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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흐...오늘 콧구멍에 바람 쐬었네"


'섬진강사랑의집' 장애인들과 함께 최참판댁 나들이 가던 날

사람이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까지는 몇 차례의 망설임이나, 뒤로 미룬 끝에 비로소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돕고 싶지만, 나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해 줄 것이라 스스로 자위하면서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경우도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평소, 장애인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 왔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실천하지 못하고, 소속 기관의 계획에 의해 장애인 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게 된 데는, 기회를 먼저 뺏긴 느낌도 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휠체어 사용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후덥지근한 장마가 계속되는 7월 13일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을 찾았다. 이번 방문은 여행이 아닌 장애인과 하루를 함께 하기 위해 직장동료 20명과 함께 떠난 것이다. 사회복지법인 혜림원이 운영하는 '섬진강사랑의집'.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같이 동행할 휠체어를 탄 친구들이 환하게 맞이하며 박수를 친다.

이어서 봉사활동에 따른 주의사항과 휠체어 사용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평소 먼발치에서 별로 깊게 생각하지 못한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특히, 휠체어를 사용하다 앞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가끔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세심한 배려와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봉사활동은 타인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과 함께 섬진강줄기를 따라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나들이 하는 그들이라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굴에 나타남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타고 간 승용차에 봉사자 두 명과 장애인 한 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처음으로 휠체어 보조를 해 보니 승용차를 태우는 것부터가 힘들었고, 쉽게 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 아름다운 시간
섬진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언제부터 흘렀는지 그 기나긴 세월 속에 변함이 없는 것만 같다. 아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볼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짧은 인생이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도 인생의 강물처럼 말없이 흘러갈 뿐이다.

40대에 뇌출혈로 장애가 된 정형식님. 애칭이 '형식씨'란다. 나이는 나보다 형님뻘이다. 둘은 창 밖으로 펼쳐진 섬진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다. 잠시 어색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평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장애인을 대할 때는 특별히 다른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대해 주라는 것.

▲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동네 형님처럼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말도 술술 나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았다. 이젠, 정말 편안하다. 최참판댁으로 가는 길은 온통 푸르름으로 덥여 있다. 최참판댁 입구에서 또 다시 휠체어로 옮겨 탔다. 휠체어 보조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쉬운 일은 아니다. 최참판댁 구경이 처음이라 그런지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 사랑채 어른이 손을 꼭 잡아 주고 있다
사랑채에 이르니 방 안에는 조선시대에나 살았음직한 모습의 복장을 한 채, 긴 수염을 늘이고 근엄한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하동군에서 선발한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면서 환영의 인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해설사로부터 최참판댁 이모저모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듣고 구경했다. 조선 말기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다. 기념사진도 찍었다. 모두가 즐거운 모습이다.

▲ 최참판댁 사랑채 앞에서 기념촬영
화개장터를 지나고 쌍계사 주변을 돌아 다시 섬진강을 건너 전라도 광양 땅으로 차는 달렸다. 하동에서 구례로 향하는 국도에서 바라 본 섬진강의 모습과는 달리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섬진강을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서일까, 마음이 달라서일까. 같은 강이지만, 아무튼 그 느낌은 다르다는 것이 틀림이 없다.

강물에 종이배 흘러가듯, 우리 일행도 그렇게 조용히 흐르듯 달리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섬진강을 한 바퀴 돌았다. 이제, 다시 삶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이 옴을 느끼며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잠시, 언제 다시 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드라이브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물밀듯 밀려오는 기분이다.

"형식씨, 오늘 드라이브 괜찮았는지 모르겠네요?"
"흐… 오늘 콧구멍에 바람 쐬었네."

▲ 넓게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웃으면서 하는 그의 말에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오후 한 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같이 했지만,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 형식씨랑 같이 드라이브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사는 것도 희망이 아닐까?

하동읍 두곡리 739-5번지 위치한 '섬진강사랑의집'은 군 단위로는 전국에서 처음인 군립시설로서, 하동군에서 직접 건물을 지어 사회복지법인 혜림원에 위탁운영을 하는 곳으로, 지난해 1월 1일 문을 열었다고 한다. 현재, 타인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1급 중증장애인 54명과 32명의 직원들이 소중한 삶의 보금자리를 가꾸어 나가고 있다.

개원할 때부터 이들과 함께 생활해 오고 있는 김점희 팀장으로부터 몇 가지 애로사항을 들을 수 있었는데, 힘을 보태 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빨래건조기가 없어 장마철에 귀저기 등 많은 빨래를 빨리 말리기 힘들다는 것, 농촌지역이라 큰 기업체나 대학이 없어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할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과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편견을 없애는 것 등이란다.

그리고 가장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형태의 도움을 받고 사는데, 그 도움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산다는 것"이라는 말하는 김 팀장. 그녀의 헌신적인 마음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자원봉사활동을 통하여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저변에 깔려 있는 고정화된 시각을 많이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는 동정심이나 일시적인 도움보다는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과 봉사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고 돕는다는 것은 가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그 진심을 알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