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파손하고 메모지를 남긴 후배 이야기 출근길에 자기 차량이 파손되어 있는 걸 본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제가 지난주에 겪은 일입니다. 우리나라 최남단이라 할 수 있는 거제도에서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군까지 출장을 가야 했기에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습니다.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유리창에 붙어 있는 종이를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밖으로 나와 확인했습니다. "차주님 저의 아저씨 부주의로 본의 아니게 차를 박았습니다. 연락을 드렸지만 받질 않아 메모 남깁니다. 찌그러진 부분 저희가 잘못했으니 연락 주세요! 정말 너무 죄송해요!" 메모지를 보고 자동차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앞범퍼와 펜더(자동차 바퀴에서 흙탕물이 튀는 것을 막는 흙받이)가 찌그러지고 백미러는 충격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화가 났습니다. 물론 참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올해 초 십 년 넘게 탄 차를 팔고 큰맘 먹고 새로 구입한 다섯 달도 되지 않은 차였기 때문입니다. 두 달 전에도 주차해 놓은 차 옆에서 어떤 사람이 페인트 작업을 해, 엉망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페인트 자국은 지워 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차를 탈 때마다 그때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마당에 두 번째 비슷한 경험을 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출발하기에 앞서 메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하려다가 아직 새벽녘이라 잠을 잘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말았습니다. 출발하고 한동안 운전만 열심히 했습니다. 차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를 파손한 그 사람이 궁금해졌습니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그냥 모른 체 도망가지 않고, 메모지를 남긴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일곱 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메모지에 담긴 연락처로 전화를 하니 차를 파손한 사람의 아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리비는 전적으로 부담하겠다는 말과 함께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미안함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비공장에 차를 맡기고 수리비 처리 문제로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차를 파손한 사람과 한참 통화를 하는데 저쪽에서 "혹시, 정도길 선생님 아니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 "저 모르겠습니까, 저 재종입니다"며 소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에 알았던 동생뻘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차인 줄 알았냐?"고 물으니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 임마! 그냥 도망가지, 너같이 양심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며칠 동안 버스를 타고 출퇴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편하지만 참을만합니다. 양심 있는 사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 ||
출처 : "너같이 양심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냐?" - 오마이뉴스(2006.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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