸리다 보니 동네 사람들의 협조 없이는 그 넓은 밭에 심겨진 고구마를 수확하는데 애로가 많았지요.
그래서고구마를 캘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다 함께 고구마를 캤답니다.
그 땐 돈이 없다 보니 일을 도와준 대가는 돈으로 줄 수 없었고, 대신 고구마를 가져갈 만큼 가져가도록 했지요.
그리고 겨울을 나면서 절간(빼때기) 수매를 통하여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답니다.
시장에 팔려나온 고구마를 보니 그 시절 그 추억이 떠오릅니다.

풍성한 가을

그 속에 담긴 가슴 아픈 이야기 한 토막.

그 때 그 넓은 밭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부자가 되었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요? 지금 가지고 있다면 떼돈 벌었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 밭떼기는 대한민국 중공업 육성이라는 조국 건설의 거창한 타이틀 아래 조선소 부지에 빼앗기다시피 다 넘어가버렸지요.
거의 공짜에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중학교 시절인 1970년대 초 이야깁니다.
배운 것 없었고, 농민의 아들이라 할 말도 못하고 살 시절이었지요.
지금 같으면야 정말 할 말이 많겠죠.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사는 아픈 이야깁니다.
고구마를 보니 말입니다.

 

 


오늘부터 3일간 연휴가 시작되네요.
모두들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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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aarheid.tistory.com BlogIcon femke 2011.10.01 0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여행갔다 제 블로그를 보니 댓글이 올라와 있기에
    다녀갑니다.
    고구마면 역시 한국이죠. 서양에서는 이슬라엘산 고구마밖에 구경 못한답니다.
    고구마에 대한 글을 보니 예전 노모와 겨울밤 동치미와 같이 먹었던 생각나는군요.
    그때 그시절 잠시 생각해봅니다.
    좋은 주말 맞이하세요.

    • 죽풍 2011.10.01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슬라엘산 고구마가 어찌 생겼는지 궁금하네요.
      겨울밤 동치미랑 고구마 먹는 추억이 떠오릅니다.
      즐거운 연휴 되기 바랍니다.

  2. 박성제 2011.10.02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안녕하세요 어린 시절의추억은 돈과도 바꾸지 안는다고 합니다
    죽풍님도 추억을 간직하고 게시는것같습니다
    고구마 감자 호박 기타등등 정말 추억속에 물건이면서 현제에 만날수 있는 물건이죠
    하지만 어디 한구석엔 좀 빈듯한 느낌이듬니다 나혼자만의 생각이겠죠
    연휴 잘지내고 게시는죠?

    • 죽풍 2011.10.03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휴기간 동안 전국 여행하느나 이제 집에 도착했네요요. 답글이 늦었습니다. 연휴 잘 지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